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가 잘 먹고 잘 살게 된 건 최근의 일이다. 1950년대까지만 해도 한국과 마찬가지로 음식이 부족했다. 그러니 와인이 남거나 상했다고 버리는 건 상상 못했다. 먹지 못하게 된 와인을 버리지 않고 최대한 활용하기 위해 개발된 음식이 바로 ‘술 취한 스파게티(spaghetti ubriachi)’다.
스파게티를 삶을 때 레드와인을 더하니 먹음직스러운 와인빛으로 물들었다. 시큼달큼하면서 떨떠름한 맛이 밴 면발은 이탈리아 베이컨 ‘판체타’의 기름지면서도 짭조름한 맛과 호두의 감칠맛, 리코타 치즈의 고소함과 썩 어울렸다. 먹고 살 만해진 요즘 이탈리아에서는 특별한 색과 맛의 스파게티 요리를 위해 멀쩡한 새 레드와인을 일부러 딴다.
이제 국내에서도 와인을 많이 마시게 됐다. 혹시라도 마시다 남는 와인이 생긴다면 이렇게 활용해보기를 추천한다. 와인을 넣으면 넣을수록 더 진한 와인색으로 물든다. 아니면 반대로 물을 줄여도 되지만 파스타를 비롯한 모든 국수는 물이 충분하지 않으면 맛있게 삶아지지 않으니 주의해야 한다. 이름은 술 취한 스파게티지만, 삶는 동안 와인의 알코올은 모두 증발돼 스파게티 면에는 조금도 남거나 배지 않으니 혹시 먹고 취할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이탈리아 피렌체 출신으로 미국에서 스타 셰프가 된 파비오 비비아니(Viviani)가 쓴 요리책 ‘파비오스 이탈리안 키친(Fabio’s Italian Kitchen)’에 소개된 레시피를 참고로 만들었다. 미국인 식사량을 기준으로 만든 레시피라 그런가, 2인분을 만드는 데 스파게티를 무려 1파운드(약 450g)나 넣으라고 나온다. 파스타 450g이면 일반적으로 판매되는 파스타 1봉지(500g)과 비슷한 양. 이탈리아에서는 파스타 1봉지면 6~8인분이다. 아래 레시피에서는 비비아니가 제시한 레시피를 그대로 따르되, 스파게티 양만 200g으로 줄였다. 자세한 만드는 법은 동영상과 레시피 참조.
술 취한 스파게티 (Spaghetti Ubriachi)
물 2L, 레드와인 1병, 스파게티 200g, 판체타(베이컨) 120g, 버터 2큰술, 리코타 치즈 ½컵, 다진 호두 ½컵, 페코리노 치즈 약간 (2인분)
- 큰 냄비에 물을 끓인다. 레드와인을 붓고 소금을 넉넉히 더한다. 다시 펄펄 끓으면 스파게티를 넣고 포장에 적힌 시간만큼 익힌다.
- 판체타를 잘게 썬다. 프라이팬을 달구고 버터를 녹인 뒤 판체타를 볶는다.
- 스파게티와 삶은 물 1큰술 정도를 프라이팬에 더한다. 스파게티에 기름이 고루 버무려지고 물기가 없어질 때까지 볶는다.
- 리코타 치즈와 다진 호두를 프라이팬에 넣고 스파게티에 고루 버무린다. 접시에 담고 페코리노 치즈를 갈아 뿌려 낸다. 페코리노가 없으면 파르미자노 치즈로 대신해도 된다.
레시피=Fabio’s Italian Kitchen (Hyper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