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추석을 쇠는 음력 8월 15일은 중국의 중추절(仲秋節)이다. 추석에 송편을 먹듯 중국사람들은 중추절 월병(月餠)을 먹는다. 둥근 보름달 모양으로 빚은 전통 과자다. 전통 월병은 밀가루나 보릿가루에 라드(돼지기름)·설탕·달걀을 섞은 반죽으로 피를 만들고, 소금에 절인 오리알 노른자·팥·연밥·녹두·견과류·말린 과일 등 다양한 속을 넣어 동그란 틀에 찍어 달걀물을 발라 화덕에 굽는다.
중국에는 중추절 온 가족이 모여 달빛이 비추는 곳에 제사상을 놓고 제사를 지낸 뒤 월병을 똑같이 잘라 나눠 먹으며 하늘과 조상에게 감사하는 풍습이 있다. 이런 풍습은 당나라 때 시작돼 송나라 때 성행했으며 원나라를 거쳐 명·청(明·淸) 시기 전통이 됐다. 중추절 집집마다 월병을 먹게 된 계기는 여러 설(說)이 있지만, 다음과 같은 재미난 전설이 전해온다.
원나라 말 한족(漢族)은 자신들을 탄압하던 몽골족을 몰아내고 한족 왕조를 세우고자 했다. 하지만 몽골의 매서운 감시를 피해 뜻을 모아 거사하기 어려웠다. 이때 훗날 명태조(明太祖)가 되는 주원장의 책사 유백온(劉伯溫)이 묘안을 낸다. 그는 ‘중추절 월병을 사 먹어야만 올 겨울 발생할 돌림병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는 소문을 퍼뜨린다. 사람들은 앞다퉈 월병을 구입했다. 집에서 월병을 갈라 보니 ‘8월 15일 몽골인을 죽이자’는 편지가 들어 있었다. 많은 한족이 궐기에 동참했고, 결국 원나라 정권이 뒤집어졌다. 이후 월병을 중추절에 먹는 전통이 굳어졌다는 전설이다.
월병은 이제 중추절 먹는 전통 절식보다는 선물이나 심지어 뇌물로 의미가 변질되고 있다. 한때 동전 크기 황금을 넣은 ‘황금 월병’이나 고급 술·담배 심지어 주택을 끼워팔기하는 월병까지 나왔으나, 시진핑 국가주석이 사치와 부패 근절을 위해 강력하게 단속하면서 사라졌다. 하지만 고급 재료를 사용하거나 화려하게 포장해 비싼 가격을 매긴 ‘프리미엄 월병’은 계속 나오고 있다.
프랑스 명품 브랜드 에르메스와 샤넬은 자사의 로고와 문양이 새겨진 월병을 내놨다. 미국 티파니는 자사를 대표하는 색상인 ‘티파니 블루’로 된 케이스에 월병을 담았다. 프리미엄 아이스크림 하겐다즈는 세계적 아티스트 13명과 협업해 50여 개의 예술작품을 활용한 ‘월병 아이스크림’을 선보였고, 니콜라 사르코지 전 프랑스 대통령의 제빵사는 케이크 제조기술을 활용해 치즈로 속을 채운 ‘퓨전 월병’을 출시했다. 광둥성의 유명 제과업체는 틀에 찍어내는 대신 예술가가 손으로 일일이 문양을 새긴 ‘다스(大師)수제월병’을 1만 상자 한정판으로 내놓기도 했다.
보름달처럼 둥글게 만드는 월병과 달리, 한국은 왜 송편을 반달 모양으로 빚을까. 삼국시대 의자왕이 다스리던 백제 궁궐에서 거북이 한 마리가 발견됐다. 거북이 등에는 ‘백제는 만월(滿月·보름달)이요 신라는 반달이다’라고 쓰여 있었다. 점술사는 ‘백제는 만월이니 이제부터 기울 것이고, 신라는 반달이니 앞으로 차차 커질 것’이라고 해석했다. 훗날 실제로 백제는 멸망하고 신라는 삼국을 통일하고 번창했다. 이후 반달 모양이 풍요와 번창을 의미하게 돼 추석 송편도 보름달 대신 반달로 빚게 됐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심각한 식량난을 겪고 있는 북한에서는 쌀이 부족해 송편 대신 월병을 차례상에 올린다는 보도가 지난 2012년 나왔다. 고가의 중국산 월병은 간부에게 바치는 뇌물로 거래되고, 주민들은 모양만 비슷한 가짜 월병을 장마당에서 구입해 차례상에 올린다는 것. 중국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지면서 전통 명절음식마저 중국화하는 듯해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