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세계 최저의 신생아 출산율을 보이고 있지만 출산 연령이 높아지면서 고위험 산모는 오히려 늘고 있다.
특히 출산 과정에서 사망하는 산모의 비율인 모성사망비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보다 높고, 의료 인프라가 부족한 지방의 모성사망비는 전국 평균보다 수 배나 높다.
전문가들은 임신 중 합병증 위험이 증가하는 고위험 산모들이 늘어나고, 저출산 여파로 분만 인프라가 무너지면서 모성사망비가 여전히 높게 나타나고 있다고 지적한다.
7일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지난해 출생(등록)자 수는 30만 명선을 유지했던 2019년보다 3만2882명(10.65%) 감소한 27만5815명으로 역대 최저를 기록했다.
반면 결혼과 출산이 늦어지면서 고연령 산모는 늘어나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00년 4만3000여 명이었던 35세 이상 산모는 18년 간 약 4.7배 증가해 2018년에는 10만4000여 명으로 늘었다.
의료계에서는 만 35세 이상의 여성이 임신할 경우 고위험 산모로 분류한다. 산모가 35세가 넘으면 합병증이 증가해 만성고혈압, 임신중독증, 난산, 조산, 산후출혈, 임신성 당뇨, 염색체 이상, 기형아 출산 등의 발생 위험이 증가한다.
특히 출생아 10만 명당 사망하는 산모수를 나타내는 모성사망비는 OECD 평균을 웃돌고 있다. 2007년부터 2016년까지 10년간 OECD 평균 모성사망비는 8.21이고 우리나라의 같은 기간 평균 모성사망비는 12.29이다.
특히 2017년 기준 지역별 모성사망비는 강원도가 33.5명으로 가장 높았는데 이는 전국 평균(7.8명)의 4배가 넘는 수치다.
― 고령임신·무너진 분만인프라 원인
전문가들은 우리나라의 모성사망비가 높게 나타나는 이유는 고위험 산모가 증가하고 있고, 저출산 여파로 분만 인프라가 무너졌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강원대병원 고위험 산모·신생아 통합치료센터장인 황종윤 교수(산부인과)는 "출산연령이 높아져 고위험 임신이 늘어난 것이 가장 큰 원인인 것 같다"며 "35세 이상 산모들은 각종 질환이 생길 때쯤 임신이 되어서 동반 질환이 악화될 확률이 높다"고 말했다.
이어 "고위험 산모들은 치료를 잘 받아야 하는데 분만 인프라가 무너지기 시작했다"며 "일부 지역은 인구도 적고, 가임기 여성도 적어서 병원이 세워지기 힘들다보니 더 악화되는 경향이 있다"고 덧붙였다.
고려대 안암병원 고위험 산모·신생아 통합치료센터장을 맡고 있는 홍순철 교수(산부인과)는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연령별 모성사망비는 40대 이상이 가장 높다. 40세 이상의 모성사망비는 15명을 넘는다"며 "우리나라의 모성사망비가 OECD 평균보다 높은 것은 분만 인프라가 취약하기 때문이다. 분만 취약지에서는 모성사망비도 높게 나타난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의 지적대로 고위험 산모는 증가하고 있지만 이를 전문적으로 담당하는 시설이나 체계는 미흡한 상황이다.
고위험 산모의 진료와 분만을 위해서는 고도의 장비, 숙련된 의료진 및 관련 진료과와의 협진이 필수이지만 고위험 분만을 위한 시설과 장비 및 인력 등이 부족하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고위험 산모를 전문적으로 치료하는 병상은 필요병상 대비 32.3%만 설치돼 있다. 고위험 산모·신생아 치료 인프라는 대표적인 고비용·저수익 시설이기 때문이다.
또 산부인과 전공의의 감소로 대학병원에서조차 분만실 운영이 어려운 상황이다. 고위험 산모의 증가, 산부인과 및 분만실 감소는 결국 모성사망비 증가로 이어진다.
― 고위험 산모 통합적·체계적 치료체계 구축해야
정부는 분만과 같은 필수 의료분야에 대한 적정 수준의 개입이 필요하다고 보고 고위험 산모와 신생아 치료 인프라 구축에 선제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일본이나 미국 등 주요 선진국에서도 고위험 산모와 신생아에 대한 통합적이고 체계적인 치료 체계를 구축해 건강한 출생을 지원하고 있다.
복지부에 따르면 일본의 경우 1996년부터 정부 주도적으로 통합진료를 추진해 분만·출생 관련 지표에서 세계적으로 가장 우수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정부는 이에 따라 인구수 및 생활권역을 기준으로 전국을 15개 권역으로 구분하고 고위험 산모·신생아 통합 치료센터 총 20개소를 설치할 예정이다.
황종윤 교수는 "산부인과 의사들이 열악한 상황에서도 밤낮 없이 잠도 잘 자지 못하고 일하고 있는데 정부의 지원 정책으로 그나마 이정도를 유지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며 "분만취약지 지원사업이나 고위험산모·신생아 통합치료센터 같은 정책 마저도 없었으면 더 악화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홍순철 교수는 “분만 병원이 적절한 거리에 있고, 상급종합병원이나 고위험산모센터와의 원활한 협력 시스템이 구축되는 것이 중요하다”며 “고위험 산모가 분만을 하거나 합병증이 발생했을 때 빠르게 전원할 수 있는 시스템 등이 잘 돼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