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전 회사를 퇴직하고 제2의 인생을 즐기고 있는 정모씨(68)는 ‘취미 부자’다. 운동은 기본이고, 수시로 등산 겸 사진 촬영을 다닌다. 인생 후반을 보람차게 지내는 그가 얼마 전부터 귀에서 바람 소리 같기도 하고, 매미 소리 같은 이명이 들리기 시작했다.
하루에 몇 번씩 잠깐씩 들리던 것이 어느 새 시도 때도 없이 윙윙거려서 친구들과 모이면 대화를 놓치기 일쑤였다. 좋아지겠거니 해도 몇 달 새 차도가 없어 이비인후과를 찾았다. 그랬더니 이명 문제가 아니라, 난청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그것도 노화성 난청이 한참 진행됐다고 했다.
◇인구 고령화로 난청 환자 급증
많은 이가 잘 모르는 게, 이명 횟수와 지속 시간이 길어지고, 소리도 커질 때, 가장 먼저 생각해야 하는 것이 청력 소실 즉 난청이다. 이명은 다양한 귀 질환에 의해서 생길 수 있지만, 가장 흔한 원인이 난청이기 때문이다. 이명 때문에 난청이 생기는 것이 아니라, 난청이 진행되면 이명이 동반된다. 이명이 난청의 첫 신호인 경우가 많다.
난청의 가장 흔하고 확실한 증상은 소리가 잘 안 들리는 것이지만 아주 서서히 여러 해에 걸쳐 진행되기 때문에 이를 조기에 자각하기 어렵다. 노화성 난청은 우리가 평소에 듣는 주파수 영역대가 아닌, 고주파의 소리부터 잘 안 들리기 시작한다. 이 때문에, 이명은 있지만 난청은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많은 경우, 이명 때문에 병원을 찾았다가 청력 검사 후 난청 진단을 받는다.
지난 2010년 청력 소실 환자는 41만3000여 명이었으나, 2020년에는 67만6000여 명이 됐다. 그 사이 64% 늘었다. 연령이 높아질수록 난청 환자 증가율이 높아진다. 50에서는 1.5배 증가했지만 70대는 2배, 80대 이상은 3.4배나 뛰었다. 난청 발생률이 높아졌다기보다는 예전과 달리 적극적으로 진단받고 치료받으려 한다는 의미다. 인구 고령화에 이들의 왕성한 사회 활동을 반영한 수치다.
◇보청기는 귀에 쓰는 안경
눈이 나쁘면 안경을 쓰듯, 난청엔 보청기가 가장 현명한 선택이다. 노인 느낌 난다는 생각을 이제 버려야 한다. 노화성 난청은 노화로 청신경이 손상돼서 발생하는 것이기 때문에 현대 의학으로 되돌릴 방법이 없다. 보청기로 소리를 듣고, 큰 어려움 없이 대화할 수 있는 상황을 갖추면 된다. 난청을 오랫동안 놔두면 가족이나 친구와 소통이 어려워지고 사회적으로 고립된다. 이로 인해 우울감이 깊어지고, 치매 위험도 커진다.
요즘 보청기는 크기가 점점 작아지면서 이어폰을 닮아간다. 과거에는 보청기가 귀로 들어오는 모든 소리를 동일하게 증폭시켰기 때문에 자연 소리와 차이가 커서 난청인이 적응하기 쉽지 않았다. 하지만 최근에는 음역대별로 필요한 만큼 섬세하게 소리를 증폭시키는 것이 가능해져, 난청 증상에 꼭 맞는 보청기를 쓸 수 있다.
보청기를 잘 사용하려면 먼저 난청을 정확하게 진단해야 한다. 어느 음역대가 잘 안 들리는지, 또 음역대별로 얼마나 안 들리는지 순음 청력 검사로 파악한다. 이어서 일상적인 단어를 알아듣는 정도를 파악하는 어음 청력 검사를 한다. 이 두 검사 결과를 바탕으로 환자가 느끼는 주관적인 불편함 정도와 직업, 생활 환경 등을 고려해 보청기를 제작하면 좋다.
양측 순음 청력 역치가 60데시벨(dB HL) 이상일 경우, 청각 장애로 진단 가능하며, 이 경우 장애 보장구 지원 사업 일환으로 보청기 구매를 지원한다. 종종 이 수준으로 악화될 때까지 기다리는 경우가 많은데, 이를 보청기 사용 기준으로 삼아서는 곤란하다. 그 사이 어음 청력이 나빠질 수 있다. 보청기로 순음 청력을 보상하면 어음 청력이 줄어드는 것을 줄일 수 있다.
만약 어음 청력이 악화된 상태에서 보청기를 하면 ‘왕왕거리기만 하고 알아듣기 어렵다’는 반응이 나올 수 있다. 순음 청력 역치가 그에 못 미치더라도 어음 청력이 좋을 때 보청기를 시작하는 것이 좋다. 실제로 어음 분별력이 70% 이상이면, 보청기 만족도도 높으나 50% 미만이면 보청기 사용으로 인한 이득이 떨어진다. 요즘 ‘칠십 청년’이라고 한다. 인생 후반 보람찬 날들을 위해 청력 소실 개선에 적극적으로 임해야 한다.
이환서 이비인후과 전문의(하나이비인후과병원), 김철중 의학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