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척추관 협착증 환자 A씨. 다리 신경이 튀어나온 척추뼈에 눌려서 걸을 때마다 다리에 통증이 왔다. 진통을 위해 신경외과 전문의를 찾아가 신경통약과 염증약을 처방받아 복용했다. 그러다 다리가 붓는 하지 부종이 생겼다. 이번에는 내과를 찾아가 이뇨제와 혈류 개선제를 처방받아 복용했다. 이후 어지럼증이 생기고, 식욕 저하가 왔다. A씨는 신경과를 찾아가 어지럼증 약을 처방받아 먹었다. 그러나 탈수가 자주 오고, 몸이 점점 허약해졌다. 결국 낙상 사고가 나서 응급실로 실려왔다. 환자 A씨는 다제 약물 복용 후유증의 전형적인 사례다.

그래픽=백형선

◇병 고치려다 병 낳는 다제 약물

소화불량, 변비, 어지럼증, 식욕부진, 불면증, 우울감 등 여러 증상이 다양하게 생기는 고령 인구가 늘면서 증상을 약으로 해결하려다 다제 약물 복용자가 되어 노년 삶이 망가지는 사례가 늘고 있다. 병 고치려다 병 갖는 꼴이다. 대개 새로운 증상들을 추가 약물 복용으로 메우려다 생기는 이른바 처방 연쇄 현상 희생자다.

통상 6종류 이상 약물을 먹는 경우를 다제 약물 복용이라고 한다. 지난해 국감 자료에 따르면, 두 달 넘게 10종류 약물을 복용하는 사람이 113만명이다. 75~84세는 다제 약물 복용이 열 명 중 한 명꼴이다.

정희원 서울아산병원 노년내과 교수는 “어디가 불편하면 당장 해당 장기 이름의 전문과를 찾는 의료 이용 행태가 있고, 진료받을 때마다 약 처방을 원하는 환자가 많아 새로운 증상이 생길 때마다 다제 약물 복용이 늘어가고 있다”며 “진료 시간이 짧아서 기존 사용 약제를 자세히 확인하기 어려워 비슷한 약물이 중복 처방되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약물 복용 적절성 평가 받아야

이제 환자도 의사도 다제 약물 복용을 줄이는 노력이 필요하다. 여러 만성 질환을 앓는 82세 남성 환자 B씨. 그는 고혈압, 골다공증, 우울증 병력이 있는 환자로, 4개 의료기관에서 총 12종의 약물을 처방받아 복용 중이었다. 이 환자를 대상으로 다제 약물 안전성 평가를 해보니, 골다공증 치료제는 제대로 복용하지 않고 있었으며, 약물 간 상호작용에 의한 부작용 위험이 있었으며, 증상 없이 계속 복용하는 알레르기 약 등도 있었다. 이에 처방 조정을 의뢰해 복용 약을 9종으로 줄였더니 다제 약물 부작용 위험이 현저히 낮아졌다.

B씨 사례는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시행하는 다제 약물 관리 사업으로 위험성이 개선된 경우다. 다제 약물 관리 사업은 고혈압, 당뇨병, 심장 질환 등 46개 만성 질환 중 1개 이상 질환을 보유하고, 정기적으로 10종 이상 약물을 복용하는 사람을 대상으로 의약 전문가가 약을 검토하고 정리해주는 사업이다. 약사와 공단 직원이 가정을 방문해 복용약을 검토하고 정리하며, 중복 투약, 약물 부작용, 복용 방법 등을 상담 지도한다.

‘먹는 약이 많은데 다 먹어도 되나?’ ‘처방약과 영양제를 함께 먹어도 될까?’ 등의 고민을 하는 환자는 다제 약물 관리 사업 참여를 국민건강보험(1577-1000)에 문의할 수 있다.

정희원 교수는 “명절에 오랜만에 찾은 부모님이 한 주먹 약을 드시고 있다든지, 약을 늘려서 계속 먹는데도 이전보다 부쩍 허약해진 것 같으면, 다제 약물 복용 부작용을 의심해봐야 한다”며 “장기 복용 중인 약물 종류가 많은 경우 대학병원 노년내과나 다제 약물 클리닉을 방문하여 적절성 평가를 받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