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금 산촌(山村)은 축제 전야제 같은 분위기다. ‘계절의 여왕’ 5월에 맘껏 펼쳐질 신록의 향연을 앞두고 한창 준비중이다. 산야엔 이런저런 꽃들이 피어나고, 이팝나무는 하얗게 단장하고, 매실나무에는 엄지손가락만한 매실이 숙성중이다.
나는 지리산 산봉우리들에 둘러 싸여있는 경남 산청군 시천면 사리에 머물고 있다. 이곳은 조선 중기 실천성리학의 대가 남명 조식(南冥 曺植・1501~1572)이 후학을 가르치고 천수를 다한 곳이다.
안동의 퇴계 이황 선생(1501~1570)과 쌍벽을 이루는 남명 조식 선생은 한양의 온갖 벼슬을 마다하고 이곳 지리산 산동네에 은거하며 실용적이고 민본(民本)에 입각한 실천 중심 학풍을 가르쳐왔다. 벼슬은 마다했지만 임진왜란이 나자 그 제자들은 의병으로 나가 진주성싸움 등 많은 항전을 치렀다. 북학파 곽재우, 정진홍등이 대표적 인물이다.
이곳 일대에는 그가 후학을 양성한 산천재(山川齋), 남명기념관, 묘소, 세심정, 덕천서원 등 유적지가 줄지어 있다. 그의 실사구시 학풍을 기려 최근에 지어진 한국선비문화연구원(원장 최구식)도 있다.
선비문화연구원 3층 테라스에서 보이는 지리산 주봉 천왕봉(1915m)은 정말 손에 잡힐 듯 가까운 거리에 있다. 30여년전 천왕봉을 오른 적이 있는데 비유하자면 지리산은 장년 남자의 듬직한 모습이다. 설악산처럼 아름답고 수려하거나, 한라산처럼 ‘스타플레이어’ 백록담만이 돋보이는 것이 아니라 첩첩 산들이 서로 어울려 투박하지만 모든 것을 품고 포용하는, 늘 그대로의 심지 굳은 모습이다.
# 시천면 면사무소 앞에는 덕천강이 굽이굽이 흐르고 있고, 아스팔트 길들이 이쪽저쪽 나 교통도 좋다. 그러나 평일 아침부터 저녁 내내 늘 조용하다. 대낮에도 마주치는 사람은 손을 꼽을 정도로 조용하다.
설악산, 한라산 주변은 이미 유명관광지로 관광객들이 도심 못지않게 분주하고 시끄러웠지만 이곳 길가에서 눈을 감고 앉아 있노라면 그저 드문드문 차소리와 새소리가 전부다. 눈을 뜨면 강, 저멀리 산, 그 뒤에 첩첩산중 풍경이라 명상하기도 좋다
지리산 산속이지만 평지가 있어 아주 오래전, 신석기시대부터 사람들이 살았던 모양이다. 고인돌 유적지도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늘 조용했다. 임진왜란 때 의병활동, 한국전쟁 전후 빨치산 활동 등을 제외하곤 수천년 내내 이곳은 늘 평화롭고 적막했던 것 같다. 그 분위기와 기운이 그대로 느껴진다.
# 이곳 특산물은 곶감, 흑돼지, 벌꿀 정도다. 이곳 식당들을 갔더니 전라도처럼 찬(주로 절인 음식)이 수십개나 함께 나왔다. 보현갈비식당, 황태해장국은 서울에서 장사해도 경쟁력 있을 맛집이었다.
과거에는 왕래하기 어려운 첩첩산중 두메산골이었지만 이제는 사통팔달 길이 뚫려 주변 갈 데가 많다. 아래로 진주, 통영, 서쪽으로는 하동, 화계장터, 쌍계사, 전라도 구례….
차로 한시간 거리인 ‘동양의 나폴리’ 통영을 가서 지인들과 만나 법원 앞 생선구이집에서 잘 먹고, 돌아본 풍광은 장난이 아니었다. 지중해 어촌이 연상됐다. 올라오는 길에 진주성에 들려 임진왜란때 기생 논개가 왜장과 떨어져 산화한 촉석루도 가보았다. 왠지 맑고 좋은 기운이 느껴져 점심 먹은 후 식곤증과 무거움이 한번에 사라졌다.
여행을 할 때 나는 스마트폰을 되도록 보지 않는다. SNS도 최소화한다. 마음을 ‘지금 &여기’에 집중시키기 위해서다. 마음을 지금 여기에 집중하는 것만 해도 뇌는 쉬고, 마음은 편해지며 행복감이 찾아온다.
뇌과학적으로는 평정, 감사, 기쁨 등 긍정적 정서를 관장하는 내측전전두피질(mPFC)이 활성화되고, 불안, 분노, 두려움 등 부정적 정서를 다루는 편도체가 안정적인 모드로 돌아오기 때문이다.
번잡한 세속사를 접하면 마음은 산만해지고, 이런저런 일을 반추하면서 대개 부정적 감정이 올라오게 되는 데 그것을 미리 막는 것이다.
혹자는 이런 마음의 관리를 ‘인격 수양(修養)’이라고 표현하는데 나는 ‘마음 운동(피트니스)’이라고 부른다. 마음도 몸처럼 운동하면 근력이 생기고 건강해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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