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깨에 밀려 만년 2인자에서 벗어나지 못하던 들깨가 새삼스레 각광받고 있다. 외식·식품 업계에서는 ‘들기름 막국수’가 메뉴나 제품으로 속속 출시되고 있고, 일반 소비자들은 ‘올리브오일보다 이롭다’며 매일 아침 공복에 들기름을 한 숟가락씩 들이켜고 있다.
해외에서는 블룸버그 등 유력 언론에서 ‘당신의 주방에 꼭 챙겨둬야 할 건강식품’이라며 들기름을 소개했다. 뉴욕 등 해외 스타 요리사들도 들기름은 ‘식물성이면서도 버터처럼 고소한 맛이 나는 독특한 기름’으로, 깻잎은 ‘한국을 대표하는 허브’로 활용하기 시작했다. 이탈리아의 한 수제 맥주 양조장에서는 깻잎을 넣어 만든 맥주를 내놓기도 했다. 그야말로 ‘들깨의 재발견’이다.
들기름 막국수는 요즘 가장 화제가 되고 있는 국수다. 외식 사업가 겸 방송인 백종원씨도 얼마 전 ‘백종원의 골목식당’ 프로에서 감자옹심이 식당에 “요즘 들기름 막국수가 유행”이라며 신메뉴로 추가해보라고 추천했을 정도. 고추장·고춧가루 등을 주재료로 하는 매운 양념 대신 들기름·들깻가루·김가루·간장 등에 비벼 먹는다.
경기도 용인 수지에 있는 ‘고기리막국수’에서 알려지기 시작해 서울 교대 근처 평양냉면 집 ‘서관면옥’, 강남역 막국수 집 ‘청류벽’, 신촌 소바 집 ‘스바루’, 마곡동 제주산 돼지고기 전문점 ‘배꼽집 탐라통통돼지’ 등 들기름에 비빈 국수도 신메뉴로 속속 나오고 있다. 인기가 심상치 않다고 판단했는지 오뚜기와 풀무원도 가정용 들기름 막국수 제품을 지난 3월 거의 동시에 출시했다.
이러한 들기름 막국수 유행에 대해 식문화 콘텐츠 기업 ‘다이어리알’ 이윤화 대표는 “사람들이 자극적인 맛 대신 단순하면서 건강한 맛을 지향하는 추세가 특히 코로나 이후 두드러지는 데다, 들기름은 어려서부터 먹어온 익숙한 맛이기 때문에 더 쉽게 좋아하게 되는 듯하다”고 했다.
들기름이 건강에 이롭다는 인식은 고급 참기름과 들기름을 판매하는 이른바 ‘프리미엄 식용유 전문점’이 늘어나면서 확산됐다. 매장에서 직접 참기름과 들기름을 뽑는 서울 삼청동 ‘콩두 점점’ 한윤주 대표는 “건강에 좋다며 올리브오일을 아침마다 한 숟가락씩 드시다가 들기름으로 바꾼 분이 많다”고 했다.
“참기름과 들기름 둘 다 몸에 좋지만 특히 들기름은 오메가3 지방산 함량이 60%로 매우 높은 편이에요. 오메가3 지방산은 염증과 혈액 응고를 억제해 심혈관계 질환 예방에 도움이 된다고 알려졌죠.” 들깨와 참깨는 다 같이 깨라고 하지만, 들깨는 꿀풀과 1년생 초본식물이고 참깨는 참깻과 1년생 초본식물로 서로 매우 다르기 때문에 성분 차이가 나타난다.
프리미엄 식용유 전문점들은 들깨를 볶지 않거나 가볍게 뽑아 짜내는 ‘생들기름’과 ‘저온 압착 들기름’을 판다. 들깨를 높은 온도에서 짙은 색이 나게 볶으면 고소한 풍미도 강해지고 기름도 훨씬 많이 뽑을 수 있지만, 자칫 태웠을 경우 벤조피렌이라는 발암물질이 생성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전혀 볶지 않은 들깨로 저온 착유(搾油)한다는 한 대표는 “같은 들깨 1kg을 볶지 않고 뽑으면 기름이 190~210mL 나오지만, 270도에서 볶아 뽑으면 660~700mL로 3배 이상이 된다”고 했다.
해외에서 한국 음식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들깨·들기름·깻잎도 각광받고 있다. 들깨를 재배하고 식용하는 국가는 중동과 동남아에 일부 있지만, 한국처럼 대량으로 소비하는 곳은 드물다. 특히 깻잎을 먹는 건 한국이 유일하다시피 하다. 깻잎이 해외에서 ‘코리안 허브(Korean herb)’로 주목받는 이유다.
저온 압착 들기름과 참기름을 뉴욕 ‘대니얼’ ‘아토믹스’ ‘바타드’ 등 해외 유명 레스토랑에 납품하는 ‘쿠엔즈버킷’ 박정용 대표는 “외국 셰프들이 참기름과 들기름 둘 다 좋아하지만 들기름에 특히 관심이 많다”고 했다. “참기름은 중국이나 동남아 음식에서 경험해봤지만, 들기름은 냄새도 맡아본 적이 없을 만큼 모르기 때문입니다. 셰프들은 ‘들기름은 식물성 지방이면서도 버터처럼 동물성 기름을 연상케 하는 짙은 고소한 맛과 향을 가지고 있다’며 신기해하죠.”
이탈리아 밀라노에 있는 수제 맥주 양조장 ‘람브라테(Lambrate)’에서는 깻잎을 넣은 ‘K비어(beer)’를 2010년 내놓기도 했다. K는 한국(Korea)과 깻잎(Kkennip)을 의미한다. 한국에서 가져온 종자로 밀라노에서 재배한 깻잎을 섭씨 65도 물에 넣어 맛과 향을 우려내 추출액을 만든 뒤 에일 맥주에 배합했다.
맥주를 맛본 유럽 사람들은 “레몬과 타임(허브의 일종) 향이 난다” “상큼하다”고 평가했다. 음식 평론가 강지영씨는 “외국 사람들은 대부분 한국에 와서 깻잎을 처음 맛본다”며 “풍미가 워낙 강해서 호불호가 심하게 갈리지만, 마치 동남아 고수처럼 일단 좋아하게 되면 깻잎의 매력에 완전히 빠져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