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에 카카오톡이나 메신저로 문자 대화를 잘 나누던 60대 부부. 어느 날 둘 사이 주고받은 문자 대화에 이상한 점이 발견된다. 외출 나간 남편이 아내에게 “거기 춥지?”라고 문자를 보내자, 아내는 “거기 춥지?”라며 뜬금없이 남편이 보낸 문자를 반복한다. 남편이 재차 “춥지?”라고 묻자, 아내는 엉뚱하게 “좋다”라고 답한다. 날씨 대화가 자연스럽게 이어지지 않은 것이다. 이후 아내는 대화 내용과 별 상관없는 이모티콘을 여러 개 보내고, “비가 오냐?”는 남편의 질문에도 “비가 오냐?”고 반문했다. 남편은 아내의 문자가 이상하다 여기고 집으로 달려갔고, 실제 아내의 말도 평소와 달리 어눌해진 것을 발견했다. 병원에 급히 데리고 가 정밀 검사를 받은 결과, 아내의 언어 중추에 뇌경색이 발생한 것으로 밝혀졌다.
◇실어증의 새 신호, 휴대폰 문자 입력 이상증
갑자기 말이 어눌해지거나, 발음이 새거나, 말을 제대로 못 하는, 이른바 실어증(失語症)이 생기면 뇌졸중을 의심할 수 있다. 실어증의 90%는 뇌졸중이 원인이다. 하지만 실제 대화보다 비대면 카톡이나 메신저 문자 대화가 더 많은 요즘에는 스마트폰 문자 타이핑 이상 현상이 새로운 디지털 실어증으로 등장하고 있다.
최근 국내서 발행하는 국제학술지 신경중재치료의학회지(Neurointervention)에 태국에서 메신저 문자 대화 이상을 보고 뇌졸중을 의심하여 조기에 언어 중추 뇌졸중을 잡아낸 사례 논문이 실렸다. 이 학술지의 편집장인 서대철 서울아산병원 영상의학과 교수는 “뇌졸중의 21세기판 신호라는 문자 입력 장애 ‘디스타이피아(dystypia)’를 상대방이 조기에 발견하여 신속한 치료로 환자가 깔끔하게 회복된 사례였다”며 “전 세계적으로 코로나 팬데믹 이후 비대면 문자 대화가 늘어나는 상황에서 스마트폰 문자 대화가 뇌졸중 증상 발현의 새로운 단서로 자리매김했다는 연구가 신경학 학술지에 나오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카톡 문자 대화 시 질병 이상 신호
예전 같으면 나이 드신 부모와 전화 통화를 하다가 자식이 “아버지, 발음이 새고, 말이 왜 그러세요?”라며 뇌졸중을 의심하여 병원에 데리고 가는 경우가 많았다. 요즘은 고령 세대도 카톡이나 메신저 문자 대화를 애용하면서, 전화 통화보다 문자로 대화를 나누는 일이 더 잦아졌다.
그러기에 평소에 문자 대화를 잘하던 사람이 문자 입력 장애로 볼 수 있는 이상한 형태의 문자를 보내면 뇌졸중 의심 신호로 볼 수 있다. 박건우 고려대병원 신경과 교수는 “대화 문자를 입력하는 것은 혀 대신 손가락으로 말을 하는 것처럼 뇌에서 대화 회로가 작동된다”며 “그 언어 중추에 뇌혈류가 막히는 뇌경색이 발생하면, 말이 안 나오는 것처럼 문자 입력을 못 하게 된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갑자기 맞춤법이 엉망이고 조각난 문장을 보내거나 뜻이 없는 비문(非文) 형태의 글이 등장하고 상대방의 질문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답변을 보내거나 상대방의 문자를 계속 따라서 반복하는 문자를 보내고 문자를 치지 못하고 엉뚱한 이모티콘만 보내 올 때 뇌졸중을 의심할 수 있다.
좀 전에 한 문자를 잊어버리고 같은 내용을 반복하거나 특정 내용의 문자를 계속 보낼 때는 치매 증세 중의 하나인 보속증(같은 것을 계속 반복하는 행동) 가능성도 있다고 박 교수는 덧붙였다.
아예 타이핑을 못 치게 되면 대뇌 전두엽에서 손동작을 관할하는 부위에 뇌경색이 생겼을 가능성이 있다. 그 경우 손동작이 조화롭게 이뤄지지 못해 문자 입력 자체가 어려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