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프랑스 요리의 아버지’로 불리는 셰프 페르낭 푸앙(Point·1897~1955)은 말했다. “내게 버터를 다오, 더 많은, 더더욱 많은 버터를.”
21세기 한국에서는 생각만큼 무리한 요구가 아닐지도 모른다. 수입인데 국산보다 싼 버터 구하기가 쉬워졌기 때문. 마트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서울우유 버터가 100g당 2400원꼴인데 프랑스(페이장브레통), 덴마크(루어팍) 버터는 이보다 싼 100g당 1500~2000원 수준이다. 이들 버터는 유산균을 사용해 발효시켜 산미를 살짝 더한 것도 특징이다. 유지방 함량이 80~90% 수준으로 높지만 산미로 느끼함을 잡고 풍성함을 유지했다.
심지어 일부 수입 버터는 국산 ‘가공 버터’보다도 싸다. 가공 버터는 유지방 함량은 30% 수준이고 야자유 등 다른 기름을 섞어 양을 늘린 것이다. 유지방 함량이 80% 이상인 버터보다 고유의 풍미가 떨어진다는 평가다. 그런데 국산 가공 버터도 100g당 1700원이 넘는다.
물론 예외는 있다. 프랑스산 명품 에르메스에 빗대 ‘버터계의 에르메스’ 소리를 듣는 에쉬레는 100g당 7000~8000원 선, 그러나 이용재 음식평론가는 “브랜드 효과로 가격에 거품이 낀 에쉬레를 고집하지 않아도 루어팍이나 페이장브레통 같은 버터는 풍미가 충분하고 개성도 있다”며 “250g 버터 한 토막에 3000~4000원이니, 그 돈으로 맛볼 수 있는 최고의 미식(美食) 경험”이라고 했다. 이 맛과 저 맛을 견주며 작은 차이를 음미하는 것이 미식이라면, 버터는 그 실험에 적격이다. 부담 없이 시행착오를 거치며 자신이 좋아하는 맛을 추구할 수 있다는 뜻.
쿠팡 같은 온라인 마트에서도 살 수 있지만, 베이킹몬 등 제과·제빵 전문 사이트를 이용하면 더 저렴하게 세계 각국 버터를 맛볼 수 있다. 코로나로 홈베이킹이 인기를 끌면서 일반인의 외국 버터 접근성이 더 높아진 덕분이다. ‘버터로 떠나는 세계여행’이 가능해진 셈이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지금의 헝가리·루마니아·불가리아 일대에 살던 트라키아인들을 ‘버터 먹는 놈들’이라고 낮춰 불렀다. ‘야만인’의 음식은 그러나 이제 고급 식재료다. 미국에서 ‘집밥 백선생’ 역할을 했던 요리연구가 줄리아 차일드(1912~2004)는 생전에 이렇게 말했다. “버터만 듬뿍 넣으면 어떤 음식이든 근사해지죠(With enough butter, anything is goo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