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금도 나는 10년전 그날 밤을 또렷이 기억하고 있다. 내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 공황발작을 겪은 날이기 때문이다. 인생에서 때로 해결의 실마리는 험상궂은 모습으로 찾아온다.

당시 나는 50대 중반에 접어들었고 직장 생활을 그만 둔 상태였다. 오랜만에 공직에 있을 때 동료들과 만나 식사를 나누고 2차에서 거나하게 술도 마셨다. 여러 이유로 마음이 힘든 상태이긴 했지만 그날은 즐거웠다.

새벽 1시 넘어 집으로 돌아와 자리에 누었다. 불면증으로 고생하던 시기였다. 그날 밤도 비몽사몽을 헤매고 있는 데 갑자기 가위에 눌린 듯 숨이 콱 막히면서 의식이 깨어났다. 도저히 숨을 쉬기가 어려운 호흡곤란 증상이 찾아 왔다. 괴롭고 힘들고 절망에 가득찬 감정이 엄습했다.

갑자기 절벽에서 뛰어내리듯 마음이 덜컥 내려앉았다. 뒤이어 심장이 맹렬히 뛰기 시작했다. ‘쿵쾅쿵쾅’하는 소리가 내 귀에 들렸다. 반사적으로 손목의 맥을 짚어보니 100미터 달리기를 할 때처럼 빨랐다. 얼핏 벽시계를 보니 새벽 5시가 조금 넘은 시각.

이것을 오한이라고 해야 하나. 몸이 부들부들 떨리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이가 딱딱 부딪치고 이불이 들썩거릴 정도로 흔들렸다. 전신에서 땀이 비오듯 쏟아졌다. 몸과 마음이 완전히 무너져 내리는 느낌. 이러다가 미쳐 버리거나 죽을 것 같았다. 극도의 공포감이 엄습했다.

그렇게 한 시간쯤 지났을까. 떨리는 몸을 진정시키고 억지로 숨을 쉬면서 다시 시계를 보니 불과 10분 밖에 지나지 않은 시각이었다.

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집 사람은 친정에 갔고 아들은 회사에서 야근 중이었다. 지옥 같은 시간을 홀로 견디면서 나는 상황이 더 급박해지면 119에 신고하겠다고 생각했다.

얼마쯤 시간이 흘렀을까. 격렬했던 몸의 떨림과 발작적 흥분 상태가 잦아들기 시작했다. 마음은 여전히 절망스러웠지만, 신체는 차츰 안정을 찾고 있었다.

시계를 다시 보니 총 30분도 되지 않았다. 그러나 내게는 한나절을 보낸 듯한 긴 시간이었다. 엉금엉금 거실로 기어 나와 소파에 드러누웠다. 옴짝달싹 하고 싶지 않았다. 손가락을 움직일 기력조차 없었다. 옷은 다 젖어 있었다. 5월초 시원한 아침 바람이 몸을 스쳤다.

난데없는 공황발작은 내면에서 나오는 격렬한 반응이었다. 최악의 상태로 치닫는 심신을 이렇게 놔두면 안 되니 돌보라는 신호였다. 그날 나는 비로소 내 마음이 건강하지 못한 상태임을 알게 됐으며, 본격적인 치료를 받아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셔터스톡

# 도대체 왜 이럴까.

물론 요즘 내 컨디션이 정상은 아니다. 의욕적으로 잡아두었던 계획을 포기하고 정리하면서 몸과 마음이 위축되고 형편이 안 좋아졌다. 스트레스가 많았다. 그래도 이렇게까지 아플 일은 아니었다.

어젯밤 상황을 돌이켜 보았다. 옛 동료들을 만나 2차 맥주집에서 즐겁게 잔을 부딪쳐가며 맥주를 들이켰다.

그런데 문제는 그 다음에 일어났다. 내 옆자리에 앉아 있던 사람이 갑자기 건너편으로 자리를 옮겨갔다. 그 사람은 내가 직장을 그만 둔 뒤 입사한 터라 잘 아는 사이도 아니었고, 만난 것도 그날이 처음이었다. 그는 그저 자리를 옮긴 것뿐이었다. 그러나 그 순간 나는 엄청난 모멸감을 느꼈다.

‘아, 저 친구가 나를 무시하는구나. 내 옆자리에 앉기 싫어 자리를 옮겼구나….’

그 생각은 곧 합석한 다른 동료들에게로 이어졌다.

‘이 사람들도 나를 그렇게 생각하고 있겠지. 겉으로 내색하지 않아도 속으로는 나를 형편없는 놈으로 볼거야.’

마음 한구석에 시커먼 좌절감이 쿵 내려앉았다. 그때부터 심란한 마음을 정리하지 못한 나는 집으로 돌아와 그 상황을 머릿속에 반복해서 떠올렸다. 그러다가 결국 발작을 일으킨 것이다.

자격지심은 때로 무섭다. 인생에서 계획을 세우다가 접을 수도 있고, 잘 안될 수도 있는데 당시 나는 마치 대단한 실수나 실패를 한 양 심하게 자책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자책감 때문에 평범한 인간관계나 상황을 엉뚱하게 해석하고 재가공해 스스로를 더욱 괴롭히고 있었다.

시체처럼 누워 있다가 시계를 보니 어느덧 정오를 가리키고 있었다. 전혀 입맛이 없었다. 씻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그래도 주섬주섬 일어나 욕실로 가 몸무게를 재니 평소보다 무려 4㎏가 빠졌다. 30년전 청년 시절 몸무게로 돌아간 것이었다.

불과 며칠새 4㎏이나 빠졌다는 사실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심장과 맥박이 맹렬하게 뛰며 땀을 비 오듯 흘린 것이, 마치 밤새 마라톤을 뛴 것과 같은 열량 소비를 가져온 다는 사실은 나중에 알게 됐다.

그토록 고대하던 다이어트가 하룻밤 새 일어났지만 도리어 겁이 덜컥 났다. 열량을 늘려야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냉장고에서 아이스크림을 꺼내 숟가락으로 푹푹 퍼먹었다. 도넛도 먹었다. 평소 잘 먹지 않던 단 음식들을 마치 어린 시절로 돌아간 듯 우악스럽게 먹어댔다. 또 땀으로 내보낸 수분을 보충하기 위해 물을 벌컥벌컥 마셨다. 다시 몸무게를 재니 금방 2㎏가 늘었다. 마음이 좀 안정됐다.

# 이날 오후 나는 아내와 함께 동네 병원을 찾아갔다.

나를 진찰한 의사는 신체적보다 정신적인데 문제가 있는 듯하니 종합병원으로 가보라고 권했다. 그러면서 지나가는 말로 한마디 했다.

“일종의 공황장애(panic disorder) 증세 같네요.”

공황장애란 말은 개그맨 이경규가 TV에서 자신이 공황장애를 앓는다고 밝혀서 알게 됐다. 그러나 그때는 남의 일로 여겼다. 인기 연예인들이 겪는 스트레스를 특유의 과장법과 호들갑을 섞어 말하는 것인 줄 알았다. 그런데 그게 나를 찾아온 것이란 말인가.

집에 돌아와 인터넷으로 ‘공황장애’를 검색해보니 이렇게 나왔다.

‘특별한 이유 없이 예상치 못하게 나타나는 극단적인 불안 증상으로 공황발작(panic attack)이 주요한 특징인 질환이다. 죽음에 이를 것 같은 극도의 공포심이 느껴지면서 심장이 터지도록 빨리 뛰거나 가슴이 답답하고 호흡이 곤란해지며 땀이 나는 등의 신체증상 등이 나타난다.’

바로 내가 겪은 그대로였다. 일종의 공황발작이 일어난 것이며 이것이 반복되면 공황장애, 우울증 등 정신병으로 발전하게 된다는 것이다. 나는 서둘러 종합병원으로 가 정밀진찰을 받아야겠다고 생각했다.

# 10년이 지난 지금 돌이켜보면, 당시 난데없는 공황발작은 내면에서 나오는 격렬한 반응이었다. 최악의 상태로 치닫는 심신을 이렇게 놔두면 안 되니 돌보라는 신호였다. 정상적이지 않거나 위급한 상황이 도래하면 사람의 심신은 끊임없이 신호를 보낸다. 그러나 이를 무시하거나 외면하면 더 큰 질환이나 불행으로 이어진다.

어찌보면 질병은 우리 생명을 보호하고 몸을 정상화하려는 자연스러운 신호요, 회복의 과정으로도 볼 수 있다. 20세기 뛰어난 정신의학자 칼 구스타프 융(1875~1961)은 “질병은 자연이 인간을 치유하기 위해 기울이는 노력”이라고 했다.

그날 나는 비로소 내 마음이 건강하지 못한 상태임을 알게 됐으며, 마음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더 이상 회피하지 말고 정면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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