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농업기술원 이대형(48) 농업연구사가 전통주에 빠져든 계기는 대학원 실험실에서 막걸리 발효되는 소리를 듣고서다. “실험실 선배가 ‘술이 잘 발효되고 있는지 확인하려면 소리를 들어보라’더군요. 항아리에 귀를 붙이고 들어보면 탄산 터지는 소리와 함께 비 오는 소리 같은 게 납니다. 전 부치는 소리와도 비슷하고요. 그 소리가 참 좋았어요.”
이 연구사는 쌀과 지역 특산 농산물을 이용한 전통주를 연구해 20여 업체에 양조 기술을 이전했다. 그렇게 탄생한 ‘산양삼 막걸리’는 2017년 우리술품평회에서 대통령상을 수상했고, 벌꿀을 이용한 ‘허니문 와인’은 지난해 윤석열 대통령 취임 만찬주로도 사용됐다.
그 어느 때보다 관심받고 있는 전통주에 관해 몰랐던 역사와 흥미로운 사건들을 맛깔나게 풀어낸 ‘술자리보다 재미있는 우리 술 이야기’(시대의창)를 최근 펴낸 이 연구사에게 전통주를 제대로 맛볼 수 있는 주점·식당 4곳을 소개 받았다.
담은: ‘입문’ ‘중급’ ‘고급’ 나눈 전통주 리스트
“이곳 정재훈 대표는 주류 행사장을 꾸준히 돌아다니며 주기적으로 전통주 리스트를 업데이트해요. 덕분에 방문할 때마다 새로운 술을 마실 수 있어요. 전통주 리스트를 ‘입문반’ ‘중급반’ ‘고급반’으로 나눠 놓아서 초·중급자들이 편하게 선택해 마실 수 있죠. 탁주가 가장 많지만, 약주와 한국 와인도 판매하고 있어요. 음식이 두루 좋지만 특히 ‘돈 담은 육전’, ‘오징어 순대전’, ‘해물부추전’, ‘왕새우전’, ‘해산물 김치전’, ‘보리새우 미나리전’ 등 전이 맛있어요.”
막걸리 50종을 주력으로 약주·청주·증류주·한국 와인 등 전국 팔도 술 80종을 구비했다. 얇게 썬 돼지 등심을 간장 소스에 24시간 재웠다가 달걀물 입혀 노릇노릇 지진 ‘돈 담은 육전’, 7가지 전이 나오는 ‘모둠전’이 잘 나간다. 경북 영주 명물 ‘나드리 쫄면’을 이용한 ‘나드리 담은 골뱅이 쫄면’, 잠원동 ‘낙원떡집’ 떡국떡으로 만드는 떡볶이도 인기다.
돈 담은 육전 1만9000원, 모둠전 2만8000원, 나드리 담은 골뱅이 쫄면 1만8000원, 방앗간 떡국떡 떡볶이 1만9000원. 서울 서초구 신반포로 189 반포쇼핑타운 4동 지하, (0507)1445-7502
백곰막걸리: 우리 술에 그 어디보다 진심
“국내에서 가장 다양한 전통주를 맛볼 수 있는 곳이죠. 이승훈 대표뿐 아니라 서빙하는 분들 중에서도 전통주 소믈리에가 많아서, 자세한 설명을 들을 수 있고 어울리는 음식도 추천받을 수 있죠. 정해 놓고 마시는 술은 없어요. 그날의 ‘술 컨디션’에 따라 직원들이 추천해주는 술과 음식을 선택하는데, 실패하는 경우가 드물어요.”
그럼에도 이 연구사가 매번 주문하는 건 조성주 셰프의 대표 메뉴인 ‘제주 은갈치 특선만두’다. 넓적하게 포 뜨고 가시 발라낸 갈치살을 만두피처럼 사용해 다진 돼지고기를 감쌌다. ‘살살 녹는다’는 표현이 과하지 않을 정도로 부드럽고 포슬포슬한 식감이 빼어나다. 목살 수육은 “어떤 전통주와도 부담 없이 어울리는 메뉴”라며 이 연구사가 강추하는 이 집의 또 다른 대표 메뉴다.
제주 은갈치 특선만두·촉촉보들 하이포크 목살 수육 각 3만6000원. 서울 강남구 압구정로48길 39, (0507)1377-7644
육통령: 숙성으로 맛 끌어올린 흑돼지 오겹살
“흑돼지 오겹살이 맛있기로 소문난 집입니다. 직원이 직접 구워 오겹살을 제대로 맛볼 수 있죠. 볶은 소금에 찍어 드시길 권합니다. 강원도에서 직접 메주 띄워서 담근 된장으로 끓인 ‘토장찌개’나 명이나물 등 반찬도 빠지는 것 없이 맛있고요. 전통주가 많지는 않지만 OEM 형태로 만든 ‘육통령 소주 40도’나 ‘미희 막걸리’ 등 이곳 음식과 어울리는 술을 팔아요. 육통령 소주에 토닉워터를 섞은 칵테일도 편히 마실 수 있는 술이죠. 마무리로 ‘육회 비빔밥’은 꼭 드셔야 해요!”
돼지고기를 저장고에서 진공 포장 상태로 14일 저온 장기 숙성한 다음 포장을 뜯어 1~2일 추가 숙성해 고기 맛을 최대한 끌어올린다. 토장찌개에 밥 말아 넣고 끓여 먹어도 별미다.
광개토흑돼지 오겹살 1만7000·목살 1만7000·명품육겹살 2만원, 장수한우 참기름 육회비빔밥 1만5000원, 메주 띄워 담근 토속 된장찌개 8000원. 서울 서초구 반포대로20길 69, (0507)1379-8592
현대카드 쿠킹라이브러리: 전통주 큐레이션
“하나의 음식 주제를 정해 미각과 후각, 청각, 시각, 청각 등 오감으로 경험하게 해주는 곳인데요. 이번에는 매력적인 빛깔과 향, 스토리를 품은 전통주가 주제입니다. 1층 시음존에서 전통주를 맛보고 기본 정보와 브랜드 스토리, 테이스팅 노트, 술 빚는 데 사용한 누룩을 확인할 수 있도록 기획했습니다. 2층에서는 우리나라 대표 명주 소개 코너가 있는데, 직접 향을 맡아 보고 다양한 주·부재료를 살펴볼 수 있어요.”
오랫동안 사랑 받아온 막걸리부터 트렌디한 전통주까지 꼭 맛봐야 할 우리 술을 큐레이션해 제안한다. 현재 1차 라인업으로 막걸리 2종·약주 2종·소주 2종·한국 와인 2종 등 8가지 전통주를 전시·시음·판매 중이다. 4잔으로 구성된 샘플러로 녹두빈대떡·설하멱 등 어떤 전통 음식과 술이 어울리는지 궁합을 찾아볼 수도 있다.
전통주 샘플러 8000원. 서울 강남구 압구정로46길 46, (02)513-29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