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세 남자가 오른쪽 아랫배 통증을 호소하며 응급실로 왔다. 평소 변비가 있었고 고약한 방귀가 잦았다. 고혈압이 있어 혈압약을 복용 중이다. 응급실 의사가 환자의 오른쪽 아랫배를 눌러보니 아파했다. 전형적인 급성충수염(흔히 맹장염이라함) 증세였다. 이를 확인코자 CT를 찍었다. 그러나 결과는 게실염이었다. 대장 벽 일부가 꽈리처럼 부풀어 오른 게실에 염증이 생긴 것이다. 환자는 수술 대신 항생제를 투여받고 호전되었다.
◇맹장염 지고 게실염 뜬다
갑자기 배가 아프고 토하면 의사건 환자건 맹장염을 먼저 떠올린다. 하지만 이제는 게실염을 떠올려야 할 상황이 됐다. 급성충수염 환자는 2010년 13만8000명에서 2020년에는 9만7000명으로 줄었다. 식품 위생이 좋아지고 세균 감염이 줄어든 덕으로 본다. 반면 게실염은 같은 기간 3만2000명에서 5만9000명으로 두 배 가까이로 늘었다. 이 환자들의 대부분은 중·장년층으로, 여성은 70~80대에 많다. 나이 들어 복통이 심하면 게실염부터 의심해야 한다. 청소년이나 젊은 층에서는 여전히 맹장염이 많다.
게실염은 인구가 고령화되면서 크게 늘고 있다. 게실은 장내 압력을 견디는 장벽에 힘이 빠지고 얇아져서 대장 벽이 꽈리 모양으로 부풀어 올라 생긴다. 고령자에게 변비가 늘고, 기름진 음식을 먹으면서 장내 가스 생성이 많아졌다. 장내 압력이 높아지면서 게실이 늘고, 거기에 염증이 생기는 것이다.
게실염은 조기에 발견하면 항생제 등 내과적 치료로 완치된다. 적절한 치료 시기를 놓치면 장에 구멍이 뚫리는 천공이나 심한 출혈이 생길 수 있다. 그때는 외과 수술이 필요하니, 얕봐서는 안 된다. 진단은 대장 내시경이나 복부 CT를 찍어 할 수 있다.
◇장내 세균 변화로 면역 반응 질환 늘어
21세 남자가 6개월간 지속되는 복통과 대변에 피가 섞여 나오는 증상으로 소화기내과를 찾았다. 환자는 평소 피자, 콜라, 라면 등 인스턴트식품과 서구식 식생활을 즐겼다. 70kg이던 몸무게가 최근 63kg이 됐다. 석 달 동안 자기 체중의 10%가 감소한 것이다.
대장 내시경을 시행한 결과, 대장 점막이 자갈밭처럼 부어올라 있었다. 조직 검사를 했더니 심한 염증이 보였다. 환자는 결국 크론병으로 진단됐다. 최근 이 같은 크론병이 늘고 있다. 2010년 1만2000명이던 환자 수가 2020년에는 2만5000명으로 늘었다. 제대로 진단받지 못하고 있는 상황을 감안하면 3만명이 넘을 것으로 추산된다.
크론병은 1932년에 크론이라는 의사가 처음 진단하고 발표한 질환이다. 만성 염증성 장 질환이다. 대장과 소장이 연결되는 부위에 흔하고 흡연자에게 많다. 발생 원인은 아직 정확히 모르나 장내 세균에 대한 몸의 과도한 면역반응 때문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전통적인 한국식 식사를 하던 시기에는 상당히 드문 질환이었다. 그러다 정제 식품, 패스트푸드, 설탕 등 단순당이 많이 가미된 음식의 소비가 늘면서 크론병이 10~30대 젊은 연령에서 크게 늘고 있는 것이다.
크론병과 유사한 질환으로 궤양성 대장염이 있다. 염증이 대장 점막 또는 점막 바로 밑에 국한된 원인 불명의 만성 염증성 장 질환이다. 이 병도 1980년대 이전까지는 매우 드물었다. 그러다 점차 늘면서 2010년 2만8000명이던 것이 2020년에는 4만8000명으로 10년 새 두 배 가까이로 늘었다. 이 또한 서구식 식사, 장내 세균과 면역 체계의 변화 등과 관련 있다고 본다.
먹는 게 바뀌고 고령화되면서 하부 소화기 질병 지도가 바뀌고 있다. 게실염을 줄이고, 난치성 크론병 또는 궤양성 대장염을 줄이려면 거친 옛날 식사로 돌아가야 한다. 변비와 장내 압력을 줄여주는 섬유질이 풍부한 잡곡밥, 나물 반찬, 해조류 등을 즐기고, 붉은 육류보다는 생선 등 해산물 섭취가 도움 된다. 특히 생선에 들어있는 오메가3 지방산이 장 점막 염증을 줄여주는 역할을 한다. 적절한 운동과 충분한 수면, 스트레스 관리 등이 예방과 염증을 줄이는 데 좋다.
☞게실염
게실(憩室)은 대장 벽이 약해지면서 동그랗게 밖으로 튀어나온 상태를 말한다. 꽈리 주머니 모양과 비슷하고, 크기는 쌀알에서 콩 정도까지 다양하다. 그곳에 오염 물질이 쌓여 염증을 일으킨 게 게실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