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트리아 화가 구스타프 클림트가 1908년 선보인 그림 키스(kiss). 꽃 침대 위의 추상적인 금박 문양 속에서 서로를 껴안고 있는 연인을 묘사한 이 그림은 사랑을 미학적으로 절묘하게 표현했기에 한국인에게도 인기가 많은 예술품이다. 그런데 이 작품 곳곳에 수정란, 배반포 등 인간 배아 발생학 세포 표본들이 배치돼 있음을 한국인 해부학자가 잡아냈다.
대한해부학회 유임주(고려대의대) 이사장 연구팀은 ‘구스타프 클림트의 키스, 예술과 인간 초기 발달 과정의 생물학’이라는 주제의 논문을 최근 미국의사협회지에 발표했다. 미의사협회지는 의학 분야 최고 권위로 평가 받는 국제 학술지다.
유 교수는 키스 그림 곳곳에 담겨진 정자, 난자, 수정란, 배아 세포 등을 찾아내 그 의미와 생물학적 해석을 달았다. 그는 “클림트가 화가이지만 당대의 의사나 생물학자들과도 깊은 교분을 쌓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는데, 그림을 보니 인간 발달 과정의 세포들이 눈에 들어와 어떤 과정을 거쳐 그림에 들어갔는지를 분석했다”고 말했다.
키스 그림은 예전부터 그림 속 남자의 망토에 있는 정자 같은 이미지와 여자의 드레스에 있는 난형의 요소가 대조되면서 생물학적 연인 관계를 묘사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연구팀은 그림에 배치된 세포 형상들이 당대에 출판된 발생학 서적들에 등장한 세포 삽화들과 유사하다는 점을 발견했다. 클림트는 그런 세포 삽화들을 보고 거의 비슷하게 세포 모양을 형상화하여 그림 중간중간에 넣은 것이다. 여기에는 정자의 껍질 모양, 정자와 난자가 만나서 수정이 되는 순간 모습, 수정할 당시 정자가 난자로 들어가는 형상, 수정란이 세포 분열하여 8세포로 자란 배반포 모습, 32세포로 할구된 초기 배아 형태 등이 들어갔다.
유 교수는 “클림트가 세포 형태를 재현하려고 했다기보다는 그런 세포 발달 과정에서 생명에 대한 영감을 받았을 것”이라며 “그러기에 그의 작품에는 임신, 출생, 청소년기, 노년기, 죽음 등 전 생애 주기가 등장한다”고 말했다.
“클림트는 사랑의 황홀경에 빠진 연인을 보여주면서 정자 난자 수정과 초기 인간 발달의 경이로움을 그들이 덮고 있는 옷에 그려 넣어 생명 탄생의 고귀함을 표현하려 했다”고 유 교수는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