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스칼 바르보가 손님에게 낼 음식을 준비하고 있다. /메리어트 인터내셔널

파스칼 바르보(Barbot·51)는 일찌감치 ‘거장’ 반열에 오른 프랑스 요리사다. 스물여덟 살이던 2000년 파리에 자신의 식당 ‘라스트랑스(L’Astrance)를 연 지 5개월 만에 미쉐린 가이드 별 하나를 받았다.

20대 요리사가 레스토랑을 열자마자 미쉐린 스타를 획득하는 건 극히 이례적인 일이다. 어린 나이 과거에 급제하는 ‘소년등과(少年登科)’와도 같다. ‘소년등과한 사람치고 좋게 죽은 이가 없다’는 옛말과 달리, 바르보는 계속 앞으로 나아가고 위로 올라갔다. 5년 뒤인 2005년 별 둘, 서른다섯 살이던 2007년에는 미쉐린 최고 영예인 별 셋을 받았다. 요리사로서 평생을 바쳐도 힘든 성취를 이미 30대 중반에 이룬 셈이다.

이런 바르보가 자신의 인스타그램 계정 맨 위에 올려놓은 요리의 이름은 ‘야채 쌈(Ssam Vegetal)’. 동그란 접시에 양상추·치커리·케일 등 쌈채소를 놓고, 고추·간장·마늘·생강·참기름, 유자청·된장을 섞어 만든 선홍색 ‘쌈 소스(la sauce Ssam)’로 마무리했다.

호텔 그룹 메리어트 인터내셔널 초청으로 JW메리어트 서울과 제주 리조트&스파에서 음식을 선보이는 만찬 행사를 진행한 바르보는 “한식 쌈밥을 먹고 너무 맛있어서 내 방식으로 재해석해 창조한 요리와 소스”라며 “한식은 내 요리 창작에 중요한 영감의 원천”이라고 했다.

한국 쌈밥을 재해석한 파스칼 바르보의 요리 ‘야채 쌈(Ssam Vegetal)’. /인스타그램

◇쌈밥에서 영감 얻은 ‘쌈’ 요리와 소스

-한식은 언제 처음 접했나.

“12년 전이다. 미식 행사 ‘서울 고메 2011′에 초대됐다. 한국도 한식도 처음이었다. 서울 노량진 수산시장, 전북 전주 등을 다니며 한식을 맛보고 한국 식문화를 배웠다.”

-간장·된장·고추장 등 장류와 장아찌·김치 등 저장 발효 식품이 특히 인상 깊었다고.

“장아찌는 복잡한 조리 기술이나 화학적인 맛 없이, 간장과 물만 사용해 끓이고 붓기를 반복해 이토록 훌륭한 음식을 만들 수 있다는 점이 놀라웠다. 장아찌와 장 담그기를 배우려고 파리로 돌아가는 일정도 연기했다. 버스를 빌려 식당 스태프 3명과 함께 사찰 음식 전문가 우관 스님을 만나러 경기도 이천 감은사(感恩寺)를 찾았다. 배추밭에 쭈그리고 앉아 스님이 들려주는 사찰 음식 이야기를 경청했다. 장독대에서 우관 스님이 담근 3년 묵은 고추장을 맛보기도 했다. 울랄라! 짜지 않으면서 달고 구수한 향이 입안에 오래 여운으로 남았다.”

-스님이 들려준 이야기 중에서 기억에 남은 것이라면.

“스님이 ‘한식은 장에서 시작한다. 콩을 삶아 메주를 만들고 장독에 담아 간장과 된장이 되려면 최소 1년이 걸린다. 진정한 슬로 푸드(slow food)’라고 했다. 한식은 요리사가 아니라 시간이 요리하는 음식이란 생각이 들었다.”

-된장국을 스님과 같이 끓였는데.

“밭에서 캔 채소와 장독대에서 푼 된장으로 주방에 들어갔다. 스님이 애호박은 나무 숟갈로 자르고, 나머지 채소는 손으로 끊어 냄비에 넣었다. ‘왜 칼을 쓰지 않느냐’고 묻자, 스님은 ‘채소는 살아 있다. 생명이 상하지 말라고 칼을 대지 않았다. 한국에선 채소에 쇠가 닿으면 비린내가 난다고 한다. 그래서 나무 칼을 쓰기도 한다’고 알려줬다. 채소가 덜 다치도록 쇠로 된 칼을 쓰지 않다니, 놀라웠다. 요리를 통해 ‘제2의 삶’을 음식에 부여한다는 내 요리 철학과도 통하는 것 같았다.”

바르보가 2011년 경기도 이천 감은사 텃밭에서 사찰음식 전문가 우관 스님 옆에 쪼그리고 앉아 한식에 대해 배우고 있다. /조선일보DB

-쌈 소스는 언제 개발했나.

“스님과 헤어져 서울로 돌아오는 길, 대형 마트에 들러 고춧가루, 메주가루, 쌀 조청 등 고추장 재료를 구입했다. 파리에 돌아가 직접 고추장을 담갔다. 이후 연구와 실험을 거듭해 나만의 소스로 발전시켰다. 쌈 소스는 채소는 물론 소고기, 돼지고기, 생선 등 어떤 재료나 음식과도 궁합이 훌륭하다. 프랑스 현지 손님들도 좋아해서 ‘구매할 수 없느냐’는 문의가 많았다. 코로나 이후 온라인에서 판매도 한다. 1등 상품이다.”

-이후로도 한국을 자주 찾았는데.

“코로나 전까지 운 좋게도 거의 매년 올 수 있었다. 그때마다 한식의 새로운 것들을 배웠다. 어느 해에는 전남 담양에서 기순도 전통 식품 명인이 지켜온 360년 넘은 씨간장을 맛봤다. 잉크(먹물)처럼 짙은 색에 강렬하고 그윽하고 풍부하고 복합적인 맛이었다. 또 어느 해에는 경북 영양에서 한글로 쓴 최초의 조리서 ‘음식디미방’ 원본을 직접 보고 거기 나온 음식을 맛보는 귀한 경험도 했다.”

◇군 복무 중 처음 접한 아시아의 맛

프랑스에서 미쉐린 버금가는 권위를 지닌 레스토랑 가이드 ‘고 & 미요’는 2005년 바르보를 ‘프랑스 베스트 셰프’로 뽑았다. 고 & 미요는 “바르보는 프랑스 음식 전통을 잃지 않으면서 동시대에 맞게 업데이트했다”고 선정 이유를 설명했다. 전통 프랑스 요리에서 즐겨 쓰는 크림과 버터 사용을 줄여 더 가벼운 음식을 추구하면서도, 풍성한 풍미를 위해 아시아와 아메리카 식재료와 조리법을 폭넓게 활용한다. 그는 “20대 초 군 복무를 하면서 아시아 식재료와 향신료를 처음 맛봤다”고 했다.

-군대에서 아시아 음식을 접했다고?

“프랑스 중심의 작은 시골 오베르뉴(Auvergne)에서 태어났다. 버터와 크림, 치즈가 듬뿍 들어간 전형적인 프랑스 음식만을 먹고 자랐다. 과거 프랑스는 군 복무가 의무였다. 스물한 살 때 프랑스 해군 태평양함대 제독 전속 조리병으로 배정돼 1년간 태평양 뉴칼레도니아에서 근무하면서 피지, 통가, 인도네시아도 방문했다. 다양한 아시아 음식을 처음 접했다. 코코넛밀크는 뉴칼레도니아에서 처음 써봤고, 가장 사랑하는 향신료인 고추는 인도네시아에서 처음 접했다. 호주 시드니에서도 1998년부터 2년간 일했다. 군 복무와 호주에서 일한 경험을 통해 ‘음식은 이래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깨졌다. 훨씬 자유로워졌다.”

-일곱 살 때 요리사가 천직임을 깨달았다는 게 사실인가.

“프랑스 시골 집이 대개 그렇듯 우리집도 텃밭을 가꿨다. 토마토, 오이, 콩, 감자 등 여러 채소를 재배했다. 토끼와 닭도 풀어 키웠다. 평일에는 하교 후 텃밭에서 놀았고, 주말이면 아버지를 도와 텃밭을 가꿨다. 어머니 요리를 종종 도왔는데, 재밌기도 했지만 왠지 모르게 내가 해야 할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파스칼 바르보가 JW메리어트 제주 리조트&스파에서 손님에게 낼 음식을 마무리하고 있다. /메리어트 인터내셔널

바르보는 열네 살 때 호텔조리학교에 입학했다. 학교에서 두각을 나타낸 그는 졸업 후 파리 ‘맥심(Maxim’s)’, 런던 ‘레 사뵈르(Les Saveurs)’, 리옹 인근 ‘트루아그로(Troisgros)’ 등 유명 레스토랑에서 일하며 엘리트 셰프 경력을 쌓았다. 특히 파리 ‘아르페주(Arpege)’에서의 6년이 그의 요리에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 아르페주가 미쉐린 3스타를 획득할 당시 바르보는 부주방장이었고, 외식 업계에 확실하게 이름을 알리며 입지를 다질 수 있었다.

-아르페주 오너셰프 알랭 파사르(Passard)에게는 뭘 배웠나.

“무엇보다 ‘식재료에 귀천은 없다’는 가르침을 얻었다. 단순히 레시피가 아니라 요리사로서 사고하는 법을 배웠다. 채소 등 전통적으로 서양 요리에서 사이드나 가니시(장식)로 여겨지던 식재료를 접시의 주인공으로 내세우게 된 건 아르페주에서의 경험과 배움 덕분이다.”

-세계 정상급 레스토랑은 어디나 업무 강도가 세다. 서울에선 일할 사람 구하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

“파리도 마찬가지다. 파인다이닝(고급) 레스토랑은 아침 일찍 출근해 재료 밑손질을 하고, 영업시간에는 요리하고, 주방 정리하고 청소를 하면 자정에야 일이 끝난다. 하지만 요리사로 성장하려면 감당해야 한다. 젊은 시절 내가 일부러 노동 강도가 센 주방에 지원한 이유다. 젊은 사람들은 ‘워라밸’이 중요하고, 힘든 일은 하지 않으려 한다고 들었다. 그들의 선택을 존중하지만 그렇게 해서는 좋은 요리사가 될 수 없다. 축구·농구·테니스 등 스포츠와 마찬가지로, 요리도 타고난 재능 못지않게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탁월한 경지에 이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