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송윤혜

가정주부 김모(52)씨는 평소에 속이 더부룩하고 아무것도 먹지 않았는데도 윗배가 빵빵하다. 심할 때에는 계속 트림을 하거나 구역질을 느끼곤 한다. 이런 증상은 일주일에 3번 이상 발생했다. 스트레스를 받거나 두통으로 몸이 안 좋을 때, 증상이 심해지는 것 같았다.

위 내시경을 매년 받았으나, 만성 표재성 위염만 있다고 했다. 의사는 그것으로 그런 증상을 일으키지 않으니, ‘신경성’이 의심된다고 했다. 소화제를 먹어보았으나 도움이 되지 않았다. 가는 병원마다 신경성 소화불량이라 하고, 특별한 치료는 없었다. 복부 초음파사도 CT도 찍어봤다. 역시 이상이 없었다. 답답한 마음에 남편, 아들, 딸, 친구들에게 고충을 털어놨지만, 예민하다느니, 심약하다느니 하면서 ‘정신질환자’ 취급을 해서 더 이상 말도 안 꺼낸다. 환자도 의사도 답답한 병이다.

환자는 결국 우리 병원에서 기능성소화불량증으로 진단받았다. 이후 장 운동을 조절하기 위해 소화가 잘되고 가스 발생이 적은 음식 위주로 먹었다. 위장관 운동 개선제와 위산분비 억제재도 처방받았다. 식사 후 30분 이상 걷기를 습관화하도록 했다. 이것만으로 증상이 30%정도는 좋아졌다. 나중에는 소화기와 뇌 상호작용을 돕는 신경조절제를 먹으면서 증상이 70% 정도까지 나아졌다.

◇소화기, 염증 질환서 기능 장애로 이동

염증이 심해서 위벽이 허는 속쓰림의 대명사 위궤양 환자는 최근 10년 새 절반 가까이 줄었다. 만성 표재성 위염도 2010년 43만여 명에서 2020년 20만여 명으로, 절반 이하로 감소했다. 반면 기능성 소화불량 환자는 늘고 있다.

내시경·혈액 등 각종 검사에서 이상이 없으면서 명치 부위 불편감, 식후 조기포만감, 또는 상복부 통증과 속쓰림 등이 최소 6개월 전에 발생해서 지난 3개월 동안 일주일에 최소 3일 발생한 경우를 기능성 소화기 질환이라고 칭한다. 이 병이 아직 일반 의사들에게 인식이 덜 됐음에도 한 해 환자가 70만 명대다. 전 세계 33국 7만3076명을 대상으로 유병률을 조사한 결과, 한국인 열 명 중 넷(39%)에서 ‘기능성 소화기질환’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소화기 질환이 이제 염증에서 운동 기능 장애로 옮겨가고 있는 것이다.

◇신경성이 아니라, 장-뇌 상호작용 장애

최신 연구들에 따르면, 기능성 소화불량은 뇌와 소화기를 연결하는 신경망 장(腸)-뇌(腦) 상호작용 장애로 간주된다. 기능성 소화기 질환 절반은 처음에 심리적 스트레스로 시작되어 나중에 위장 증상이 나타난다. 한편 다른 절반은 장 기능 장애가 먼저 발생하고 심리적 스트레스가 나중에 발생한다. 단순히 뇌에서 스트레스 신호가 장으로 내려와서 질환이 생기는 것이 아니고, 장과 뇌는 서로 영향을 준다는 것이 밝혀졌다.

장내의 미세한 염증, 면역반응, 장투과성 변화 등으로 인한 신호가 뇌에 전달이 되어 영향을 주기에 장-뇌 상호작용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다. 여기에는 장내 미생물 역할도 강조되어, 현재 연구가 이뤄지고 있다. 국제 소화기학계에서는 기능성 소화기 질환을 더 이상 정신 질환 일부로 보지 않는다. 장-뇌 상호작용 이상에 의해 일어난 병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인다.

치료는 앞선 환자 사례처럼 환자 증상 정도를 파악하여 생활 습관 개선과 식이 요법을 실시한다. 최근에는 장 기능 조절을 통해 변비, 설사, 소화불량 증상을 더 쉽게 개선할 수 있는 약들이 개발됐다. 장 점막 미세 염증에 대해서는 항생제를 투여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통증이나 불편감이 심할 경우에는 장의 감각과민성, 중추신경계 처리 기능 이상을 조절할 목적으로 신경조절제를 쓴다. 이제 소화기 건강을 위해 염증을 줄이는 것에서 나아가 운동 기능을 다스리는 쪽으로 진화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