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시절 매년 전교 1등을 놓치지 않기 위해 공부에 매진한 의사‘와 ‘성적이 한참 모자라 추천제로 입한 공공의대 의사’ 중 누구에게 수술을 받겠습니까?”

학벌 지상주의, 엘리트주의적 인식을 드러냈다는 취지의 비판이 잇따라 제기된 의료정책연구소 홍보물.

공공의대 설립, 의대 정원 확대 등에 반대하며 전공의들이 무기한 파업을 이어가는 가운데 한 의료정책 연구기관에서 이런 내용을 담은 홍보물을 제작해 논란이 되고 있다. 의사들이 정부 정책에 반대하면서 ‘학벌 지상주의’ ‘지나친 수능 부심(수능 고득점에 대한 자부심)’을 내비친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 것이다. ‘의사의 자질을 단순히 성적으로 평가하는 엘리트주의적 인식을 드러냈다’는 취지의 비판이 잇따라 제기되자 2일 현재 해당 게시물은 감춰진 상태다.

대한의사협회가 설립한 의료정책연구소는 지난 1일 페이스북에 “당신의 생사를 판가름 지을 중요한 진단을 받아야 할 때, 의사를 고를 수 있다면 둘 중 누구를 선택하시겠습니까?”라는 질문이 담긴 홍보물을 게재했다. 이 질문에는 ‘매년 전교 1등을 놓치지 않기 위해 학창시절 공부에 매진한 의사’와 ‘성적은 한참 모자라지만 그래도 의사가 되고 싶은 공공의대 의사’라는 선택지가 있다고 적었다.

이 홍보물을 놓고 소셜미디어에선 “전교 1등이면 다 명의(名醫)가 되느냐” “언수외탐(수능 과목 중 언어·수리·외국어·탐구 영역)으로 의료 수술을 하는 건가” “학벌로 의사의 능력이 정해지는 건가” “의사들의 선민(選民) 의식이 지나치다”라는 등의 비판이 제기됐다. 수능 성적만으로 진단과 수술 등 모든 의료 능력을 재단하려는 인식은 잘못됐다는 지적이다. 다만 “많은 전문용어, 해부학지식 다 외우려면 체계적인 공부한 사람 찾는 것이 맞는다” “큰 수술은 명문대 나온 의사에게 받고 싶은 게 인지상정 아닌가”라는 의견도 나왔다.

의료정책연구소가 만든 홍보물엔 “두 학생 중 각각 다른 진단을 여러분께 내렸다면 다음 중 누구의 의견을 따르시겠습니까?”라는 질문과 함께 ‘수능 성적으로 합격한 일반의대 학생’과 ‘시민단체장의 추천을 받아 시험을 치르지 않고 입학한 공공의대 학생’을 선택지로 제시한 내용도 있었다. “환자가 많은 의대 병원에서 수많은 수술을 접하며 수련한 의사와 인프라가 갖춰지지 않은 지방 공공의대에서 수술은 거의 접하지 못한 의사 중 누구에게 수술을 받길 원하냐”는 물음도 있었다.

여성들 사이에선 이런 문항이 “생리통으로 한약을 지어먹는 여성을 상정한 것은 다분히 여성혐오적인 관점에서 나온 예시”라고 의견이 나왔다.

“둘 중 건강보험 적용은 누구에게 돼야 할까”라는 항목도 논란을 일으켰다. 예시로는 “면역항암제가 필요한 폐암 말기환자”와 “생리통 한약이 필요한 A씨”가 제시됐다. 정부는 10월부터 건강보험에 가입된 환자가 시범사업에 참여하는 한의원에서 안면신경마비, 뇌혈관질환 후유증(만 65살 이상), 월경통 질환 치료 첩약에 한해 연간 최대 10일까지 본인부담률 50%를 적용받을 수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여성들 사이에선 이런 문항이 “생리통으로 한약을 지어먹는 여성을 상정한 것은 다분히 여성혐오적인 관점에서 나온 예시”라고 의견이 나왔다.

의료정책연구소 관계자는 “의사 파업과 관련한 내용을 쉽게 전달하려고 만들었으나 의도와 다르게 오해를 산 표현이 있다고 판단했다”며 “송구하게 생각해서 게시물을 내렸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