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세 여성 문모씨는 최근 건강검진에서 유방암 진단을 받았다. 대학병원을 찾았고, 다행히 암 크기가 크지 않아서, 유방 일부분만 절제하는 수술을 받았다. 하지만 수술할 때 긁어낸 겨드랑이 림프절 한 개에서 암세포가 전이됐다는 결과가 나왔다. 이런 경우 항암 치료를 반드시 하는데, 집도의는 암 유전자 분석을 권했다. 전이 위험이 낮은 암종으로 예측되면 항암 치료를 하지 않아도 한 것과 동일하게 예후가 좋기 때문이다. 문씨는 유전자 분석 결과, 저위험군으로 판정돼 항암 치료를 받지 않았다.

한원식 서울대병원 유방외과 교수는 “유방암 항암 치료는 독성이 강해서 구역, 구토, 말초신경염, 패혈증, 구내염, 심장 독성 등을 일으키는데, 이처럼 예후 예측 유전자 검사를 하면, 초기 유방암 환자의 절반 이상이 항암 치료를 피할 수 있게 된다”고 말했다.

통상 3기 정도로 진행된 위암은 수술 후 누구나 항암 치료를 하는 것이 표준 치료법이다. 최근에는 암 수술 후 예후 및 항암제 효과 예측 유전자 진단 검사가 나와 쓰인다. 검사 개발자인 정재호 세브란스병원 위장관외과 교수는 “유전자 분석 검사가 과잉 또는 과소 치료의 가능성을 줄이고 개별 환자 상태에 따라 치료 방향을 결정하는 길잡이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암은 수많은 세포분열 중에 발생하는 유전자들의 돌연변이에 의해서 발생한다. 암세포 진행 과정에서도 정상 세포와 다른 다양한 유전자 변이가 생긴다. 유전자 변이를 측정하면 거기에 딱 맞는 표적 치료제를 골라 써서 치료율을 높일 수 있다.

48세 유방암 환자 박모씨는 HER2 유전자 변이 양성 유방암으로 진단받았다. 수술 후 추가 표적 치료제까지 마쳤으나, 3년 만에 간에 전이가 발견됐다. 이후 다른 치료제를 섞어서 항암 치료를 했지만, 5개월 만에 다시 악화됐다. 유전자 프로파일링 검사를 했더니, PIK3CA라는 돌연변이가 발견됐다. 이 변이를 바로잡는 신약 임상 시험에 참여해서 삶을 이어가고 있다.

박경화 대한암학회 총무위원장(고려대의대 종양내과 교수)은 “종합 유전자 검사라고 할 수 있는 차세대 염기 서열 분석(NGS)으로 400~500개 정도의 유전자 돌연변이 유무를 한꺼번에 분석할 수 있다”며 “암종마다 특징적으로 발생하는 돌연변이에 맞는 표적 치료제도 속속 개발되고 있다”고 말했다.

차세대 염기 서열 분석은 유전성 가족 암을 찾는 데도 기여한다. 45세 김모 여성은 4년 전 갑상선암으로 수술받은 적이 있었는데, 담도암에 또 걸렸다. 아버지와 오빠가 담도암, 작은아버지는 췌장암, 할머니는 위암 이력이 있었다. NGS로 BRCA1이라는 가족성 암 유전자 돌연변이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이에 맞는 표적 치료제 연구에 참여하여 가족들은 암 공포에서 점차 벗어나고 있다. NGS는 병리 조직 검사로 암 진단이 애매할 때 ,정확한 암 진단을 하는 데도 사용한다. 혈액 속에 떠다니는 암 조각을 찾아 암 진단하는 액체 생검에도 활용된다. 검사 비용은 종류에 따라 100만~200만원 정도 한다.

박경화 교수는 “이제 NGS는 암 극복의 최대 무기로, 미국·일본에서는 모든 고형 암에 NGS를 건강보험으로 지원하여 환자는 10~30% 정도만 내는데 우리나라는 암 병기 3~4기 환자에게만 건강보험이 50% 지원된다”며 “NGS 검사의 건강보험 적용 대상과 지원 폭을 확대하면 암 생존율을 획기적으로 올릴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