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곳 같은 굴 칼로 손바닥만 한 굴 껍데기를 반으로 쪼갠다. 뽀얗게 빛나는 굴 알맹이가 모습을 드러낸다. 여기에 다진 샬롯과 샴페인 식초, 다진 차이브를 올리고, 레몬을 살짝 톡톡 뿌리면 끝! 입안은 레몬의 상큼함과 굴의 바다향, 샬롯의 달큰함과 차이브의 풀향으로 가득 찬다.
“날것을 거의 먹지 않는 유럽 사람들이 왜 굴은 생으로 먹겠어요. 가장 맛있기 때문이죠.”
스페인·영국 등에서 23년간 요리를 배운 신승환 ‘엘초코 데 떼레노(서울 용산구)’ 셰프는 17년 된 굴 칼로 작업하며 이렇게 말했다. 경남 고성에서 굴을 공수하는 신 셰프는 “굴 알맹이 표면에 기름기가 자글자글 껴 있는 게 맛있는 굴”이라며 “무늬가 소고기 ‘마블’과 비슷해 굴 ‘마블’이라고 부른다”고 말했다.
◇생굴에 레몬 톡톡
기다리던 굴철이 돌아왔다. 원래 굴 철은 9월 중순부터 이듬해 4월까지. 동양에서는 ‘보리가 패면 굴을 먹으면 안 된다’고 했고, 서양에서는 ‘알파벳 R이 없는 달은 굴을 먹으면 안 된다’고 했다. 그러나 최근 따뜻한 날씨로 늦어져 굴철이 11월 초부터 시작된 것. 신 셰프는 “올해 늦어지긴 했어도 씨알이 크고 맛있다. 늦어진 만큼 풍년”이라고 했다.
굴에 레몬을 뿌려 먹는 건 서양 오이스터바에서 퍼진 문화다. 오이스터바 시작은 1738년 영국 맨체스터의 펍 ‘싱클레어’라는 설과, 1798년 영국 런던 레스토랑 ‘룰즈’가 처음이라는 설 두 가지다. 1880년대 후반 미국은 ‘오이스터 대유행’이라는 말이 나올 만큼 전역에서 인기였다.
국내에서는 2017년 문을 연 ‘펄쉘(구 아쿠아리오)’이 오이스터바 유행을 시작한 것으로 본다. 현재 1호점인 한남점은 공사 중, 2호점인 청담점만 운영 중이다. 당일 공수한 신선한 굴에 올리브오일과 타바스코 소스, 레몬을 뿌려 먹는다.
펄쉘이 미국 뉴욕에 있는 느낌이라면, 올해 7월 문을 연 서울 강남구 ‘아쿠아디마레’는 이탈리아 항구도시에 있는 기분이다. 조리대 앞 거대한 얼음판 위 신선한 해산물들을 보면 이탈리아 수산물 시장에 온 것 같다. 세계 3대 요리학교 일본 오사카 쓰지 출신인 배형준 셰프가 이탈리아 해산물에 푹 빠져 문을 연 곳이다. 배 셰프의 추천은 굴에 레몬만 살짝 뿌린 채 캐비아를 올려 먹는 것. 유럽 귀족이 된 기분이다.
지난 8월 서울 강남구에 문을 연 ‘트리드’는 강승원 셰프가 문을 연 곳이다. 대표 메뉴는 중국 볶음면 차우멘에서 영감을 받은 파스타 ‘굴 차우멘’. 그릴에 구운 굴과 아귀 간, 튀긴 감태, 해초 피클, 성게알 등이 바다 내음을 물씬 풍긴다. 잘 삶아진 부드러운 면에 아삭하고 바삭한 식감이 더해져 따로 놀지 않고 잘 어우러진다.
◇구운 굴에 위스키 촥촥
잘 구운 굴은 꼬독꼬독하니 풍미 진한 소고기 같다. 서울 강남구에 있는 ‘목탄장 도산’은 굴을 참숯에 구워준다. 처음엔 껍질째 숯불에 올려놓고 버터를 뿌려주며 굽다가, 살짝 익고 나면 알맹이만 빼 다시 굽는다. 그 위에 간장 소스를 바르고, 라가불린 위스키를 뿌려서 낸다. 김은현 셰프는 “굴은 직화로 구워야 겉 부분이 바삭해 맛있다”며 “위스키의 오크향과 피트향이 굴의 풍미를 높여준다”고 말했다.
무라카미 하루키도 자신의 책 ‘위스키 성지여행’에서 “갯내 물씬 풍기는 굴맛과 아일레이 위스키의 개성 강한, 바다 안개처럼 아련하고 톡톡한 맛이 전설 속의 트리스탄과 이졸데처럼 어우러진다”고 썼다.
통으로 쪄내 김이 모락모락 나는 한국식 굴찜이 먹고 싶을 땐 서울 용산구에 있는 ‘원효굴찜’이다. 굴을 가득 넣은 사각 철통을 불 위에 올려놓고 16분 뒤 하나씩 까서 초고추장에 찍어 먹는다. 탱글 말랑한 굴을 새콤달콤 매콤한 초고추장에 찍어 먹다 보면 ‘그래, 굴은 역시 초고추장이지!’란 생각이 절로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