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프릴은 어머니를 모시고 추수감사절을 지내기 위해 칠면조 구이를 준비한다./조선일보DB·MGM

삐이익. 영화 초반, 에이프릴(케이티 홈즈)이 추수감사절에 먹을 칠면조의 뱃속에 이것저것 쑤셔 넣는 걸 보고 바로 인상이 찌푸려졌다. 칠면조 요리 경연대회 참가자였다면 그 순간 바로 탈락이다. 버저를 울리며 화면에 커다란 ‘X’표도 쳐야 한다. 삐이익. 기본 4~5kg은 나갈 칠면조 뱃속에 다른 음식을 넣어 익히다니, 큰일 날 수도 있다.

그래서 탈락이라고요? 전통적인 조리법을 따르려면 채워야 하지 않습니까? 물론 일리 있는 주장이다. 칠면조 뱃속에 채우는 음식은 이름부터 ‘스터핑(stuffing)’ 즉 ‘채우는 것’이다. 뱃속에 넣어 익히지 않고서는 그런 이름이 붙을 수 없다. 따지고 보면 우리가 백숙을 만들 때 닭 뱃속에 찹쌀을 넣고 익히는 것과 완전히 똑같은 이치다.

하지만 닭과 칠면조는 체급이 달라도 너무 다르다. 닭, 특히 백숙용 영계가 1kg 이하라면 칠면조는 3.5~6.5kg이나 나가니 서너 배 이상 무겁고 덩치도 훨씬 크다. 게다가 둘은 조리법도 다르다. 백숙은 닭을 끓는 물에 절반에서 전체까지 잠겨 푹 익힌다면, 칠면조는 뜨거운 공기로 덥힌 공간인 오븐에서 익힌다. 공기는 물보다 효율이 떨어지는 매개체이므로 칠면조는 바깥부터 익기 시작하고, 수분은 증발하는 한편 가운데로 서서히 이동한다. 결국 온도가 충분히 올라가지 않아 세균이 죽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은 수분이 스터핑으로 몰린다. 자칫 잘못하면 온 가족이 모여서 나눠 먹고는 단체로 식중독에 걸릴 수 있다.

이처럼 식품 안전의 차원에서 스터핑이 매우 위험해질 수도 있으므로 요즘은 칠면조의 뱃속을 채우지 말고 구우라고 권한다. 그래야 오븐의 뜨거운 공기가 잘 통하면서 칠면조가 되려 잘 익는다. 스터핑은 따로 조리하면 그만이다.

하지만 에이프릴에게 이처럼 세세한 요령까지 바라는 건 아무래도 무리이다. 칠면조를 굽겠답시고 오븐에서 그릇을 꺼내는 것만 봐도 경험이 거의 혹은 전혀 없음을 알 수 있다. 오븐을 자주 쓴다면 찬장 대신 쓴답시고 그릇을 넣어 둘 리가 없기 때문이다. 정황과 여건도 그다지 좋지 않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고향을 떠나 살고 있는 뉴욕의 아파트 환경은 열악하다. 오븐에서 그릇은 꺼냈지만 아예 작동조차 되지 않는다. 칠면조처럼 커다란 식재료는 오븐 없이 익힐 수 없으므로 에이프릴은 갑자기 난감해진다.

그러게, 미리 확인이라도 좀 해보지. 보는 내가 다 안타깝다. 사실 추수감사절 식사는 하루 이틀에 준비할 수 없는 거사이다. 그래도 칠면조가 해동되어 있는 걸 보면 아예 준비를 안 한 건 아니건만. 칠면조를 굽지 못했다가는 오랜만에 만나는 가족에게 면목이 없어진다. 사이가 좋지 않았던 어머니는 암으로 양쪽 유방을 모두 절제했고 항암치료 탓에 가발을 쓴다. 뉴욕까지 장거리 자동차 여행이 가능한 몸 상태인지조차 확실치 않다. 큰딸이 초대했기에 꾸역꾸역 가는 여정이지만 아무도 마음이 편하지 않다. 다급해진 에이프릴은 오븐 동냥을 위해 아파트를 오르내리며 문을 두들긴다. 저기요, 3C호의 에이프릴인데요. 도움이 필요해요.

사실 요령을 잘 알더라도 칠면조는 아주 골치 아픈 식재료이다. 미국은 대체 어쩌다가 이렇게 못생기고 덩치도 큰데다가 퍽퍽해서 맛도 없는 새를 고유의 명절에 먹게 된 것일까? 미 대륙으로의 이주 및 정착과 관련된 유래를 모르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칠면조를 꼭 먹어야만 하는 걸까? 명절과 그에 딸린 음식 문화가 분명하게 존재하는 한국인으로서 이해는 할 수 있다. 그러나 명절을 지키기 위해 미국인들이 지켜야 하는 대가는 만만치 않다.

모든 문제는 칠면조가 매력적인 식재료가 아니라는 사실에서 비롯된다. 칠면조가 본디 맛있는 식재료라면 사시사철 즐겨 먹겠지만 그렇지 않다. 덩치는 크지만 기름기도 맛도 거의 없어 일상의 식탁에서는 찬밥 신세다. 가슴살이 햄 등으로 가공되어 샌드위치 재료로 팔리고, 다리는 디즈니월드 같은 놀이동산에서 먹을 수 있지만 확실히 일상의 식재료는 아니다. 다이어트를 위해 토할 때까지 먹어본 적도 꽤 있지만, 그 맛없다는 닭가슴살도 칠면조 가슴살에 비하면 양반이다.

이처럼 평소에는 찾는 소비자가 거의 없다시피 하므로 칠면조는 추수감사절 연휴 며칠을 기다리며 냉동 유통된다. 그렇다. 큰 덩치 탓에 칠면조는 요리 이전에 해동을 비롯한 준비부터 매우 번거롭다. 냉동 식재료는 냉장실로 옮겨 천천히 해동시키는 게 최선이다. 그래야 온도 차이를 최대한 줄여 세균 발생을 억제하며 해동시킬 수 있다. 하지만 칠면조는 크기와 무게 탓에 그럴 수가 없다. 냉장고에 쉽게 들어갈 가능성이 낮고, 해동도 엄청나게 오래 걸린다. 물론 1파운드(약 450g)에 30분씩 걸린다는 기준이 있기는 하지만, 가장 작은 축에 속하는 4.5kg의 해동에 하루에서 사흘까지 걸린다. 그래서 아이스박스에 담아 찬물을 자주 갈아주며 해동시켜야 하니 번거로울 수 밖에 없다.

새로운 조리 기술이 발견 및 발전되면서 스터핑 뿐만 아니라 전통적인 칠면조 조리법 자체가 도전 받고 있다. 칠면조 조리의 효율 및 발전을 위해 많은 의견이 쏟아지는 가운데, 애초에 칠면조처럼 커다란 식재료를 통째로 익히려는 시도 자체가 잘못됐다는 의견이 가장 급진적이다. 근육의 특성이나 생김새, 부피가 다르니 통째로 익히면 원래도 맛없는 식재료가 더 맛없어진다는 것. 대안으로 날개와 다리, 몸통을 분리해 조리할 것을 권하지만, 칠면조를 해체하면 상징성이 사라져 버리므로 정서적인 차원에서는 아무래도 설득력이 떨어진다.

세 가구나 돌며 오븐을 동냥하고 개에게 뜯어 먹힌 다리를 빵 반죽으로 대체해 모양을 갖추는 등, 우여곡절 끝에 에이프릴의 칠면조가 완성된다. 멀리서 찾아온 가족 또한 오락가락하는 감정을 간신히 추스르고 다 함께 식탁에 모인다. 평소라면 참으로 마음이 따뜻해지는 이야기이지만 올해만은 사정이 좀 다르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이미 26만 명 가까운 미국인이 사망한 가운데, 관계당국의 권고를 무시하고 많은 이들이 추수감사절을 쇠기 위한 여정을 계획 중이라고 한다. 입이 줄어 올해는 작은 칠면조가 더 잘 팔린다는 외신도 접했는데, 대세는 아닌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