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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40대 직장인 A는 요즘 고등학생처럼 시험 보는 꿈을 꾼다. 시험 준비를 못한 상황에서 시험지를 넘겨도 넘겨도 끝이 없어 당황하는 꿈이다. 이 나이까지 돼서 이런 꿈을 꾸다니, 요즘 ‘스트레스가 많기는 많은가보다'라고 생각했다.

#2. 40대 여성 B는 친구 어머님이 돌아가셔서 문상 다녀온 날 밤, 작년에 돌아가신 아버지 꿈을 꾸었다. 꿈속에서 만난 아버지는 엄했던 생전과는 달리 다정한 모습이어서 행복했다.

#3, 자녀를 둔 30대 여성 C는 집에 불이 나는 꿈을 꾸었다. 밖으로 나와 집을 바라보니 집이 벌겋게 타고 있는데 빨간 불씨가 바람에 날아와 아이에게 닿을까 봐 아이를 꼭 껴안는 꿈이었다. C는 자다가 한기를 느껴 일어나 보니, 침실 문이 활짝 열려 있었고, 엊그제 거실에 설치한 빨간 크리스마스트리 불빛이 빛나고 있었다. 수면 중 신체 감각이 꿈으로 표현된 것이다.

세 가지 예는 정상적인 꿈이다. 전체 수면의 20%를 차지하는 렘(REM)수면에서 주로 꿈을 꾸는데, 꿈의 재료는 우리가 경험하고 뇌에 저장되어 있는 것, 무엇이든 될 수 있다. 최근 겪은 사건, 스트레스, 낮에 경험한 일이 될 수 있다. 무의식 속에 억압되어 왔던 공격성, 성적 환상, 소망도 꿈으로 재현 가능하다. 갈증을 느끼거나, 배고프거나, 덥거나, 춥거나 하는 신체적 감각도 꿈의 재료가 된다.

사람들은 이런 재료를 가지고, 현실 법칙에 구애받지 않고, 논리적이지도 않은 꿈을 꾸게 된다. 그것을 길몽, 흉몽, 태몽 등 의미가 있는 것으로 사람들이 해석을 부여하곤 한다. 다음 예는 비정상적인 꿈으로, 진단과 치료가 필요하다.

#4. 38세 남자 D는 수개월 전부터 꿈을 꾸다가 비명을 지르며 일어난다. 식은땀도 흘린다. 꿈이 생생해 잔상이 하루 종일 남아서 일에 집중하기 어려울 때도 있다. 이 같은 악몽은 놀라면서 깨는 것이 특징인 수면장애다. 식은땀, 발한, 빈맥 등 자율신경계 증상이 동반된다. 주로 수면 후반 새벽녘에 나타난다. 흔히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로 악몽을 경험하지만, 그렇지 않아도 불안⋅감정적 어려움 등 정신적 문제를 겪는 경우에도 꾼다.

#5. 18세 남자 E는 가끔 자다가 가위에 눌린다. 정신은 깼는데 몸을 꼼짝 못 한다. 수분 정도 지속되다가 괜찮아지는데, 어떨 때는 숨 막혀 죽을 것 같다. 이는 수면 마비라고 불리는 증상이다. 의식은 깼으나 몸을 움직일 수 없고, 말을 할 수도 없다. 가끔 환각도 동반된다. 청소년기 수면 부족으로 나타날 수 있다. 대개 충분히 자면 좋아진다.

하지만 가위눌림이 반복적으로 나타나고 주간 졸림이 심하면, 기면병이 아닌지 의심해야 한다. 기면병 환자의 20~40%가 가위눌림을 경험한다. 아니면 반복성 가위눌림이라는 수면장애일 수 있다. 이 경우는 렘수면 억제 작용이 있는 세로토닌이나 특정 약효의 항우울제를 쓰면 좋아진다.

#6. 65세 남자 F는 자다가 잠꼬대를 하면서 실제 싸움하는 것처럼 주먹질을 한다. 며칠 전에는 커다란 개가 다리를 무는 꿈을 꿔서 개를 밀쳐 낸다는 것이 그만 옆에서 자던 아내를 발로 걷어 찼다. 정상적인 렘수면 단계에서는 근육 긴장도가 최저치가 되어 몸을 움직일 수 없다. 하지만, 렘수면 중 꿈에 나오는 내용을 실제 행동으로 옮기는 경우가 생긴다. 본인은 물론 동침자도 다칠 위험이 있다. 파킨슨병이나 루이소체 치매와 같은 신경 퇴행성 질환 초기 증상으로 나타나곤 한다. 중년 이상 남성에게서 흔하다. 자다가 다치지 않도록 침실 환경을 안전하게 해야 한다. 클로나제팜 같은 약물을 취침 전에 복용하는 것으로 비교적 잘 조절된다. 최근에는 멜라토닌도 쓰인다.

#7. 53세 여자 G는 자다가 자주 깬다. 기분도 우울하고, 아침에 일어나면 꿈만 꾸다가 깨는 것 같아서 잔 것 같지 않다. 렘수면 중 잦은 각성으로 꿈이 많다고 느끼는 불면증이다. 대개 우울과 불안이 겹친 경우다. 수면 무호흡증과 같이 렘수면 중 각성을 일으키는 원인이 있는지도 봐야 한다. 다른 원인이 없다면, 인지행동 치료와 약물 치료로 고칠 수 있다.

꿈은 정신 건강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낮 동안 쌓인 감정을 처리한다. 꿈을 꾸는 중 뇌 양전자단층촬영(PET) 검사를 해보면, 감정 조절과 연관된 뇌가 활성화되는 걸 볼 수 있다. 낮에 경험한 감정 기억들을 꿈꾸면서 처리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과정을 반복하며 불안, 우울 등 감정 반응이 배제된 중립적인 기억으로 정리된다. 꿈꾸는 동안 자전거 타거나 운전 같은 자동적으로 반응하는 장기 기억이 확고하게 형성하게 된다. 또한 꿈은 창의성을 좋게한다. 비틀스의 폴 매카트니는 꿈에서 들었던 멜로디를 옮겨 적어 ‘예스터데이’를 작곡했다고 한다. 꿈이 일상의 감정과 행동에 나쁜 영향을 주거나 신체 증상으로 연결되는 것은 비정상적인 꿈이니, 정확한 진단과 치료를 받는 게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