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망 원인 1위 암(癌). 한 해 약 8만여 명이 암으로 세상을 떠난다. 전체 사망자 열 중 셋이 암 때문이다. 5년 생존율이 70%에 이른다지만, 암은 여전히 공포의 은유를 갖고 있다. 암에 걸렸다고 자신의 삶을 자책하기도 하지만, 많은 환자가 “왜 나란 말인가?”며 세상을 원망하기도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최근 유전자와 암 줄기세포 연구에 따르면, 암 발생의 3분의 2는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무작위 돌연변이에 의한 불운(不運)의 암이라는 것이다.
◇암 발생은 교통사고와 같아
지난 2015년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에 실린 암 발생 원인 분석 논문은 의학계에 큰 관심을 끌었다. 대부분의 암 발생은 그 근원이 되는 줄기세포 증식과 분열 회수에 따라 이어진 불운의 결과라는 것이다. 몸속 줄기세포가 많이 증식 분열되는 과정에서 돌연변이가 나타날 확률도 커져서 암이 생긴다는 것이다.
사이언스에 논문을 발표한 미국 존스홉킨스 의대 연구진은 설명문을 내면서, 암 발생을 자동차 사고에 비유했다. 목적지에 관계없이 자동차 여행이 길어지면 교통사고 위험은 커진다. 목적지까지 가는 길의 도로 상황은 암 발생 환경적 요인으로 볼 수 있다. 도로 상태가 나쁘면, 사고 위험도 커진다. 브레이크 불량, 마모된 타이어 등 자동차에 결함이 많을수록 사고 위험은 증가한다. 이러한 기계적 문제는 부모에게 물려받은 유전적 요인에 해당한다.
여행 기간은 암 발생 근원인 줄기세포 분열 증식에서 나타나는 무작위 돌연변이에 비유된다. 즉 주행거리가 길수록 교통사고 위험이 커진다는 얘기다. 도로 상황이 좋지 않고 파손된 차량을 운전하는 경우에도 여행이 짧으면 교통사고 위험은 적다. 따라서 줄기세포 증식과 분열이 많아서 생기는 3분의 2 암은 긴 여행에 기인하는 것으로, 일생 동안 몸속 줄기세포 분열 횟수는 자신이 결정하는 것이 아니기에 대다수 암은 복불복이라고 볼 수 있다는 얘기다. 연구팀은 여기에 해당하는 암으로 췌장암, 소장암, 골육종, 악성 뇌종양, 백혈병, 난소암, 비흡연자 폐암, 담낭암, 두경부암, 피부 흑색종 등을 꼽았다.
◇나쁜 생활습관은 사고 촉발제
암 연구자들은 한 가지 요인으로 암이 생기지 않는다고 말한다. 존스홉킨스대 ‘불운 암 이론’ 연구진도 자동차 사고의 3분의 2가 주행 시간만으로 발생한다고 볼 수 없는 것처럼 암은 여러 요인 조합으로 발생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교통사고에 도로 상태, 자동차 결함 등 여러 요인의 조합이 관여하듯이 사람의 암 발생도 마찬가지다. 체내 줄기세포 증식과 분열 횟수는 어찌 할 수 없으나, 나쁜 생활 습관은 나쁜 도로 상태가 되어 암 발생 사고를 촉발하는 요인이 된다. 나쁜 생활 습관 목록과 노출 기간에 따라 암 발생 사고 위험은 더 커진다.
자동차에 안전벨트, 에어백 등의 안전 장치가 잘 갖춰 있다면, 사고가 나더라도 희생을 최소화할 수 있듯이 암 발생 위험을 미리 예측하고 조기에 발견하여 치료한다면 생존율이 크게 높아진다. 교통사고 희생을 줄이는 첫째가 안전벨트이듯, 암 발생 사고를 줄이는 첫째는 금연이다.
존스홉킨스 연구팀은 이 같은 방식으로 암 발생 사고를 크게 줄일 수 있는 암으로 흡연과 관련된 폐암, 지방질 고기 과다 섭취와 관련된 대장암, 헬리코박터 감염과 짜고 삭힌 음식 과다 섭취와 관련된 위암 등을 꼽았다. 이 밖에 간암, 피부 기저 세포암, 갑상샘암, 자궁경부암 등을 바이러스나 발암 환경 노출로 인해 발생 가능성이 큰 암으로 평가됐다.
유방암과 전립선암은 줄기세포 분열 기간이 파악 안 되어 어느 쪽에도 분류되지 않았다. 하지만 유방암은 출산이 적을수록, 수유를 안 할수록 발생 위험은 커진다. 전립선암은 지방질 고기 과다 섭취하거나 비만일수록 발생 위험이 크다.
김병수 고려대병원 종양혈액내과 교수는 “불운 암이라고 해도 바이러스 감염이나 자외선 노출 등 아직 밝혀지지 않은 것들로 발생 위험이 높아진다고 볼 여지가 있다”며 “정기적인 운동, 금연, 금주, 적정 체중 유지 등 가능한 한 건강한 생활 습관을 실천하고, 조기 검진에 나서면 암 발생 사고 위험을 크게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