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질한 장어는 초벌구이해서 기름기를 쫙 뺀 후 소금을 치거나 양념을 발라 구워낸다. /조선일보DB

낮 최고 기온이 30도를 넘었네요. 본격적인 여름의 시작인가봅니다. 여름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보양식은 장어(長魚)입니다. 장어라고 뭉뚱그려 말하지만 사실 이름이 여럿이죠. 뱀장어·갯장어·붕장어·곰장어·민물장어 등 우리 말 이름도 많은데, 여기에 하모·우나기·아나고 등 일본어 명칭까지 더해져 더욱 헷갈리죠. 오늘은 장어의 종류에 대해 말씀 드리겠습니다.

◇ 뱀장어, 우리가 아는 그 장어

한국에서 먹는 장어는 뱀장어·갯장어·붕장어·먹장어 이렇게 4가지입니다. 이중 여름 보양식으로 가장 즐겨 먹는 건 ‘뱀장어’입니다. 일본명 ‘우나기’. 뱀장어보다 ‘민물장어’를 판다고 소개하는 식당이 더 많은 듯합니다. 정식 명칭인 뱀장어가 뱀을 연상케 해 꺼림칙해하는 이들이 많기 때문이기도 하고, 네 장어 중에서 유일하게 민물에서 살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바다와 강을 오가며 삽니다. 수심 2000~3000m 깊은 바다에서 태어나 강으로 올라와 5~12년 살다가 심해로 돌아가 알을 낳고 죽는다고 알려졌습니다. 바다에 살다가 알을 낳으러 자신이 태어난 강으로 돌아오는 연어와 정반대죠. 네 장어 중 유일하게 양식이 가능하기도 합니다. 매년 봄 강으로 올라오는 어린 실뱀장어를 잡아다 양식하는 거죠.

뱀장어 중에서는 ‘풍천장어’를 최고로 칩니다. 풍천은 특정 지역이 아니라 바다와 강이 만나는 기수 지형을 뜻합니다. 뱀장어가 바닷물을 따라 강으로 들어올 때 일반적으로 육지 쪽으로 바람이 불기 때문에 ‘바람을 타고 강으로 들어오는 장어란 뜻으로 바람 풍(風)자와 내 천(川)자가 붙었습니다. 전북 고창 선운사 앞 인천강, 경기도 강화도 앞바다 등이 이름난 풍천장어 산지죠.

풍천 지형을 가진 곳들은 옛날부터 장어가 많이 잡혔을 뿐 아니라 갯벌에 영양분이 풍부해 장어가 살찌게 자랄 수 있는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기도 합니다. 자연산 풍천장어를 최고로 치지만, 이러한 곳에서 양식한 풍천장어도 그에 못잖은 대접을 받는 이유입니다.

고흥반도가 있는 전남 여수와 고흥 지역에서 맛볼 수 있는 갯장어 데침(하모 유비키). /조선일보DB

◇ 갯장어, 일본서 더 대접 받아

갯장어는 과거 서울 등 수도권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가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장어입니다. ‘하모(ハモ)’라는 일본어로 더 유명하죠. 개처럼 이빨이 날카롭고 성질이 사나워서 잘 물기 때문에 갯장어라는 이름을 얻었는데요, 하모도 ‘물다’는 뜻의 일본어 ‘하무(ハム)’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있습니다. 붕장어와 구분이 어려울 정도로 닮았지만 주둥이가 더 길고 뾰족하면서 등지느러미가 가슴지느러미가 보다 앞에서 시작된다는 차이가 있습니다.

갯장어. 개처럼 날카로운 이빨과 뾰족한 코가 사나운 성질을 드러낸다. /조선일보DB

갯장어라는 이름보다 하모로 더 알려진 건, 일본인들이 일제강점기 때 한반도에서 잡히는 갯장어를 전량 일본으로 빼가기 위해 ‘수산통제어종’으로 지정했기 때문입니다. 그만큼 일본에서는 높은 대접을 받는 장어입니다. 특히 교토와 오사카를 중심으로 한 일본 간사이(關西)에서 귀한 대접을 받지요.

음식 작가 박정배씨는 “갯장어는 과거 일본 수도였던 교토의 여름 마쓰리(축제)에서 반드시 있어야 하는 음식이었다”며 “특히 전남 여수, 경남 통영 등 한반도 남해안산(産) 갯장어는 지금도 그렇지만 과거에도 일본산을 능가하는 품질로 유명했다”고 했다.

이처럼 최고 대접을 받았기에 해방 이후에도 한참 동안 남해안에서 잡힌 갯장어는 일본으로 전량 수출됐습니다. 남해안 일대를 제외한 한반도 대부분 지역에서 갯장어를 몰랐던 이유죠.

요즘 갯장어가 전국적으로 알려지면서 뱀장어 능가하는 인기를 얻고 있습니다. 양식이 불가능한데다 여름에만 잡히기 때문에 연중 내내 먹을 수 없는 희소성, 거기에 양식으로 가격이 상대적으로 저렴해진 뱀장어에 비해 비싼 가격으로 인해 고급 보양식으로 인식되는 듯합니다.

◇ 붕장어, 서민의 포장마차 안주

붕장어(아나고)는 몸통 옆으로 흰 구멍이 점선처럼 길게 이어 나 있다. /조선일보DB

붕장어라면 고개를 갸웃해도 ‘아나고’라면 바로 안다는 분들이 많을 겁니다. 붕장어는 싸고 푸짐한 포장마차 단골 안주로 사랑 받아왔죠. 양식은 불가능하지만 일년 내내 한반도를 불러 싼 모든 바다에서 잡히는데다 어획량도 많은, 가장 대중적이고 저렴한 장어죠.

붕장어의 학명 ‘congermyriaster’는 구멍을 뚫는 물고기란 뜻의 그리스어 ‘gongros’에서 유래했답니다. 일본어 아나고(穴子)’도 중장어가 모래 바닥을 뚫고 들어가는 습성 때문에 구멍 혈(穴)자가 붙어서 만들어진 이름이랍니다.

대가리에서 꼬리 쪽으로 나 있는 40여 개의 옆줄 구멍 때문이라는 설도 있습니다. 중국에서는 이 옆줄 구멍이 별 같다고 해서 ‘싱만(星鰻)’이라 부릅니다.

◇ 먹장어, 장어 아닌 하등 원구류

‘꼼장어’나 ‘곰장어’로 더 알려진 먹장어는 사실 장어가 아닙니다. 원칙적으로 따져서 물고기가 아니라서요. 턱이 없고 입이 동그란 탓에 원구류로 분류됩니다. 턱이 없어서 무악류로 분류되기도 하죠. 원구류이건 무악류이건 척추동물 중에서 가장 하등한 원시 생명체이죠.

학계에서는 살아 있는 화석으로 불리기도 합니다. 4억만년이 넘는 원시종 화석이 발견됐습니다. 그만큼 생명력이 강력합니다. 먹장어가 스태미나 식품이 된 것도 가죽을 벗겨도 한참 동안 살아서 꼼지락거리기 때문입니다. 꼼지락거려서 꼼장어라는 속칭을 얻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먹장어의 ‘먹(墨)’은 ‘검다’는 의미로 시각장애인(장님)을 뜻합니다. 눈이 퇴화해 피부에 흔적만 남아 ‘눈이 먼 장어’이기 때문입니다. 전남 지역에선 ‘묵장어’라고 부르죠. 곰장어의 ‘곰’도 마찬가지 의미입니다. 일본에서는 ‘장님뱀장어’란 의미인 ‘메쿠라우나기’가 장애인을 비하한다는 지적을 받자 2007년 ‘누타우나기’로 바꿨습니다. ‘누타’는 점액입니다.

통영 무정동 ‘야간열차’ 먹장어(꼼장어) 소금구이. 무정동 ‘꼼장어골목’에는 야간열차를 비롯 먹장어집 다섯이 모여있다. /조선일보DB

먹장어는 공격을 당하거나 스트레스가 심해지면 머리 뒤쪽에서 꼬리지느러미까지 줄지어 있는 점액공으로 끈적한 점액을 뿜습니다. 끈끈한 점액질은 강력한 무기입니다. 점액질로 뒤덮인 포식자가 숨을 쉬지 못해 질식사하기도 할 정도입니다. 어부들이 오랫동안 먹장어를 좋아하지 않았는데요, 점액질로 뒤덮이면 그물을 버려야 할 정도이기 때문입니다.

과거 어부들이 먹장어를 기피한 건 점액질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먹장어는 빨판처럼 생인 입으로 물고기 살을 빨아 먹거나 죽은 바다동물 사체에 입을 붙여 영양분을 빨아 먹습니다. 눈이 없고 겉모습이 징그러운데다 이처럼 식습성마저 혐오스러워 우리나라뿐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도 먹지 않았죠. 하지만 국내에서는 언젠가부터 인기를 얻었습니다. 부산 자갈치시장이 원조로 꼽히는 ‘꼼장어구이’가 대표적이죠.

언제부터 왜 먹장어를 먹었는지는 확실하게 알려지지 않았습니다만, 비교적 최근 일입니다. 조선시대 심지어 일제강점기에도 먹었다는 기록이 없습니다. 박정배 작가는 “해방 후 먹을거리가 부족한 시절, 먹장어 껍질을 벗겨내고 남은 살을 먹기 시작했을 것이라는 추측은 상당히 설득력이 있다”더군요.

먹장어 껍질은 영어로 ‘일스킨(eel skin)’이라고 해서 핸드백이나 지갑, 벨트 등 가죽제품의 고급 원료로 인기가 있습니다. 장어 가죽은 얇으면서도 질기고 부드러울 뿐 아니라 행운을 가져다 준다는 믿음 때문이죠.

이상으로 장어 이름과 종류에 대해 알아봤습니다. 다음에는 장어 종류별로 가장 맛있게 먹는 법을 알려드릴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