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마포구 중식당 ‘풍태’의 새우볶음밥(앞)과 탕수육. /장은주 영상미디어 객원기자

볶음밥은 세계 어디에든 있다. 티베트 4000m 고산지대에도, 뉴욕 첼시마켓에도, 런던 소호 거리에도 볶음밥이 있다. 누구나 아는 이 음식을 기회가 되면 꼭 먹어본다. 그 나라가 음식을 어떤 태도로 다루는지 보여주는 바로미터이기 때문이다. 볶음밥은 어디를 가나 제일 싼 음식이다. 하지만 그때그때 볶아 내지 않으면 제대로 된 맛을 낼 수 없는 귀찮은 음식이다. 만약 이런 음식에도 정성이 들어간다면 어떤 메뉴에든 일정 수준 이상의 공력을 들인다는 뜻이 된다.

한국은 외식을 하면 마무리는 디저트가 아니라 볶음밥인 경우가 더 많다. 삼겹살을 구워도, 감자탕을 먹어도, 하다못해 그 비싼 한우를 먹어도 볶음밥이 끝을 장식한다.(라면이 아니라는 전제하에!) 정작 볶음밥 그 자체만 보면 한숨이 나온다. 한국은 세계 제일의 (즉석) 볶음밥을 먹을 수 있지만 또 가장 실망스러운 볶음밥을 먹을 수 있는 나라다.

인천 연안 부두 근처까지 발길을 돌리면 차이나타운도 아닌 한적한 부두 어귀에 ‘혜빈장’이라는 중식당이 있다. 주변은 부두 특유의 삭막함에 밤이 되면 누아르 영화라도 찍을 것 같은 분위기다. 붉은색 배경에 흰 글자로 쓰인 간판 아래 작은 문을 밀고 들어가면 허리 굽은 노인이 손님을 받고 있다.

주방을 보면 역시나 뼈가 앙상한 노인이 중화 냄비, 웍(wok)을 돌리고 있다. 지나가는 세월에 시위라도 하듯, 벽돌을 나르는 것처럼 땀 흘리며 요리하는 노(老)사부를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힘에 겨웠다. 덕분에 음식이 왜 빨리 나오지 않느냐고 재촉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몸놀림이 느린 건 아니었다. 주문이 들어오면 그때그때 채소를 볶고 면을 뽑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식당의 시간이 천천히 흘렀다.

이윽고 상에 음식이 올라왔다. 볶음밥에서는 미처 가시지 않은 하얀 김이 올라왔다. 고기가 듬뿍 들었고 위에는 튀긴 달걀 프라이가 놓였다. 접시 가장자리에 있던 짜장 소스는 굳이 곁들일 필요가 없었다. 간간한 볶음밥을 입에 넣었다. 코로 뜨거운 증기가 새나왔다. 노사부 팔뚝에 서린 완력은 사라지지 않고 밥알 한 알, 한 알에 깃들여 뜨거운 맛을 이뤘다.

서울로 돌아와 시청 앞 웨스틴조선호텔 라운지에 가면 또 다른 종류의 볶음밥을 먹을 수 있다. 점심 시간, 사람들이 종종 걸음으로 걷는 시청 주변과 달리 호텔 라운지는 냇물이 흐르고 구름이 둥둥 떠다니는 관조의 세상이다. 종업원들은 날래지만 조용한 몸놀림으로 테이블 사이를 돌아다니고, 손님들은 손가락에 찻잔을 걸고 시간을 흘려보낸다. 이곳에서 지불하는 커피값은 커피 원액뿐만 아니다. 너른 테이블, 조용하고 신속한 응대, 창밖으로 보이는 환구단 전경 같은 것들을 조금씩 모아 가치를 만든다.

배가 고프다면 식사 주문을 넣을 수도 있다. 고기가 듬뿍 든 카레, 후끈한 탕면도 시킬 수 있지만 볶음밥이 그 정점을 찍는다. 비취색 그릇에 담긴 해물관자볶음밥은 그 자체로 밝게 빛을 냈다. 밥알은 잘 닦은 구슬처럼 반짝였고 달걀노른자는 개나리처럼 선명한 색을 냈다. 말린 관자를 불려 찢은 뒤 넣어 볶음밥 전체에 진득한 단맛이 배었다. 엄격한 규율과 권위로 볶아낸 밥알은 원래 있어야 할 곳에 있었고 애초에 내야 할 맛을 냈다. 한 치의 오차 없이 정확히 미뢰에 꽂히는 맛은 바흐의 변주처럼 엄정하고 현란했다.

발길을 돌려 지하철 6호선 광흥창역 근처에 가면 ‘풍태’라는 간판을 건 작은 중국집이 있다. 주인장 홀로 주방을 보는 이곳은 점심시간이면 오후 1시까지는 요리 주문도 받지 않는다. 떨어지는 메뉴도 많고 덕분에 주인장 성격은 더욱 날카로워진다. 바쁘게 식사를 마치고 가는 손님이 워낙 많고 일손도 딸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주방을 혼자 지키더라도 하얀 모자를 쓰고 깨끗한 조리복을 입은 주인장은 타협하지 않는다. 주문이 들어오면 그때 면을 뽑고 재료를 볶는 것은 기본이다. 고운 고춧가루를 태운 기색 하나 없이 부드럽게 볶아 국물을 뽑아낸 짬뽕은 정월 일출 같은 붉은색이었다. 입에 감기는 국물의 맛은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은 그 중간에 서서 아쉽지도 부담스럽지도 않았다. 그때그때 뽑은 면은 탄력과 부드러움을 동시에 지녔다. 돼지 등심을 써서 튀긴 탕수육은 가볍게 부서지는 튀김옷 속에 두툼히 씹히는 살코기가 있었다.

커다란 새우를 넣은 볶음밥은 간장을 써서 색이 거뭇했고 군데군데 노란 달걀과 파가 섞였다. 외과 수술 하듯 정교하게 볶을 여유는 없었다. 대신 큰 칼을 휘두르듯 쾌속으로 볶아낸 볶음밥에는 좁은 주방에서도 작아지지 않는 자존심과 물러서지 않는 결기가 서렸다.

값이 싸면서 좋은 음식은 모순이다. 그 모순을 당연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싸워 이기려는 사람들이 있다. 근육을 짜내고 시간을 쪼개어 모순을 견딘다. 그 과정은 고되지만 그 끝에는 영롱히 빛나는 볶음밥이 있다. 어디에나 있지만 어디에나 없는 모순의 한 그릇이다.

#혜민장: 볶음밥 6500원, 짬뽕 6000원.

#웨스틴조선서울호텔 라운지: 해물관자볶음밥 3만5000원, 소고기카레 3만3000원.

#풍태: 새우볶음밥 9000원, 짬뽕 9000원, 탕수육 2만5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