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광화문 코리아나 호텔은 중식당으로 유명하다. 보들보들한 새우를 얇은 식빵으로 감싸 튀긴 멘보샤가 이 집 대표 메뉴 중 하나였다. 과거 멘보샤는 ‘호텔 중국식당’에서나 맛볼 수 있었다. 요즘은 10대들도 ‘멘보샤’를 찾는다. 최근 10년 사이 벌어진 일이다. 무엇이 호텔 메뉴를 이렇게 대중화시킨 것일까.
조선일보 ‘사장의 맛’이 외식업 지형을 바꾼 ‘결정적 메뉴’를 연재합니다. 1편이 멘보샤, 2편은 들기름 막국수입니다. 음식평론가 겸 작가 박정배씨가 씁니다.
◇보드라운 새우살에 식빵을 덮어 튀긴 중국 요리 ‘멘보샤’
멘보샤 대중화의 중심에는 중식당 ‘진진’의 왕육성(‘왕사부’란 애칭으로 불린다)셰프와 ‘목란’의 이연복 셰프가 있다. 서울 명동 ‘호화대반점’ 시절부터 40년 넘게 우정을 다져온 두 셰프는 호텔 중식당을 드나드는 마니아들이나 먹던 멘보샤를 식당의 본격 메뉴로 내세우고 알렸다.
멘보샤는 햄버거처럼 탄수화물, 단백질, 지방을 골고루 장착해 대중의 입맛을 사로잡는다. 잘 튀긴 멘보샤는 먹기 전에는 구운 식빵처럼 보이지만 먹고 나면 감칠맛, 단맛, 기름향의 풍미가 오랫동안 입안에 남는 중독성이 강한 요리다.
‘호텔 요리 대중화’에는 몇 가지 조건이 붙는다. 요리가 간단하되, 적당히 낯설고, 비싸지 않은 가격에 낼 수 있어야 한다. 멘보샤는 그 삼박자를 두루 갖췄다. 이름은 낯설고, 대하 대신 흰다리새우로 단가를 낮출 수 있고, ‘식빵에 새우를 넣어 튀긴 음식’이라고 간단히 설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건물주’가 사랑한 진진 멘보샤, TV에서 멘보샤 소개한 이연복
2013년 왕육성 셰프가 코리아나 호텔 중식당 ‘대상해’ 시대를 마감하고 ‘호텔 요리의 대중화’를 기치로 내세운 중식당 ‘진진’을 마포구에 개업한다. 진진은 호텔 요리의 대중화의 첨병으로 ‘멘보샤’를 내세웠다. 진진이 미슐랭 원스타에 등극하면서 시그니처 메뉴인 멘보샤는 더욱 신뢰를 얻었다. 왕육성 셰프가 멘보샤를 계속 메뉴에 올린 건, 진진의 건물주가 멘보샤를 좋아해 올 때마다 찾았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멘보샤가 마니아를 넘어 대중에게 확산된 건 이연복 셰프 덕이다. 이연복 셰프가 2013년에 방송 ‘해피투게더’의 ‘야간매점’ 코너에서 멘보샤를 소개한 것이다. 중식 셰프들은 이미 알고 있던 요리가 유명해지자, 식당들은 멘보샤를 메뉴로 채택하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이뤄진 일이다. 이제 멘보샤는 치킨집 메뉴로, 짬뽕집 간식으로도 등장했다. 멘보샤는 진진의 밀키트를 필두로 수십 가지 제품이 나왔다.
◇광둥 딤섬, 영국 애프터눈티가 만난 ‘멘보샤’
멘보샤는 100년전에 홍콩에서 만들어졌다. 멘보샤란 ‘식빵’을 뜻하는 중국말 멘보(面包)와 샤(虾, 새우)가 결합된 말이다. 홍콩은 광저우(廣州)와 더불어 광둥(廣東) 요리의 중심지다. 영국에서 만들어진 식빵은 영국 식민지 홍콩에서 일상의 음식이었다. 영국인들은 오후에 차와 함께 토스트를 곁들여 먹는 애프터눈 티 문화가 있다. 광저우와 홍콩은 차와 함께 먹는 작은 요리인 딤섬의 본향.
멘보샤는 영국식 토스트와 중국의 딤섬, 그 사이에 있다. 홍콩이나 중국에서는 멘보샤란 말 대신에 하도시(蝦多士)란 단어를 주로 쓴다. ‘하’는 새우, ‘도시’는 ‘토스트(toast)’의 차용어다. 일본도 하토시(ハトシ)란 단어를 사용하는데 중식 요리가 가장 번성한 나가사키의 명물요리다.
◇1968년 조선일보에 처음 조리법 등장한 ‘멘보샤’
한국에서는 <중국요리>(1962년) 튀김요리 편에 멘보샤가 처음 등장한다. 당시에는 ‘쌰인뚜쓰(蝦仁吐絲)’란 말로 쓰였다. 쌰인(蝦仁)은 껍질 벗긴 새우를 말하고, ‘뚜쓰’(吐司 혹은 吐斯)는 ‘토스트’의 음역이다. 한국 화교들은 멘보샤를 ‘튀긴 금괴’란 뜻의 쟈진쫜(炸金磚)이라고도 부른다.
멘보샤의 출발을 말하려면, 식빵, 밀가루를 살펴봐야 한다.
식량 부족이 만성적이었던 한반도에 6.25 전쟁 중 미국에서 원조품으로 밀가루가 들어왔다. 이 원조품은 점차 ‘제2의 주식’이 될 것이란 기대를 받게됐다. ‘보릿가루와 밀가루를 섞은 식빵을 만들어 청국장 찌개를 곁들여 (먹으면) 하루 한끼 식빵의 주식이 가능하리라 본다’(1969년 1월 16일, 동아일보 윤서석 교수)는 기고문도 있었고, 대형 식빵 공장 건립도 큰 뉴스(1969년 2월 5일, 매일경제신문)로 다뤄졌다.
1960년대 이후 식빵은 학교 급식이나 군대 병식의 기본이 됐다. 1960~1970년대 식빵 만들기는 당시 최고의 인기 요리 교실 강습이었다. 이런 분위기에서 멘보샤 조리법이 당시 신문에도 실렸다. 1968년 7월 30일자 <조선일보>를 통해서였다. ‘(집에서) 만들기 쉽고 값싼 여름철 별미’에 처음 등장하는데, 언론에 ‘멘보샤’라는 단어가 처음 등장한 순간이다.
◇후루룩 볶는 중국 요리 유행, ‘멘보샤’는 호텔에서만
과거 호텔 중식당에는 식빵을 이용한 요리가 제법 있었다. 새우 완자를 식빵 조각에 굴려 옷을 입힌 후 튀기는 지리샤추(吉利蝦球), ‘식빵을 5~6cm 의 지름으로 둥글게 도려서 그 위에 고물을 도톰하게 얹고 삶은 계란 썬 것을 가운데 놓아 붙인 다음 기름에 올려 만드는’ 코끼리눈(象眼) 토사’<신간중국요리, 1972>에 식빵 위에 붉은 베이컨, 초록 고수, 노란 계란을 식빵 사이에 넣고 튀기는 삼색멘보(三色面包), 새우를 통째로 올려 금붕어 모양을 낸 금붕어튀김 같은 요리 등이었다.
1980년대 쌀의 자급이 이뤄지고, 먹거리 사정도 좋아졌다. 중식은 짜장면, 짬뽕 같은 면류 중심으로 재편됐다. 탕수육, 라조기처럼 밀가루나 전분 옷을 입힌 대중적인 요리가 주를 이루고 요리사의 대부분이 한국인들로 바뀌면서 복잡한 요리류 특히 식빵을 이용한 음식은 사라졌다. 화구를 따로 써야 하고, 불 조절이 까다로운데 겉보기에는 평범한 멘보샤가 설자리를 잃은 것이다.
연예인처럼 음식도 떴다 쇠퇴하고, 또 다시 일어선다. 요즘 멘보샤는 ‘중국 음식 좀 아는 사람은 반드시 주문하는 메뉴’가 됐다. 대중화된 적이 없는 멘보샤가 ‘전성기 1기’를 맞은 듯 하다.
다음 편에는 멘보샤 레시피를 소개한다.
◇박정배 필자를 소개합니다
박정배는 음식 역사 문화 연구자이자 칼럼니스트다. 2004년 ‘3천원으로 외식하기’를 시작으로 ‘음식강산’ 1, 2, 3권, ‘만두’ 등 다수의 음식 책을 냈다. 꼼꼼한 자료 수집과 현지 취재가 강점이다. SBS PLUS ‘중화대반점’, 넷플릭스 ‘냉면 랩소디’ ‘한우 랩소디’에 자문 겸 출연했다. 조선일보에 ‘한식의 탄생’, 중앙일보에 ‘박정배의 시사음식’을 연재했다. ‘국밥 학교’등 강의를 진행했고 ‘국물 연구회’상임 연구원으로 활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