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석동(68) 전 금융위원장이 ‘경제미식가’라는 별명을 얻었다. “평생 경제정책만 한 사람인데 가성비 높은, 1만원을 크게 넘지 않는 식당들만 모아 책을 냈더니 그런 별명이 붙었나 봅니다.” 그는 ‘한 끼 식사의 행복’(김영사)을 최근 발간했다. 서울 맛집 165곳을 일일이 검증해 실었다.
값비싼 코스 요리나 한정식이 아닌, 콩국수·짜장면·칼국수·김치찌개·설렁탕·돈가스 등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단품 메뉴를 내는 곳들이다. 그는 “돈의 많고 적음이 행복을 좌우하지 않듯이, 가격의 높고 낮음이 음식 맛을 결정하지 않는다”며 “싼값에도 얼마든지 맛있는 음식이 많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고 했다. ‘찬 바람 부는 날 갈 만한 곳을 꼽아 달라’고 했다.
한강집생태
“1981년 지금 가게에서 가까운 골목 안에서 조그맣게 시작했죠. 설렁탕, 찌개 등 여러 메뉴를 내다가 손님이 질리지 않는 메뉴로 찾아낸 게 생태탕이랍니다. 제가 1990년대 다닐 때는 허름한 가게에 테이블 두세 개밖에 없어 한참 줄 서야 먹을 수 있었어요. 이제 깔끔하고 규모 있는 가게를 차렸지만, 그래도 손님이 넘치죠. 반찬은 구운 김, 김치, 깍두기 등 단출하지만 구운 김으로 싸 먹는 밥이 탕과 너무 잘 어우러져요.”
대하, 꽃게 등 각종 해산물을 10시간 이상 우려낸 국물이 얼큰하면서도 부드럽고 구수하다. 얼리지 않은 명태를 뜻하는 생태를 사용해 살이 촉촉하고 부드럽다. 알, 곤이 등 내장도 푸짐하게 넣어준다. 2인 이상 주문해야 한다. 포장도 가능하다. 생태매운탕 1만4000원. 서울 용산구 백범로 400, (02)716-7452
은주정
“특이하게 쌈 싸 먹는 김치찌개를 해요. 푸짐하게 들어가 있는 돼지고기와 김치를 건져 풍성하게 주는 각종 쌈 채소에 싸 먹으면 별미죠. 김치찌개는 아주머니가 오며 가며 냄비 뚜껑을 열고 알아서 끓여주니 가만 앉아 계세요. 촐싹대면 초보 손님이죠.”
방산시장 골목에 자리 잡은 김치찌개 전문점. 점심에는 ‘쌈 싸 먹는 김치찌개’, 저녁에는 ‘삼겹살&김치찌개’ 딱 하나만 판다. 착석하면 종업원이 알아서 인원수에 맞춰 냄비에 육수, 김치, 돼지고기, 두부, 양파 등을 담아 불 위에 얹어준다. 이어 대접에 담은 흑미밥과 깻잎된장절임, 고추절임, 멸치볶음 등 반찬이 줄줄이 나온다. 국물이 진하고 칼칼하다. 쌈 싸 먹는 김치찌개 8000원, 삼겹살&김치찌개 1만2000원. 서울 중구 창경궁로8길 32, (02)2265-4669
손칼국수
“마니아들 사이에선 꼭 가봐야 하는 칼국수 명가로 꼽히죠. 유명한 칼국숫집 많다는 혜화동, 성북동의 이름을 실감하게 하는 집입니다. 푹 끓인 사골 국물과 손으로 반죽해 부드럽게 잘 삶은 면발이 조화롭습니다.”
혜화로터리에서 성북동 방향으로 조금 올라가 오른쪽 골목 안에 숨어있는 가정집인 데다 간판도 작아서 찾기가 쉽지 않다. 혜화·성북동 일대 칼국숫집들은 칼국수 외에 ‘비장의 사이드메뉴’를 가지고 있는데, 이 집은 소 간으로 만드는 간전이 유명하다. 생선전도 훌륭하다. ‘혜화동손칼국수’라고 검색해야 나온다. 칼국수 8000원, 간전·생선전 각 1만6000원. 서울 종로구 혜화로 10-5, (02)764-7947
피양콩할마니
“평양 출신 할머니와 따님이 운영하는데, 할머니의 음식 사랑과 따님의 손님 사랑이 돋보이는 집입니다. 콩요리 전문점답게 가게 한편에서 100% 국산 콩을 맷돌에 갈아서 써요. 콩비지는 하얀 순수 콩비지 외에 김치 콩비지, 무 콩비지, 버섯 콩비지가 있어요. 조미료를 일절 쓰지 않아 심심하면서 구수한 콩 고유의 맛을 순수하게 즐길 수 있죠. 여름에 하는 콩국수도 일품입니다.”
‘피양’은 평양, ‘할마니’는 할머니의 방언. 이 집 콩비지는 정확하게는 두부 만들고 남은 찌꺼기로 만드는 비지가 아니라 콩 전체를 갈아 쓰는 되비지다. 전골, 보쌈, 녹두지짐 등 요리가 다양해 회식하기에도 알맞다.
콩비지 8000원, 콩국수 1만원. 서울 강남구 삼성로81길 30, (02)508-047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