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사태가 8개월째로 접어들면서 우리 사회의 정신 건강에도 적신호가 켜졌다. 코로나 종식에 대한 희망이 사라지고 방역 조치로 일상과 경제활동에 브레이크가 걸리면서 그동안 억눌렸던 우울과 불안 감정이 이제 분노로 폭발하고 있다. 코로나로 인한 건강 악화뿐 아니라 실직·폐업 등으로 인한 심리적 고통에 빠지면서 코로나 블루(Corona Blue·우울증)에 이어 코로나 레드(Red·화병)를 호소하는 사람이 급증하고 있다는 게 전문가 진단이다.
김상욱 대한정신건강의학과 의사회 부회장은 “코로나 사태는 감염병 차원뿐 아니라 정신 건강 의학적으로도 최고 수준의 참사”라며 “올해 상반기 우울증으로 병원에서 진료를 받은 사람은 59만5724명으로 작년 상반기보다 5.8% 증가했다”고 말했다. 지난 2월부터 올해 상반기까지 국가트라우마센터나 정신건강복지센터에서 이뤄진 코로나 블루 관련 상담 건수는 37만4221건으로, 이미 작년 한 해 우울증 상담 35만3388건을 넘었다.
◇우울에서 분노로 코로나 감정 변화
코로나 블루 증상은 마음이 지치면서 우울감이나 무기력감이 발현된 것이다. 수면 장애를 겪거나 식욕에 변화가 나타나기도 한다. 말과 행동이 느려지거나 반대로 안절부절못하는 증상, 피곤하고 기운이 없고 자신에 대한 자책감이 나타나면 코로나 블루를 의심해 볼 필요가 있다.
김상욱 부회장은 “건강에 민감한 고령층이 운동이나 외출을 하지 못해 겪는 우울감과 불안감이 특히 크다”고 지적했다. 코로나 사태로 취업 등에 어려움을 겪는 청년층에서도 코로나 블루가 확산하는 양상이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20~30대 우울증 진료 건수는 17만771건으로 지난해 상반기 14만223건보다 21.8% 증가했다.
코로나가 장기화하면서 이제는 코로나 레드로도 폭발하고 있다. 우울감이 쌓이고 쌓이다가 짜증과 분노 등 일종의 ‘화병’의 형태로 폭발하는 것이다. 코로나 사태로 인한 우울감과 분노가 표출된다는 점에서 분노 폭발의 원인이 뚜렷하지 않은 분노 조절 장애와 구별된다. 코로나 레드는 코로나 사태를 경험하며 누적된 우울감이나 분노로 원인이 명확하다. 김 부회장은 “최근 대중교통에서 마스크 착용을 두고 폭행 시비가 잇따르거나 방역 수칙을 어기거나 이와 관련된 과격한 행동 등이 코로나 레드의 주요 사례”라고 말했다.
일상과 경제활동의 제약이 기약 없이 커진 것이 코로나 레드를 확산시킨 요인이다. 서울시 코로나 심리지원단장을 맡고 있는 명지병원 김현수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코로나 초기에는 ‘공포’ ‘불안’ ‘우울’의 감정이 우리 사회를 지배했다”며 “최근에는 ‘언제까지 이럴 거지?’라는 생각에 ‘분노’ 감정이 더 커지는 중”이라고 말했다. 서울대 보건대학원의 대국민 설문조사에서도 거리 두기가 강화되기 전인 8월 초에는 코로나로 겪는 감정 순위로 불안이 62.7%, 분노가 11.5%였으나 거리 두기가 강화된 이후인 8월 말에는 불안이 47.5%로 줄어든 반면 분노는 25.3%로 급증했다.
◇가장 좋은 해결 방법은 ‘운동’
코로나 블루와 레드를 예방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몸을 움직이는 것이다. 강동경희대병원 화병스트레스 클리닉 김종우 교수는 “우울증 등 정신장애 치료의 기본은 활동량을 늘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운동을 하면 혈중 스트레스 호르몬의 농도가 옅어져 우울감이나 분노를 낮추는 효과가 있다. 감염병 전문가들도 사회적 거리 두기로 실내에만 머물게 아니라 한적한 야외에서 뛰고 걸어야 건강을 유지할 수 있다고 조언한다. 김상욱 부회장은 “코로나 관련 뉴스에 장시간 노출되는 것을 피하고, 과도하게 방역 수칙을 의식하기보다 가장 기본적인 수칙을 착실히 지키는 쪽으로 생각을 전환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코로나 블루와 코로나 레드가 의심된다면 망설이지 말고 전문의 상담을 받는 게 중요하다. 1339로 전화를 하면 평일과 주말 모두 오전 9시부터 오후 9시까지 지방자치단체별로 보건소를 중심으로 정신건강복지센터 등에서 무료 상담을 받을 수 있다. 개인 신상을 밝히지 않아도 상담이 가능하고, 상담 내용은 상담자 외에는 열람할 수 없도록 보안 유지된다. 심층 상담이 필요하면 한국심리학회 전문가들이 무료로 심리 상담을 제공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