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비(댄젤 워싱턴)과 스티그(마크 월버그)는 은행을 털 계획을 세우고 사전 조사차 목표 은행 길 건너편 식당에 들렀다가, 도넛을 사러 온 경찰을 보고 고민에 빠진다./유니버설 픽처스

댄젤 워싱턴은 배우라기보다 장르 같다. 그의 출연작을 보면 그가 아니면 이런 맛이 안 날 것 같다는 느낌이 왕왕 든다. 배우를 뛰어 넘어 장르라고 여겨도 될 정도로 영화에 자기만의 색채를 확실히 불어 넣는다. ‘더 이퀄라이저’(2014년)를 필두로 ‘아메리칸 갱스터’(2007년), ‘맨추리언 캔디데이트’(2004년), ‘트레이닝 데이’(2001년)를 넘어 ‘크림슨 타이드’(1995) 등 작품성이나 재미 가운데 적어도 하나는 제대로 잡은 작품이 대부분이다.

그런 댄젤 워싱턴도 신(神)은 아니다 보니 살릴 수 없는 영화가 있다. 바로 ‘투 건스’(2013년)이다. 작품성도 재미도 아무 것도 없어, 댄젤 워싱턴 출연작 가운데서도 이런 게 있구나 경탄하는 재미로 보았다. 심지어 액션 영화에 둘째라면 서러울 마크 월버그가 공동 주연으로 출연하는 ‘버디 무비’인데도 그렇다. 대본도 연출도, 심지어 두 사람의 연기마저도 다른 출연작에 비해 유난히 어설프다고 느꼈다. 졸작이라기에도 아까울 이 영화를 나는 어쩌자고 다루기로 결심했는가?

“내가 그랬지. 인근에서 가장 맛있는 도넛 파는 식당 옆 은행은 털지 말라고.” 바비(댄젤 워싱턴)와 스티그(마크 월버그)는 동업 관계의 예비 범죄자, 즉 범법 행위로 돈을 버는 이들이다. 멕시코 최고의 마약상 파피(에드워드 제임스 올모스)와 위조 여권 등을 거래하는 한편, 뒤로는 그가 비자금을 예치하는 은행을 털 계획을 세운다. 사전 조사차 목표 은행 길 건너 식당(다이너)에 들렀는데, 도넛을 사러 들른 경찰을 보고 고민에 빠진다.

“여기 도넛 맛있나요?” “네, 인근 세 개 카운티(county·군)에서 가장 맛있어요.” 도넛이 맛있으니 경찰이 풀방구리에 쥐 드나들듯 자주 찾을 것이며 위치도 잘 알 것이다. 따라서 은행이 털리면 출동 시간도 빨라질 수 밖에 없다. 은행 자체는 살펴보니 만만했는데 의외의 변수를 발견한 셈이다.

둘은 경찰이 아예 도넛을 못 사도록 다이너에 불을 지르고 도망친 뒤 은행을 턴다. 음, 꽤 참신하고도 치밀한 논리인데? 둘 다 보통 범법자는 아니다 싶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반전이 있었다. 각자 상대방을 이용해 먹고자 신분을 속이고 접근한 정부 요원이었다. 바비는 마약 단속국 소속으로 파피를 잡고자 함정수사 중이었고, 스티그는 해군 정보요원으로 은행의 비자금을 노리고 있었다.

인근에서 가장 맛있는 도넛을 파는 식당 옆의 은행은 털지 말라. 이 한 마디에 댄젤 워싱턴과 마크 월버그로도 구제가 안 되는 지루함을 109분 동안 참고 견뎠다. 은행을 털 의향은 전혀 없지만 크나큰 가르침을 얻었다. 미국 경찰과 도넛의 관계가 뗄래야 뗄 수 없는 지경이다 보니, 이렇게도 세상을 볼 수 있구나.

그런데 미국 경찰은 왜 도넛을 좋아할까? 셀 수 없이 많은 영화와 드라마에서 미국 경찰이 도넛 먹는 장면이 나온다. 온갖 정황을 다 담지만, 특히 경찰의 무능함을 꼬집을 때 도넛의 존재감이 빛을 발한다. 도넛만 보면 정신을 못 차리거나, 과체중으로 게걸스레 도넛을 탐하는 희화화된 경찰이 등장한다.

튀긴 밀가루 반죽에 가루 설탕 등으로 단맛을 불어 넣은 음식은 어느 음식 문화권에도 있지만, 미국 경찰이 사족을 못 쓰는 도넛은 미국의 전통 음식이다. 1673년, 오늘날의 뉴욕 맨해튼인 뉴암스테르담에서 네덜란드 정착민 안나 요할레몽이 ‘올리쿠크(oly koek·기름 케이크·oil cake)’를 처음 팔았다. 이후 19세기에 오늘날의 이름과 고리 모양의 빵으로 자리 잡았고, 대공황기인 1938년 전후에는 미국에 입국하는 유럽 이민자들의 급식으로도 쓰였다.

도넛이 미국 경찰의 1호 간식으로 자리잡게 된 건 세계 2차 대전 이후다. 일단 싸다 보니 간식으로 먹기에 큰 부담이 없을 뿐더러, 야간 순찰을 돌 때 잠을 쫓느라 먹는 커피와 천생연분이기도 하다. 게다가 아침거리로 팔기 위해 도넛은 대개 늦은 밤이나 이른 새벽부터 만들다 보니, 모두가 잠든 시간에 들를 수 있는 드문 식품 판매처이다. 그런 시각에 경찰이 들르니 가게는 안전을 보장받을 수 있어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상황이기도 하다.

도넛은 크게 두 부류로 나뉜다. 첫 번째는 밀가루 반죽을 베이킹소다나 파우더 같은 즉석 화학 팽창제로 부풀려 만든 도넛이다. 팽창제의 알칼리가 반죽 재료의 산과 화학 반응해 나오는 이산화탄소의 흔적이 반죽에 기포로 남아 부드러움을 책임지는 원리다. 반죽을 만들자마자 바로 튀겨 먹을 수 있으므로 팬케이크나 머핀 등의 즉석빵(퀵브레드) 일가에 속한다. ‘케이크 도넛’이라 일컬으며 조직이 치밀하고 바삭한 편이라 커피에 담가 먹기에 좋다. 도넛 조직이 커피를 흡수해 부드러워질 뿐만 아니라 커피의 쓴맛이 단맛의 균형을 잡아준다. 세계적 도넛업체 던킨(Dunkin')의 브랜드명도 ‘담가 먹기(덩크 인·dunk-in)’에서 착안한 조어이다. ‘올드패션드’가 이름처럼 대표적인 케이크 도넛이다.

두 번째 부류는 반죽을 미생물인 효모로 부풀린 발효 도넛이다. 효모는 당을 먹고 이산화탄소를 발생시켜 반죽을 부풀리는데, 즉석 팽창제와 달리 시간이 좀 걸리는 한편 맛에도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두세 시간쯤 준비해야 튀길 수 있으며 케이크 도넛에 비해 훨씬 가볍고 부드럽다. 속에 공간이 넉넉해 가볍고 부드러우므로 잼이나 크림 등의 소를 채우기에도 좋다. 한국의 꽈배기 또한 발효 도넛에 속한다.

1983년 2월 25일. 이웅평 당시 상위(대령으로 예편)이 미그기를 몰고 귀순했던 날이다. 일요일이라 일종의 가족 행사처럼 도넛을 한창 튀기고 있었던 지라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다. 텔레비전에서 가수들이 등장해 노래를 부르다 말고 경보가 울리며 실제 상황이라 강조했으니, 가족은 갓 튀긴 도넛을 싸 들고 대피를 준비하고 있었다. 그래서 말인데 도넛 믹스로 팬케이크를 부치면 굉장히 맛있다. 둘 다 즉석 화학 팽창제가 함유된 가운데 전자의 맛이 후자보다 훨씬 더 진하기 때문이다. 팬케이크 믹스의 레시피를 따르되 가루만 도넛 믹스로 바꿔 흐르면서도 되직한 반죽을 만들어 같은 요령으로 부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