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토. /조선일보DB

일년감, 들어보긴커녕 뭔지도 모르겠다고요? 여러분이 즐겨 먹는 흔한 과채소입니다. 날 것 그대로 먹기도 하지만 각종 음식에 재료로 사용되기도 하지요. 피자와 스파게티가 일년감이 들어가는 대표적인 음식입니다. 감 잡으셨나요? 바로 토마토입니다.

◇ 고추와 비슷한 시기 한반도 소개

토마토는 누구나 알지만 일년감을 아는 사람은 드물죠. 일년감은 국어사전에 등재된 토마토의 한글 이름입니다. ‘일 년을 사는 감’이란 뜻이죠. 옛 문헌에는 한자 이름 ‘일년시(一年枾)’라고 나옵니다.

토마토가 한국에 들어온 지는 꽤 오래됐습니다. 조선시대 유학자 이수광은 ‘지봉유설(芝峰類說)’에 토마토를 ‘남만시(南蠻枾)’라고 소개했습니다. ‘남쪽 오랑캐 땅에서 온 감’이란 뜻이죠. 이수광이 지봉유설을 쓴 게 1614년이니, 적어도 그 전에 이미 토마토가 한반도에 들어와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토마토와 비슷한 시기 한국에 소개된 작물이 있습니다. 고추입니다. 고추는 김치, 고추장 등 한식의 중요한 재료로 확실하게 자리매김했습니다. 반면 토마토는 한국인의 밥상에 제대로 정착하지 못했습니다. 일년시라는 한글 이름이 여전히 낯설다는 게 그 증거이죠.

호서대 식품영양학과 정혜경 교수는 “문헌을 아무리 뒤져도 토마토를 이용한 음식은 찾기 어렵다”면서 “저의 사견(私見)이지만 토마토를 채소가 아닌 과일로 여긴데다 감자처럼 구황식물로 먹기도 어려워 잘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 같다”고 하더군요.

그렇다면 비슷한 시기 들어온 고추는 어떻게 그렇게 한식의 필수적인 재료로 자리매김했을까요. 정 교수는 “한국인은 고추가 들어오기 전부터 매운맛을 선호해왔다”며 “고추는 이러한 한국인 입맛을 사로잡은 듯하다”고 했습니다.

◇ 과일이지만 채소로 알려진 까닭

토마토는 멕시코 원주민 아스텍(Aztec)족의 말 ‘토마틀(to matl)’에서 비롯됐다고 합니다. ‘속이 꽉 찬 과일(plump fruit)’이라는 뜻이랍니다. 여기서 알 수 있듯 토마토는 원래 과일로 여겨졌죠. 하지만 요즘은 대개 채소로 알고 있습니다. 토마토의 맛 때문입니다.

토마토는 과일치고는 당도가 낮습니다. 전체 무게에서 당분이 차지하는 비중이 3%에 지나지 않습니다. 양배추와 비슷한 수준이죠. 물론 지난해부터 유행한 ‘단마토’ 등 단맛을 강화한 신품종 토마토는 예외지요. 단마토는 설탕보다 당도가 300배 높은 천연 감미료 스테비아를 토양에 뿌려 흡수되도록 한 방울토마토입니다. 스테비아는 달지만 설탕처럼 소화기관에 흡수되지 않고 소변으로 배출돼 칼로리 걱정이 없어 다이어트 식품으로 인기지요.

반면 과일에는 별로 없는 감칠맛 성분인 글루탐산(glutamic acid)이 풍부합니다. 유럽에서 수백 년에 걸쳐 토마토를 먹다 보니, 음식과 같이 또는 소스로 만들어 곁들이면 음식의 맛이 더욱 풍부해지고 깊어짐을 경험적으로 알게 됐습니다. 이처럼 과일보다 음식으로 섭취하는 비중이 높아지면서 자연스레 토마토는 과일보다 채소로 인식이 굳어졌다는 게 음식 학자들의 추론입니다.

빨갛게 잘 익은 토마토. /조선일보DB

◇ 여름 토마토는 빨간 정력제?

오랫동안 외면해온 토마토를 보는 한국인의 시선 혹은 입맛이 엄청나게 바뀌었습니다. 토마토가 손꼽히는 건강식품임을 알게 된 거죠. 토마토는 미국 타임(Time)지가 ’21세기 세계 10대 건강식품’ 중 하나로 꼽았을 정도죠.

아시다시피 잘 익은 토마토는 빨간색입니다. 이 빨간색을 내는 성분이 리코펜(lycopene)입니다. 리코펜은 암을 유발하고 노화를 촉진하는 활성산소를 억제해준다죠. 국내에서는 토마토를 주로 날로 먹지만, 건강을 위해서라면 익혀 드세요. 리코펜은 올리브오일 등 기름에 볶아 먹을 때 체내흡수율이 높아집니다. 리코펜은 열에 강하고 기름에 잘 녹거든요.

17세기 영국에서는 청교도혁명 후 집권한 크롬웰 정부가 “토마토에 독이 들었다”는 루머를 퍼뜨린 일이 있었습니다. 당시 영국 사람들이 토마토를 정력제로 생각해 많이 먹었답니다. 쾌락을 금기시하는 청교도들로선 토마토가 ‘위험한 음식’으로 여겨졌고, ‘도덕 사회’를 유지하기 위해 토마토를 이런 거짓말까지 퍼뜨렸던 것이죠.

그런데 몇 해 전 영국에서 토마토 수프를 매일 먹은 남성들의 정액 속 리코펜 수치가 증가하며 활동력이 왕성한 ‘수퍼 정자’가 됐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됐습니다. 크롬웰 정부의 우려가 근거 없지는 않았던 셈이죠.

토마토는 정력에도 좋지만 기름진 음식과 함께 먹으면 소화를 촉진하고, 산성 식품을 중화하는 역할도 합니다. 신진대사를 돕는 비타민C, 지방 분해를 돕는 비타민B, 모세혈관을 강화하고 고혈압 개선을 돕는 루틴, 철분, 칼슘도 고루 갖췄답니다. 올 여름에는 보양식으로 애꿎은 장어나 닭, 뱀 대신 토마토주스 한 잔 어떠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