낚싯바늘에 걸려 올라온 갯장어는 날카로운 이빨과 뾰족한 주둥이가 이리처럼 사나워 보였다. 나포리호 구상회 선장은 “독사 맹키로 잘 무니 조심하라”고 했다./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경남 고성 포교마을 어항을 출발한 지 15분쯤 지났을까, ‘나포리호’ 선장 구상회(70)씨가 칠흑 같은 자란만(灣) 한복판에 배를 멈춰 세웠다. 새벽 3시 30분. ‘나포리’라고 적힌 하얀 부표가 배 좌현(左舷) 앞쪽에 둥둥 떠 있었다. 구 선장이 갈고리로 부표를 끌어당겨 건져 올렸다.

부표에 달린 모릿줄(주낙용 낚싯줄)을 좌현에 고정된 양승기(揚繩機)에 걸고 스위치를 눌렀다. 양승기가 천천히 돌아가자 바다 밑바닥에 쳐놓았던 모릿줄이 감겨 올라왔다. 모릿줄엔 3m 간격으로 가짓줄이 매달려 있었고, 가짓줄 끝에는 낚싯바늘이 하나씩 달려 있었다.

빈 낚싯바늘 아니면 잡어만 걸려 한참 올라왔다. 드디어 구 선장이 “하모(갯장어) 온다!”고 소리쳤다. 구 선장이 양승기를 세우더니 “가까이서 보라”며 가짓줄을 넘겼다. 기다란 갯장어가 낚싯바늘에서 벗어나려고 상하좌우로 요동쳤다.

대가리 아래를 손으로 꽉 잡고 갯장어를 살폈다. 길고 뾰족한 이빨이 여럿 박힌 가늘고 뾰족한 주둥이가 이리처럼 사나워 보였다. 구 선장이 “조심하라”고 했다. “이놈들이 독사 맹키로 얼매나 잘 문다꼬. 하모라는 이름도 ‘문다'는 일본말이제.”

◇“여수 사람도 갯장어는 고성서 사가요”

고성 자란만은 갯장어 산지로 명성이 높다. 구 선장은 “자란만 갯장어는 다른 지역 것보다 ㎏당 5000원 더 비싸게 팔린다”고 했다. “장어 자체가 달라요. 다른 지역 갯장어는 은빛이지만, 우리 갯장어는 금빛입니다. 청정해역이라 깨끗하고, 물살이 약해 살도 부드럽고. (전남) 여수가 갯장어로 유명하다꼬예? 여기서 갯장어 사간다 아닙니꺼.”

갯장어는 ‘개장어(개+장어)’에서 온 이름이다. 정약전은 갯장어를 ‘자산어보’에 이렇게 소개했다. ‘견아려(犬牙鱺) 속명 개장어(介長魚). 입은 돼지 같이 길고 이는 개와 같아서 고르지 못하다. 뼈가 더욱 견고하여 능히 사람을 물어 삼킨다.’ 정설은 아니지만 하모(ハモ)라는 일본어 이름도 ‘문다’는 뜻의 ‘하무(食む)’에서 왔다고 알려졌다.

알쏭달쏭 헷갈리는 장어의 종류.

빠르게 알려지고 있지만, 갯장어는 서울을 포함한 수도권에서는 익숙하지 않다. 국내 소비되는 장어는 뱀장어·붕장어·먹장어·갯장어 이렇게 넷. ‘민물장어’로 통하는 뱀장어와 일본 이름 ‘아나고’로 더 익숙한 붕장어, 포장마차 단골 술안주 ‘꼼장어’(먹장어)는 연중 내내 잡힌다. 특히 뱀장어는 양식이 가능해 어렵잖게 접할 수 있다.

반면 갯장어는 온도에 민감해 수온이 섭씨 18도 이상 올라가는 5~10월에만 잡힌다. 통발을 사용해 상대적으로 쉽게 잡을 수 있는 나머지 장어들과 달리, 갯장어는 낚시 아니면 잡히지 않는다.

남해 일대에서 잡히는 갯장어는 얼마 전까지 일본으로 전량 수출되다시피 했다. 갯장어는 일본 간사이(關西) 지역에서 최고의 여름 별미로 꼽힌다. 일본 3대 축제 중 하나인 교토의 ‘기온마쓰리’에서 갯장어는 신에게 바치는 중요한 음식. 기온마쓰리를 ‘하모마쓰리(갯장어 축제)’라고 부를 정도다. 교토 사람들은 마쓰리가 있는 7월 한 달 동안 갯장어를 유비키(샤부샤부)로 먹는다.

교토 사람들이 갯장어를 사랑하게 된 건 강한 생명력 때문이다. 음식 작가 박정배씨는 “갯장어는 드물게 피부 호흡이 가능한 생선이라 물에 나와도 살 수 있다”고 했다. 지금처럼 교통과 도로가 발달하지 않았던 과거, 오사카에서 80㎞ 가량 떨어진 교토까지 가려면 긴 시간이 필요했다. 오랫동안 물 밖에 나와서도 살 수 있는 갯장어는 한여름 교토에서 유일하게 생물(生物)로 즐길 수 있는 생선이었다는 설명이다.

일본 사람들은 자국 갯장어를 제치고 한국산을 더 높게 쳐주고 비싸게 사갔다. 남해에서 잡히는 갯장어 대부분이 일본으로 수출된 이유고, 여수·통영·고성 등 남해안 일대를 제외한 나머지 지역에서 갯장어 자체를 몰랐던 이유다.

경남 고성 포교마을 '나포리횟집'의 갯장어./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갯장어회, 양파와 절묘한 궁합

구 선장의 아내 박숙년(66)씨가 주방을 맡고 있는 나포리횟집은 국내에서 최초로 갯장어를 낸 식당으로 꼽힌다. 박씨는 “7월 7일로 만 26년째”라고 했다. “일본 사람들은 1㎏에 4마리 이하 잔 거(갯장어)는 안 받아 가. 팔지 못한 걸 처리하려고 시작한 게 이 식당이지요.”

박씨는 “과거 한국에선 갯장어를 먹지 않았다”고 했다. “먹을 줄 몰랐지요. 뼈가 많다고 버렸지요.” 갯장어는 몸에 잔가시가 3500여 개나 박혀 있다고 한다. 이 많은 뼈를 모두 골라내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게다가 쇠심줄처럼 질긴 껍질이 살에 단단히 붙어 있어서 벗겨내기가 대단히 힘들다.

그래서 갯장어를 먹으려면 고도의 테크닉이 필요하다. 껍질만 벗겨낸 다음 마리당 260번 넘는 칼질로 뼈가 씹히지 않도록 손질하는 수고를 들여야 한다.

갯장어를 맛보면 이 모든 번거로움을 감수할 만하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나포리횟집을 비롯한 포교마을 식당에서는 갯장어를 회·샤부샤부·구이로 낸다. 우선 회를 맛봤다. 붕장어(아나고)회처럼 얇고 길게 썬 갯장어회가 접시 가득 담겨 나왔다. 포슬포슬 부드러우면서 탱글탱글한 식감이 섬세하다. 박씨는 “아나고(붕장어)가 보리밥이면 하모(갯장어)는 쌀밥”이라며 웃었다.

갯장어회는 와사비(왜겨자) 푼 간장에 살짝 찍어 먹거나, 깻잎 등 쌈채소에 얹어 초고추장을 곁들여 먹기도 하고, 양배추 등 각종 채소를 얇게 썰어서 초장·콩가루와 함께 넣고 버무려 먹기도 한다.

경남 고성 포교마을 '나포리횟집'의 갯장어회. 양파와의 궁합이 절묘하다./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포교마을 사람들은 양파와 함께 먹는 것도 즐긴다. 양파 한쪽을 뒤집어 오목한 면에 갯장어회를 듬뿍 올리고 초고추장을 뿌려 입에 넣는다. 살짝 맵고 달큼한 양파와 갯장어회의 궁합이 환상적이다.

갯장어 구이는 ‘장어 맞나’ 싶을 만큼 기름이 없고 담백하다. 박씨는 “갯장어는 너무 기름이 없어서 구울 때 바스라질 수 있어 프라이팬에 식용유를 두르고 굽는다”고 했다. 노릇노릇 구워진 갯장어에 매콤달콤한 소스를 발라 낸다.

경남 고성 포교마을 '나포리횟집'의 갯장어 구이./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갯장어 맛을 최대치로 끌어내는 조리법은 샤부샤부였다. 일본 사람들이 왜 갯장어를 샤부샤부의 일종인 유비키로 즐기는지 알 수 있었다. 나포리횟집에선 오로지 장어 뼈와 껍질만으로 육수를 뽑는다. 여수 등 다른 지역에서 멸치·다시마·파뿌리에 인삼·대추 등 약재까지 넣는데, 보신 효과를 더할지는 모르나 갯장어 자체의 맛과 향을 가린다는 단점이 있다.

큼직한 갯장어 한 토막을 집어 김이 살짝 올라오는 육수에 살짝 담갔다. 정교하게 칼집을 넣은 갯장어가 도르르 말려 한 송이 꽃으로 피었다. 너무 펄펄 끓지 않는 육수에 잠깐만 담가 겉은 슬쩍 익고 속은 따뜻한 정도로 데우는 게 포인트. 회로 먹을 때의 탱글탱글함과 구이로 먹을 때의 포슬포슬한 식감이 동시에 느껴진다.

갯장어와 함께 나오는 방아, 쑥갓, 깻잎, 부추, 양배추 등 각종 채소와 새송이 버섯을 육수에 담가 익히면 맛과 향이 더욱 풍성해진다. 식사 마무리로는 장어 뼈 우린 육수에 된장과 고춧가루를 푼 칼칼한 장어국이 나온다.

이걸 맛보려고 여름 주말이면 포교마을로 부산과 창원, 거제 등 남해안 일대에서 사람들이 몰려든다. 하모회 7만·8만·9만·12만원, 하모 샤부샤부 9만·10만원, 하모회+샤부샤부·하모회+구이 세트 12만·15만원. 고속버스 당일 배송도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