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현미(85)는 별세 전날인 3일 KTX를 타고 대구에 가서 노래 교실 공연을 했다. 다음 날 지인들과 점심 약속을 할 정도로 건강에 문제가 없었다. TV 프로그램에 나와 자신은 콜레스테롤 수치도 높지 않고, 앓고 있는 질병도 없다며 건강을 자신하기도 했다. 그러다 돌연히 세상을 떠났다. 노화로 신체 기능을 하나씩 잃으면서 죽음에 이르는 자연사 과정과는 다르다.
이렇게 건강한 고령자가 어느 날 갑자기 사망하게 된 이유는 뭘까. 사망 당일 아침 현미가 119에 구급 신고한 기록은 없다. 자택서 숨진 현미를 발견한 팬클럽 회장 김모씨는 “고인이 편안한 얼굴이었다”고 했다. 여러 정황상 현미는 수면 중에 발생한 갑작스러운 증세로 죽음을 맞았을 가능성이 크다. 편안한 얼굴 등을 볼 때 “고통 순간을 최소화하고 별세했다면 복(福) 아니냐”는 말도 일부에선 나온다.
성인 돌연사 통계에 따르면, 이렇게 건강한 고령자가 황망히 세상을 뜨는 가장 큰 원인은 숨어 있던 심혈관 질병의 폭발이다. 평소에 감지되지 않았던 관상동맥 협착이 있었고, 자다가 관상동맥 경련이 일어나 심근경색증을 일으켰을 가능성이 있다. 김영훈 고려대병원 순환기내과 교수는 “심근경색증으로 응급실에 실려오는 환자의 30~40%는 심근경색증 발생이 병을 인지하는 첫 증상”이라며 “관상동맥이 60~70% 정도만 막혀 있으면 달리기나 강도 높은 운동을 하지 않는 한 일상생활 하면서 숨이 차지 않고, 가슴 통증도 못 느끼고 지낸다”고 말했다. 급성 심근경색증은 혈압과 맥박이 불안정한 새벽과 아침 시간에 가장 많이 발생한다. 심근경색증이 발생하면 뒤따라 심장박동이 불규칙해지는 부정맥이 일어난다. 이때 숨이 가빠지면서 뒤척일 수 있으나, 혼자 수면 중이었기에 깨어나지 못한 것으로 추정된다. 심장이 부르르 떨리는 부정맥이 수분간 지속되면 심정지 상태로 이어질 수 있다.
숨어 있는 부정맥이 있다가 수면 중 강하게 발생했을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이런 경우 평소 공황장애와 같은 가슴 답답함 증세가 발생하기 때문에 사전 검진을 받게 된다. 편안한 얼굴을 보였고 외상이나 출혈이 없기에 낙상으로 인한 뇌손상 사망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발견되지 않은 뇌동맥류가 터지는 경우 극심한 두통이 오고 구토 증세를 보이기에 편안한 모습과는 맞지 않고, 자다 깨어나서 119 신고를 했을 것으로 보인다.
김영훈 교수는 “고령자는 활동량이 적어서 숨어 있는 심혈관 질환이 있어도 증세가 밖으로 나오지 않는 경우가 많다”며 “나이가 들면 증상이 미약해서 병이 있어도 가려지기 때문에 정기적인 심장 검진을 받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