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이면 늘 미뤘던 건강검진을 받으려는 사람들로 병원과 건강검진센터가 북적인다. 한 상급종합병원 관계자는 “코로나 사태로 인한 건강검진 대란 우려로 올해 검진 기한이 내년 6월까지 연장됐지만, 여전히 검진을 받으려는 사람이 많다”고 말했다.

항공기 조종사들은 일반 건강검진보다 훨씬 까다로운 검진을 받는다. 일반 건강검진과 달리 매년 받아야 하고, 수많은 기준 중 하나라도 부적합 판정이 나오면 조종간을 잡을 수 없다. 서병성 강북삼성병원 직업환경의학과 교수는 “조종사뿐 아니라 조종사를 지망하는 고등학생도 조종사 건강검진을 미리 받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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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까다로운 검사는 시력 관련 검사다. 교정시력이 1.0 이상이 되어야 하고, 라식·라섹 등 시력교정수술을 받은 경우에는 눈부심 증상이 없어야 한다. 장여구 서울백병원 외과 교수는 “조종사를 목표로 하는 학생이라면 시력 교정술을 받기보다는 안경을 착용하는 게 더 안전하다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과거에는 색맹, 색약이 있으면 부적합 판정이 나왔다. 야간 활주로를 제대로 볼 수 없다는 지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증상에 따라 야간 비행을 하지 않는 조건으로 적합 판정이 나오기도 한다. 두 눈이 제대로 정렬되지 않는 사시도 부적합이 될 수 있다. 서 교수는 “조종사 지망생 중에 한쪽 눈을 감으면 다른 한쪽 눈이 돌아가는 경우가 꽤 있다”며 “이 경우 사시 교정술을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공황장애나 우울증의 경우도 과거에는 부적합이 나왔지만, 최근에는 치료로 증상이 완화된 경우에는 조건부 적합 판정이 나온다. 소음이 큰 조종실에서 수시로 교신해야 하기 때문에 청력 검사도 꼼꼼하게 이뤄진다.

혈압과 심장, 간 등 주요 장기나 신경계 등에도 이상이 없어야 한다. 당뇨병도 조종사의 발목을 잡을 수 있는 질환이다. 60세가 넘은 조종사는 1년이 아닌 6개월에 한 번 검진을 받아야 하고, 암 등으로 큰 수술을 받고 회복한 경우 검진 때 더 엄격한 기준이 적용된다. 중증 질환을 앓은 경우에는 완치 판정 후 1년 후 검진에서 이상이 없어야 조종사 복귀가 가능하다. 조건부 적합 판정이 있는 경우는 대형 항공사 취업은 어려워지기 때문에 파일럿들은 건강 관리에 각별히 신경을 쓸 수밖에 없다.

조종사 검진은 조종사 면허를 관할하는 국토교통부에서 지정한 병원에서만 가능하다. 장 교수는 “일반 검진은 병을 찾고 건강을 유지하려는 목적이지만 항공 조종사 검진은 궁극적으로 여객기 승객의 안전을 담보하려는 것”이라며 “비행 중 일말의 돌발 상황이 벌어지지 않도록 하려면 상당히 까다로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