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미국의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롭 라인하트는 끼니 챙기기에 염증을 느껴 대안을 모색한다. 생화학 교과서와 미 정부의 웹사이트를 참고해 글루콘산포타슘, 탄산칼슘, 말토덱스트린, 올리브기름 등 생존에 꼭 필요한 원료 35종을 구매한다. 분말 형태의 원료를 배합한 대체 식사를 물에 타 두 달간 섭취한 결과는 놀라웠다. 건강은 좋아졌고 식료품비는 3분의 1로 줄었다. 마침내 라인하트는 2014년 상품화의 첫발을 내딛는다. 대체식 ‘소일렌트(Soylent)’ 이야기다.
소일렌트라는 제품명은 1973년 SF영화 ‘소일렌트 그린(Soylent Green)’에서 따왔다. 2022년 영화 속 지구는 온실가스 효과로 인한 온난화 등으로 황폐하다. 원활한 식량 생산이 어려운 가운데 인구는 폭발적으로 늘어 특권층이 아니면 과일이며 고기, 깨끗한 물은 구경도 못한다. 맛으로 음식을 먹는 시대는 막을 내렸고 대중은 소일렌트라는 가공식품으로 연명한다.
콩(soy)과 렌틸콩(lentil)에서 이름을 딴 영화 속 소일렌트는 콩 단백 등으로 만드는 무교병(반죽을 발효하지 않고 구운 빵)이다. 소일렌트 레드(Red)와 옐로(Yellow) 두 가지에 ‘소일렌트 그린(Green)’이 새롭게 합류한다. 플랑크톤으로 만들었다는 그린은 더 맛있고 영양가도 높지만 배급이 원활하지 않아 시민의 분노를 산다. 이런 현실 속에서 소일렌트 산업 이사인 새뮤얼슨이 살해당한다. 사건을 맡은 형사(찰턴 헤스턴)는 전담 수사관인 솔과 함께 소일렌트 그린의 엄청난 비밀을 발견하고 충격에 휩싸인다.
굳이 이런 영화의 소재에서 제품명을 따와야만 했을까? 그게 궁금해서라도 소일렌트를 먹어봐야 했다. 정식 수입은 안 되지만 오픈마켓을 통해 직구할 수 있다. 바로 마실 수 있는 음료가 414mL 12개들이 한 상자에 배송비 포함, 6만2910원이다. 엄청난 신개념 제품은 아니다. 근육 운동 보조제 등 분말 제형의 단백질 보충제가 이미 1950년대에 세상에 등장했다. 요즘은 채식 수요가 높아지면서 대두단백에서 추출한 식물성 보충제가 대중화됐으니 소일렌트도 여기 속한다.
텁텁하고 걸쭉한 두유맛인 소일렌트 한 병을 마시면 400kcal와 단백질 20g, 탄수화물 38g과 지방 24g, 각종 비타민 및 영양분을 섭취할 수 있다. 하루 세 끼 전부를 소일렌트로 대체하면 도합 1200kcal이므로 성인 일일 권장 열량의 60~80%는 숟가락 한 번 들지 않고 보장받는다. 비교를 위해 국내에서 잘 팔리는 대체 식사류 몇 가지도 사먹어 보았다. 소일렌트가 역하지 않고 가장 먹을 만했다.
영화 속 소일렌트 그린의 비밀은 충격적이다. 물론 실제 소일렌트와는 무관하니 안심할 것. 끼니를 챙겨 먹기 귀찮아 약 같은 가공 식품으로 대체한다는 사실에 거북함을 느낄 수도 있지만 코로나로 외식의 선택지가 거의 사라진 요즘이라면 이거라도 먹는 게 나을지 모른다. 하루 세 끼 밥 차리기가 보통 고된 일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