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세 여성 남모씨는 초등학교 교사였다. 정년 퇴임 후 동호회 활동, 외국어 공부 등을 하며 바쁘게 지냈다. 그런데 3년쯤 지나자 밤에 잠이 안 오기 시작했다. 나중에는 해 뜰 때가 되어서 잠자게 되어 일상생활이 엉망이 되었다. 수면클리닉에서 진단을 받아보니, 정년 퇴임 후 자유를 만끽한 것이 문제였음을 깨달았다. 늦은 시간까지 모임을 하느라 잠자는 시간이 불규칙해졌고, 이에 따라 아침에 일어나는 시간도 매일 달랐다.
수면 습관을 교정하는 인지행동치료를 통해 불규칙한 수면 스케줄을 일정하게 하자, 불면증이 점차 호전됐다. 요즘은 전날 무엇을 하든, 주말이나 휴일이든, 아침 6시에 일어난다. 그러자 밤 11시 정도가 되면 자연스레 졸음이 와서 잠에 잘 빠져든다.
◇불면증, 약 대신 인지행동치료
수면장애 환자가 크게 늘고 있다. 인구 고령화와 밤에도 뭔가를 하는 일상 탓이다. 수면장애 환자는 2010년 49만명이던 것이, 2020년에는 104만명으로 늘었다(건강보험심사평가원 통계). 10년 사이 두 배가 됐다.
잠의 시작 혹은 유지에 어려움이 있거나, 다시 잠들 수 없는 새벽 각성이 주 3일 이상 3개월 이상 지속되면 불면증으로 진단할 수 있다. 그 정도면 일상이 힘들고, 학업, 직업 등에 기능 손실이 일어난다. 불면증은 우울증이나 치매와 같은 정신질환 발병뿐 아니라, 당뇨병이나 심혈관계질환 유발 및 악화 요인이 되니 결코 가볍게 여길 수 없다.
불면증은 잠을 유지하는 데 취약한 기질이나 성격이 원인을 제공하여 오거나 스트레스가 급성 불면 증상을 일으킬 수 있다. 하지만 불면증이 장기간 지속되는 원인은 역설적으로 불면증 자체에 대한 스트레스 때문이라는 것이 정설이다. “오늘은 잘 수 있을까?” “오늘 못 자면 내일 발표를 망칠 텐데” 등의 불안과 걱정, 그리고 잠이 안 오는데도 침대에서 계속 뒤척이는 식의 수면에 방해되는 행동 반복에 있다는 설명이다.
이런 배경 속에 수면에 대한 행동과 인식을 교정하는 인지행동치료가 불면증 주요 치료 수단으로 떠올랐다. 수면 스케줄을 짜고, 때로는 수면 시간을 제한하고, 잠에 들게 하는 수면 위생을 훈련시키는 방식이다. 이런 치료가 수면제를 복용하는 경우와 비교해도 효과가 더 우수하거나 비슷하다.
◇디지털 앱으로 수면 관리
불면증 인지행동치료는 정신건강의학과 의사가 직접 처방하고 시행해야 하기 때문에 널리 파급되지 못했다. 최근 스마트폰이 널리 쓰이면서 모바일 앱을 이용한 불면증 인지행동치료가 활발하다. 약을 처방받듯, 모바일 앱을 통해 인지행동치료를 처방받는 세상이 온 것이다. 미국 식품의약국은 2020년 불면증 디지털 치료제 솜리스트(Somryst) 처방 및 사용을 승인했다. 치료 효과를 인정받았다는 의미다. 영국은 국가건강보험제도를 통해 불면증 디지털 치료제 사용 비용을 지원한다. 다만 원격 진료 의사의 처방이 필요하다.
의사 처방 없이 수면 건강 증진 목적의 모바일 앱은 다양하게 나와 있다. 숲속 바람소리, 시냇물 흘러가는 소리 등 백색 소음을 통해 수면을 유도하거나, 명상이나 간단한 스트레칭, 스트레스 대처 방안 등을 제공한다. 지난해 미국에서 가장 인기 있었던 앱으로는 캄(Calm), 슬립사이클(Sleep cycle), 슬립스코어(SleepScore), 헤드스페이스(Headspace), 필로(Pillow) 등이 있다. 대다수가 한국어 지원 서비스를 한다.
몇몇 앱은 스마트폰에 내장된 센서를 이용하여 수면을 분석하고 조언을 제공한다. 작년 한 해 동안 한국의 모바일 앱 시장에서 좋은 평판을 받았던 수면 건강 앱으로는 슬립 모니터(Sleep Monitor), 슬립 사이클(Sleep cycle), 베터 슬립(BetterSleep), 슬립 티오리(Sleep Theory) 등이 있다.
올해는 우리나라에서 첫 번째 디지털 치료제가 등장할 전망이다. 에임메드와 웰트가 개발 중인 디지털 치료제가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임상시험 계획을 승인받아 수행 중에 있다. 한국형 인지행동 치료제가 우리나라 환자에게 쓰인다는 의미를 갖는다. 일상의 디지털로 잠을 관리하는 시대가 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