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코메티가 46세에 만든 작품 걷는 사람. 뼈대만 남은 몸으로 걸어가는 모습이 나약하지만, 어딘가를 향해 나아가는 단단한 움직임이 느껴진다. /미국 코넬대 뮤지엄 소장

사람을 앙상한 뼈대만 있는 형태로 표현한 알베르토 자코메티(1901~1966년). 그는 스위스의 조각가이자 화가였다. 철사와 같이 가늘고 긴 조상(彫像)을 제작해 독자적인 양식을 일군 것으로 유명하다. 조각상이 매우 특이해서 한번 보면 잊을 수 없다.

자코메티는 “인물을 어떻게 보이는 대로만 표현할 수 있겠는가?” 반문하며 현실에는 있을 수 없는 형태를 제시했다. 그는 아버지, 여동생, 동행 여행자 등 많은 죽음을 목격하며 인간은 죽음을 어떻게 해볼 수 없다는 무력감을 느꼈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트라우마가 인간을 가늘고 앙상한 형태로 표현하게 했다는 해석이다. 좀전까지 살아 있던 몸이 한순간에 생명이 없는 물체로 변하는 것에 공허함을 느꼈다. 그의 조각에서 얇음은 사라질 존재를 의미한다.

하지만 자코메티의 작품에 허망함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그가 46세에 만든 <걷는 사람>을 보자. 남자인지 여자인지 구분이 되지 않는 젓가락 형태의 사람이 놓여 있다. 몸의 형태는 마치 석양에 비친 길게 늘어난 그림자로 보인다. 뼈대만 남은 몸으로 어딘가를 향해 걷고 있다. 체구에 비해 보폭이 커서 역동적으로 느껴지고, 단단한 움직임이 감지된다. 그게 자코메티가 말하고 싶은 인간의 형태라는 분석이다. <걷는 사람>은 죽음 앞에 나약한 존재이지만, 삶의 희망을 향해 걸어간다는 메시지를 던진다.

나이 들면 살이 빠지고 몸은 축소된다. 신체 노화 징표다. 이것이 허약함만을 의미하는 것일까. 늙은 세포와 젊은 세포를 놓고 똑같이 자외선을 쪼였더니, 예상 밖으로 젊은 세포는 죽고, 늙은 세포가 살아남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노화는 나약함이 아니라 외부 스트레스를 견디며 살아갈 수 있도록 생존에 최적화된 형태라고 말한다. 자코메티는 63세에 위암에 걸려 수술을 받았다. 힘든 투병 생활에도 수많은 조각과 판화를 완성했다. 누구나 삶은 죽음으로 끝난다. 살아가는 동안 행복과 희망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 걷는 사람이 되자고 자코메티가 말하지 않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