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환기(1913~1974년)는 한국 미술품 경매 사상 처음으로 100억원이 넘는 작품가 신기록을 쓰고 있는 서양화가다. 그는 1936년 일본 니혼 대학 미술학부를 마치고 도쿄에서 개인전을 열었을 정도로 식민지 젊은 화가의 기상은 대단했다. 해방 후 1956년 프랑스로 건너가 파리, 니스, 브뤼셀 등 각지를 돌며 작품을 선보였다. K미술 국제화의 원조다. 서구 모더니즘을 한국화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사실적인 묘사보다는 마음을 진정시키는 색채로 점과 선, 면으로 조형미를 완성했다.
김환기는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는 싯구를 남긴 시인 김광섭(1905~1977년)을 존경하고 따랐다. 문학을 좋아하고 서정성이 넘쳤기에 시인들과 잘 어울렸다. 1966년 뉴욕에 있던 김환기에게 김광섭 시인의 부고가 잘못 전해졌고, 김환기는 애통한 마음으로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냐랴’<사진>를 그렸다. 밤하늘의 수많은 별을 김광섭에게 헌정하듯 화폭에 푸른 점을 찍어 나갔다.
둘은 공교롭게도 뇌졸중으로 세상을 떠났다. 흡연은 뇌졸중 주범으로 꼽힌다. 담배가 예술 창작의 펜과 붓으로 쓰였고, 유해성에 대한 인식도 없던 시절이었다. 대개의 뇌졸중은 살짝 맛보기를 보여 준다. 이를 일과성 뇌허혈증이라고 한다. 짧게는 몇 분, 길게는 수 시간 동안 어지럽거나, 두통이 오거나, 의식이 흐려진다. 어느 한쪽으로 입이 돌아가거나 한쪽 팔다리 힘이 빠지는 등 뇌졸중 같은 증상이 일시적으로 왔다가 사라진다. 이때 피곤해서 그랬나 보다며 흘려 보내지 말고, 병원에 가서 정밀 진단을 받아야 한다. 그러면 좋아하는 사람을 언제든 다시 만날 수 있다. 인생은 타이밍이다. 새삼 이른 나이에 세상 떠난 김환기가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