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20~30대 젊은 연령에서 시작된 우울증이나 조울증 등 기분 장애 환자 500여 명을 전국적으로 모집하여 장기간 추적 관찰하는 연구를 7년째 하고 있다. 3개월마다 병세나 재발과 연관된 요소를 점검하고 있다.
이 연구를 수행하면서 확인히 알게 된 사실은 우울증과 조증 재발에 가장 중요한 요인은 불규칙한 생활 습관에 따른 생체 리듬의 변동이라는 점이다. 늦게 잠들고 늦게 일어나고 수면 패턴이 불안정해지는 상황이 지속되면 생체 리듬이 흐트러지게 되고 이로 인해 우울증과 조증이 발생한다.
물론 모든 사람이 그러는 것은 아니나, 기분 장애 취약성을 가진 사람은 생체 리듬 변동이 기분 조절 문제를 꼭 일으킨다. 생체 리듬이 아침 뒤로 밀릴수록 무기력감이 생기고, 밤에는 잠이 안 오고, 푹 자기 어려워지는 현상이 나타난다. 잠 부족 상태가 계속되면 생체 리듬은 더욱 흐트러지고 심리적 불안정 상태에 빠져서 심한 우울증과 조증까지도 발생하게 된다.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생체 리듬이 조절되는 과정을 이해해야 한다. 우리 몸속에는 생체 시계가 있다. 이는 지구상 모든 생명체에 존재하는 기전으로 유전자 작동에 의해 나타난다. 인간의 생체 시계 유전자 발현은 정확히 24시간이 아니다. 개인차가 있으나 주기가 대체로 24.5시간이다. 그러므로 매일 생체 시계를 앞당기지 않으면 점점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게 된다. 다만 눈으로 들어온 아침 빛이 뇌로 전달되어서 매일 우리의 생체 시계를 우리 자신도 모르게 20~30분씩 앞당겨주고 있다.
필자는 그래서 환자를 포함한 주변 사람들에게 아침 산책을 적극적으로 권한다. 집 밖에 나가기 어려우면, 창문이나 밝은 인공 조명을 이용해서라도 아침에 눈으로 많은 빛을 많이 쪼이도록 권유한다. 만약에 이미 우울증이 발병하여 한 달가량 지속되고 있는 상태이고 평소 감정 기복이 심한 편이라고 하면 아침 산책보다는 우선 점심 무렵에 빛을 보기를 추천한다. 왜냐면 이런 경우에는 이미 생체 리듬이 훨씬 뒤로 밀려 있을 수 있으므로 아침 빛이 생체 시계를 앞당겨주는 효과가 없기 때문이다. 정오 무렵부터 밝은 빛을 보도록 하고 점차 2~3일 간격으로 20-30분씩 빛을 보는 시간을 앞당겨서 결국 아침까지 당기게 되면, 어느덧 우울증이 좋아져 있음을 느낄 것이다.
진료 경험과 연구를 통해 이런 사실을 절감했기에 필자 자신도 아침 빛을 보는 것을 내 자신의 수면과 마음 건강 챙기는 비법으로 사용하고 있다. 내 ‘카톡’ 프로필 상태도 ‘아침 햇빛’이라고 써 놓았다. 그런데 바쁜 일상 속에서 매일 아침 산책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워 이른 아침에 주로 인공 빛을 쬔다. 이는 해가 늦게 뜨는 겨울에 더욱 유용하다.
최근에는 일반 조명 기구보다 더 밝은 빛인 5000~1만룩스(Lux)를 비출 수 있는 기능성 조명 기구, 이른바 라이트박스를 어렵지 않게 구입할 수 있다. 라이트박스 앞에서 일부러 강한 빛을 쬐는 방법이다. 탁자 위에 라이트박스를 켜두고 50cm 정도 거리에서 얼굴을 비추게 하면 된다. 계속 눈으로 빛을 쳐다볼 필요는 없으며 시야에 들어와 있으면 된다. 그 상태로 비스듬히 책을 보거나 멀리 떨어진 TV를 보거나, 아침 식사를 해도 된다. 1만룩스 세기의 빛이라면 20~30분 정도가 적당하다. 이런 아침 빛 노출의 효과 중 가장 뚜렷한 것은 밤에 잠이 일찍 온다는 것과 더 깊게 자게 된다는 점이다. 기분과 심리적 컨디션도 여유로워지고 긍정적 에너지가 생기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이런 현상은 최근 젊은 세대 사이에서 열풍을 일으키고 있는 ‘미라클 모닝’과 2000년대 초에 유행했던 ‘아침형 인간’이라는 책에서 주장하는 내용과도 일맥상통한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습관을 갖게 되면 우울증이 예방될뿐더러 자신의 능력을 한껏 발휘할 에너지를 갖게 된다. 아침 이른 기상이 저절로 아침에 밝은 빛을 보게 만드는 효과 덕이다. 아침에 밝은 빛을 봐서 생체 시계를 앞당겨보자. 우울증을 예방하고 극복하는 비법은 아침 빛을 통해 생체 리듬을 바로잡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