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깔나는 글과 사진으로 이름난 여행 작가 최갑수(49)씨가 ‘음식은 맛있고 인생은 깊어갑니다’(얼론북)란 에세이를 펴냈다. 최 작가는 “20년 넘게 활동하며 여러 책을 냈지만 음식을 주제로 한 에세이는 처음”이라고 했다. “옛날에는 풍경이라든지 사람에게 관심 있었는데, 여행을 많이 하다 보니 ‘여행이란 게 별거 없고 그냥 맛있는 거 먹고 좋은 풍경 보는 게 다’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제 여행에서 음식의 비중이 커져가는 것 같아요. 예전엔 ‘가서 있으니 먹는다’였다면, 요즘엔 ‘먹을 게 있으니 간다’가 됐지요.”
그는 “코로나 이후로 일이 많이 줄어서 1년에 150일 정도, 주로 국내로 출장 다닌다”고 했다. 1년의 ‘고작’ 절반 정도만 집 밖에서 식사해도 무려 450끼니를 전국 곳곳에서 외식으로 해결하는 셈. 최 작가가 가리고 가려 인생 단골집 4곳을 소개했다.
스탠딩바 전기: 여기가 을지로야, 일본이야?
“여행지로서 일본을 아주 좋아합니다. 비행기로 1~2시간 거리에 우리와 너무나 비슷하지만 너무도 다른 나라가 있다는 건 정말 놀랍고도 신기하죠. 코로나 탓에 오랫동안 못 한 일본 여행이 그리울 때면 이 식당에서 정어리 튀김이나 미소 어묵, 힘줄 된장 조림 등을 놓고 생맥주를 마시다 오곤 했습니다. 일본 음식에 해박한 주인장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눠보니, 일본 내 같은 장소를 약간 시차를 두고 서로 어긋나게 다녀간 적도 있더군요.”
선술집은 값싼 대중적 술집 정도로 여기지만 정확하게는 서서 마시는 술집을 말한다. ㅁ자 모양 바 테이블에 기대 서서 술 마시는 ‘스탠딩바 전기’는 1960년대까지만 해도 명동과 충무로, 을지로, 종로 일대에 꽤 있었던 선술집과 서서 마시는 술 문화를 되살려냈다고 평가받는다. 저렴한 가격과 빠른 회전율이라는 선술집 본연의 장점도 살아 있다.
오사카 매운 곱창 우동 볶음 1만4000원, 더블 수프 도가니 오뎅 1만4500원. 서울 중구 수표로 42-19, (070)8840-8000
덕성원: 어릴 적 아버지가 사주던 그 짜장 맛
“오래된 중국집입니다. 70대로 보이는 노부부가 운영합니다. 간짜장이 맛있어요. 배달을 안 하기 때문에 면발이 하얗습니다. 계란 프라이가 당당하게 올라가 있죠. ‘덴푸라’도 있습니다. 아이들과 함께 갔는데 소스가 없다고 먹질 않더군요. 미트볼처럼 나오는 난자완스도 독특합니다. 맛이 자극적이지 않아 좋아요. 이곳에 가끔 들러 어린 시절 아버지와 먹던 중국집을 떠올립니다. 음식은 우리를 옛날로 데려가주는 타임머신이죠.”
대부분 중식당에선 짜장면에 면 강화제를 넣는다. 면발을 더 쫄깃하게 만들고, 배달 중 면이 쉬 불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그런데 면 강화제의 성분인 탄산수소나트륨(일명 소다)은 물과 만나면 알칼리성을 띠게 되고, 산성인 위 소화액을 중화해 위산 기능을 떨어뜨린다. 짜장면을 먹고 나서 속이 더부룩한 이유다. 덴푸라는 튀김옷 입혀 튀긴 돼지고기로, 탕수육에서 소스만 뺐다고 생각하면 이해가 쉽다.
간짜장 6500원, 우동 6000원, 덴푸라 1만4000원, 난자완스 2만5000원. 경기 파주 문산읍 독서울4길 30, (031)952-2230
마산집 돼지국밥: 무뚝뚝한 듯 세심한 마음 씀씀이
“서대신동은 부산의 아주 오래된 동네죠. 딸아이와 함께 찾은 적이 있습니다. 주인 아주머니가 “하나는 아가 물라꼬요?(하나는 애가 먹을 거예요?)” 하고 묻더군요. 양을 좀 적게 주겠거니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더군요. 아이의 국밥 그릇에는 아이가 먹기 좋을 만한 크기의 살코기로만 가득 들어있었습니다. 아이 앞에 국밥 그릇을 툭 내려놓고서는 ‘마이 무라’ 하시던 ‘츤데레’ 주인장! 그 순간부터 제겐 부산 최고, 아니 대한민국 최고의 돼지국밥집은 무조건 이곳입니다.”
얼마 전 옛 식당 자리에서 40여m 떨어진 현 위치로 옮겨 ‘60년 역사를 자랑하는 노포라더니 왜 이리 깔끔하냐’ 의심할 수도 있다. 뼈째 뜯어 먹는 ‘갈비 수육’이 돼지국밥만큼 유명하다. 큼직한 살코기가 붙은 커다란 뼈가 보기에도 먹음직스럽다.
돼지·순대국밥 각 7000원, 따로국밥 8000원, 돼지 우동 8000원, 돼지 국수 7000원, 수육 2만·2만5000·3만원. 부산 서구 꽃마을로 31-1, (051)255-0939
응암동 돈까스: 풋고추와 쌈장 올라간 K돈가스
“돈가스가 나오면 다들 놀랍니다. 접시에 풋고추와 쌈장이 돈가스와 함께 당당하게 올라가 있거든요. 40여 년 전, 제가 초등학교 다닐 때만 해도 돈가스에 풋고추와 쌈장은 기본이었습니다. 당시 아버지 친구분이 경양식 집을 운영하셨어요. 제가 서툰 칼 솜씨로 돈가스를 써는 동안 아버지와 친구분은 풋고추를 쌈장에 찍어 먹으며 글라스에 소주를 따라 드시곤 했죠. 그런데 어느 날 사고가 터집니다. 풋고추 대신 ‘땡초(청양고추)’를 올렸는데 너무 매웠던 겁니다. 그걸 드시던 주인 아저씨가 그만 기절해버린 거죠. 구급차가 오고 한바탕 난리가 났죠(웃음).”
경양식 돈가스는 유럽에서 전해졌지만, 이제는 한국 음식이라고 해도 괜찮을 듯싶다. 오스트리아 슈니첼, 이탈리아 밀라노 코톨레타, 영국 커틀릿 중 어디에서 기원했는지는 확실치 않다. 하지만 풋고추와 쌈장이 딸려 나오는 등 다른 어느 나라에서도 맛볼 수 없는 한국형 돈가스가 완성됐다. 최 작가는 “돈가스·치킨가스·생선가스·함박스테이크가 한 점씩 나오는 ‘모둠정식’을 추천한다”고 했다.
왕돈가스 1만원, 모둠정식 1만3000원. 서울 은평구 응암로 338, (02)352-24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