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 ADHD 진단 남발되고 있다”

# 우울증을 비롯 신경・정신질환은 특히 코로나 팬더믹 이후 대세(大勢) 질환이 됐다. 지난 5년간 서울시내 개인병원 중 소아청소년과의원은 12.5%나 줄어들었으나 정신과는 무려 77%나 늘어났다. 과연 그 복잡한 신경정신과 분야를 다루는 과정에서 정확한 진단과 걸맞은 처방이 이뤄지고 있을까.

21세기 IT시대에 사는 우리로서는, 정신이 산만해 주의 집중이 안되고, 기억도 깜빡깜빡 거리는 경험을 자주 겪는다. 심한 무기력감에 일손을 놓아버린 적도 있으며, 반대로 불안-초조해지고 예민해져 안절부절 못하고 두서없이 일을 처리한 경험도 있다.

그럴 때 우리는 ‘혹시 ADHD(주의력 결핍 과잉행동 장애:Attention Deficit/Hyperactivity Disorder) 아닐까?’란 생각을 할 수 있다. 요즘 드라마・영화에서 이 질환이 등장하고, 자신을 ADHD 환자라고 쓴 베스트셀러까지 나오다 보니 더욱 그런 생각을 할 수 있다.

국내 의학계에서 우울증・조울증・조현병 등의 대표적인 전문가로 꼽히는 김창윤정신건강의학과의원 원장은 요즘 우울증을 가지고 성인 ADHD로 진단하거나 심지어 조현병으로 진단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걱정한다.

경기고・서울대의대를 나온 김 원장은 울산대 의대, 서울아산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과장 및 주임교수를 역임했다. 미국 코넬대 분자신경생물학연구소에서 연수했고 대한정신약물학회 이사장도 역임했다.

그는 요즘 정신과를 찾는 사람들의 경우 우울증 환자들이 많은데 이런 환자들이 주의집중력 장애를 호소한다는 이유만으로 성인 ADHD로 진단받고 약을 복용하면서 오히려 병을 악화시키는 경우가 있다고 했다.

얼마 전 내원한 대학생은 집중이 잘 안되고 멍한 상태로 있을 때가 많아 공부하는 게 힘들다면서 성인 ADHD 검사를 받고 싶다고 했다. 주위 친구들이 비슷한 증상으로 성인 ADHD 진단을 받고 약을 복용 중이라고 했다.

막상 환자를 보니 이 학생은 무기력감을 주 증상으로 하는 대표적인 ‘비전형적 우울증’ 환자였다. ‘비전형적 우울증’ 환자의 경우 일반적인 우울증과 달리 겉 모습은 그다지 심각하지 않고 우울해 보이지 않을 수 있다.

무기력증을 동반한 이런 우울증 환자의 경우 ADHD 치료제를 먹으면 어떻게 될까?

대표적인 ADHD 치료제 ‘콘서타(Concerta)’를 쓰면 처음에는 금방 기분이 좋아지고 기력을 되찾아 병을 치료한 듯 보이지만 약을 중단하면 곧바로 무기력증에 빠져 약에 의존하게 된다.

계속 복용할 경우 예민해지면서 오히려 더 산만해지거나, 잠을 제대로 못 자고, 욕구나 감정 조절이 제대로 되지 않아 평소와 달리 말을 함부로 하고 지나치게 화를 내거나 과다한 쇼핑 또는 사회적 일탈 행위와 같이 후회할 수 있는 행동을 충동적으로 하는 등의 조증(躁症) 증상을 보일 수 있다. 심하면 망상이나 환청을 일으켜 조현병(정신분열증)으로 오진되기도 한다.

방송사에서 일하는 27세 여성은 TV에서 성인 ADHD 얘기를 듣고 병원을 찾아왔다. 일을 하는데 자꾸 딴 생각을 하다 실수를 할 때가 많은데 인터넷에 나온 증상 설문지를 체크해보니 ADHD에 해당되었다고 한다. 진찰해보니 지속적인 스트레스와 피로로 주의력이 저하된 것일뿐 ADHD는 아니었다. 이런 사람이 ADHD 치료를 받는다면…

# 이처럼 자신이 ADHD 환자가 아닐까 의심해서 병원을 찾아온 사람들의 경우 대개 텔레비전 방송이나 신문 기사 또는 인터넷 상의 설문지를 통해 스스로 증상을 체크해본 사람들이다. 병원에선 환자의 얘기를 듣고 설문 조사와 함께 심리 검사 또는 컴퓨터를 이용한 주의력 검사를 한 뒤 의사가 병 유무를 결정한다.

ADHD 진단은 증상 체크 리스트나 심리 검사 또는 컴퓨터를 이용한 주의력 검사로 진단하는 것이 아니라 임상의의 상세한 병력 청취를 통해 이뤄지는 것이 원칙이다.

김 원장은 주의력 장애는 우울증을 비롯해 스트레스나 과로 또는 동기 부족 등 여러 상황에서도 발생할 수 있어 감별 진단에 유의할 필요가 있으며 특히 흔히 사용되는 설문 조사만으로 진단할 경우 성인 ADHD로 나올 가능성은 실제보다 7~10배 가량 된다고 말했다.

컴퓨터를 이용한 주의력 검사 역시 주의력이 저하된 것으로 나타났다 해도 ADHD가 아닐 수 있으며 의사의 임상적 진단을 대신하는 것은 아니라고 하였다.

의학적으로 설명되는 ADHD는 ▲주의력 결핍 ▲과잉행동 ▲충동성과 같은 특징적 증상이 지속적이면서 생활에 영향을 줄 정도로 심각한 수준이어야 하며 성인기에 새로 생긴 증상이 아니라 이미 12세 이전에 발병한 경우이어야 한다.

소아기 ADHD 증상이 성년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50%라고 하나 실제로는 5%에 불과하다는 보고도 있으며 성인 ADHD 양상을 보이는 사람 중 90%는 성인 ADHD가 아니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성인 ADHD는 주변 이사람, 저사람이 걸리는 그런 흔한 질환이 아닐 수 있다.

어쩌면 스트레스가 심하거나, 누적된 피로, 술이나 약물 효과 등으로 인해 ADHD처럼 보일 수 있다. 이런 경우는 잘 쉬고 심신을 편안하게 만들어 주면 사라진다.

또한 일부 우울증이나 양극성 장애 증상은 겉으로 우울해보이지 않으면서 산만하게 행동하거나 무기력감을 호소해 ADHD로 오진 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김 원장은 “정신질환은 병의 경계가 모호한데다 진단을 확인할 수 있는 검사가 없어 정확한 진단을 내리는 게 쉽지 않아서, 단지 주의집중의 어려움을 호소한다는 이유만으로 성인 ADHD로 오진되거나, 또는 기분장애가 조현병으로, 조울병(양극성 장애)이 경계선 인격장애로 간주돼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하는 경우들이 있다”면서 “정확한 진단을 하는 데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은 상세한 병력 청취와 더불어 의사의 임상적 경험과 직관”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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