올해 피티 워모의 초청 디자이너였던 마틴 로즈가 선보인 카고 팬츠. 허벅지 앞쪽과 무릎에까지 주머니를 달아 색다른 분위기를 줬다. /Giovanni Giannoni
올해 피티 워모의 초청 디자이너였던 마틴 로즈가 선보인 카고 팬츠. 허벅지 앞쪽과 무릎에까지 주머니를 달아 색다른 분위기를 줬다. /Giovanni Giannoni

‘건빵바지’가 돌아온다. 20년 전 유행했던 카고팬츠(무릎 바깥쪽에 주머니가 드러난 바지)를 찾는 남자들이 다시 늘기 시작했다.

어느 시대의 패션이든 그만큼 지나 돌아보면 어색하기 마련이지만, 카고팬츠는 그중에서도 특히 촌스러웠던 것으로 손꼽히는 2000년대 초 패션의 상징이었다. 그러나 최근 그 무렵의 문화 코드를 추억하는 ‘Y2K’가 젊은 층 사이에서 유행으로 떠오르면서 다시 주목받고 있다. 지난해 가수 아이유, 제니 등이 입으면서 여성복에서 먼저 인기를 끈 데 이어 남성복에서도 유행 조짐이 이어지고 있다.

여유로운 실루엣은 최근 다시 유행하는 카고팬츠 디자인의 특징 중 하나다. /LF

◇”투박해도 활기차고 자유로워”

올 초 열린 주요 남성복 패션쇼에서 그 인기가 확인됐다. 지난달 열린 올 가을·겨울시즌 파리패션위크에서 한국의 우영미·정욱준을 비롯해 지방시, 드리스 반 노튼 같은 유명 디자이너와 브랜드들이 카고팬츠를 무대에 올렸다. 세계 최대 남성복 박람회인 피티 워모에서도 초청 디자이너 마틴 로즈가 허벅지와 무릎에 주머니를 주렁주렁 붙인 카고팬츠를 선보였다. 피티 워모는 행사장에 모여든 전 세계 남성복 업계 관계자들의 의상이 유행의 풍향계 역할을 하는 것으로도 유명한데, 올해는 이 ‘선수’들의 옷차림 사이에서도 카고팬츠가 자주 눈에 띄었다.

카고팬츠 주머니를 소매에 붙인 재킷. /LF

남성복의 많은 품목이 그렇듯 카고팬츠도 군복에서 유래했다. 건빵바지라는 별명도 전투복 바지에 달린 주머니가 딱 건빵 봉지 크기여서 생겼다. 기본적으로 거칠고 투박한 느낌이지만 소재나 바지통, 주머니의 크기에 따라 분위기가 달라진다.

영국 가디언은 카고팬츠의 인기를 전하면서 “비록 못생겼지만(ugly) 면바지보다 편안하면서도 운동복보다는 단정하다”고 이유를 짚었다. 카고팬츠의 상징과도 같은 주머니를 재킷이나 가방에 달기도 한다. 의외의 디자인으로 위트를 주면서 자유롭고 활동적인 느낌을 빌리는 전략이다.

운동복 소재를 사용한 카고팬츠 /삼성물산 패션부문

◇풍성한 실루엣, 다양해진 소재

유행이 돌고 돈다 해도 흘러간 옛모습 그대로 다시 돌아오지는 않는다. 당대의 트렌드와 맞물려 새로운 모습으로 진화하기 마련. 남성 패션 유튜브 채널 ‘풋티지브라더스’를 운영하는 코넥스솔루션 강원식 대표는 “20년 전 카고팬츠의 특징이 극단적인 로라이즈(바지를 골반에 걸칠 정도로 내려 입는 방법)였다면 지금은 밑위가 그보다 길어지고 실루엣은 한결 풍성해졌다”고 말했다.

‘여유로움’은 최근 남성복에서 관찰되는 가장 뚜렷한 흐름이다. 복사뼈가 드러날 정도로 발목에 딱 맞게 줄여 입던 바지 통이 다시 넓어졌다. 스트리트(길거리 젊은이들의 옷에서 영감받은 패션)나 시티보이(일본에서 시작된 캐주얼의 한 종류) 같은 최근의 유행도 살짝 큰 옷을 입은 듯한 선(線)이 특징. 돌아온 카고팬츠 역시 이런 분위기를 담고 있다.

소재가 다양해졌다는 점도 카고팬츠 재유행의 특징이다. 일반적인 면바지·청바지 외에 각종 기능성 소재나 운동복 옷감을 사용한 카고팬츠, 정장 바지 느낌의 ‘단정한’ 카고팬츠도 나온다. 아웃도어 의류, 군복, 작업복 따위에 바탕을 둔 남성복의 여러 장르에서 폭넓게 활용되는 카고팬츠의 특징을 살린 디자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