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대인들은 심장을 혹사한다. 느긋하고 여유로웠던 목가적 시대 사람들과 달리, 초고속 정보화시대 사람들은 24시간 긴장, 불안, 두려움, 분노 등 온갖 스트레스로 심장에 부담을 주고 산다.
한국인 10대 사망원인을 보면 1위 암 다음으로, 심장질환이 2위를 차지하고 있다. <도표 참조> 여기에 뇌혈관 질환(4위), 알츠하이머(7위), 고혈압성질환(10위)까지 합치면 심혈관계 관련 질환들이 사망원인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다.
사실 마음과 심장은 불가분의 관계다. 신체적으로 마음의 상태를 가장 먼저 느낄 수 있는 기관이 심장(heart)이기 때문이다.
기쁨, 분노, 두려움 같은 강한 감정을 느끼면 심장은 빨리 뛴다. 공포심이 엄습하면 심장은 ‘쿵’ 내려앉는 듯 충격을 받는다. 반면 호감, 설레임 등 가벼운 정서속에서 심장은 사뿐사뿐, 두근두근 뛴다. 마음이 편해지면 천천히 뛰며 잠자리에 들면 더욱 느려진다.
이것은 모두 인간 의지로 통제하기 어려운 자율신경계의 작용이다. 특히 마음의 평화는 심장의 건강과 직결돼 있다. 아무리 의지가 강하거나 인격적으로 성숙했다고 하더라도 심장이 허약하거나 제멋대로 뛰면 마음의 평화를 찾기 어렵다. 심장이 건강해야 마음도 건강해지는 법이다.
마음과 심장의 인과관계에 대해 심장병 전문의들은 어떻게 보고 있을까.
# 1990년대 9년 연속 ‘미국 최고 명의’상을 수상했던 마이클 로이젠 뉴욕주립의과대 교수는 자신의 의학베스트셀러 ‘내 몸 사용설명서(You:The Owner’s Manual)’에서 이렇게 설명했다.
▶부정적 정서가 강하면 심장에도 해롭고, 신체나이를 9년 더 늙게 만든다.
▶우울증이 있는 사람은 없는 사람보다 심장발작 가능성이 4배 이상 높다
▶2001년 ‘9.11 테러’ 이후 30일간 워싱턴, 뉴욕, 시카고, 미주리, 캔자스, 앨라바마 등지에서 심장발작이 3배 증가했다.
우리나라에서 협심증 치료 및 관상동맥 스텐트 시술의 권위자로 꼽히는 박성욱 아산의료원장(67)은 이렇게 말한다.
“마음의 상태나 스트레스가 심장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가설이 아직 의학적으로 명쾌하게 규명되지는 않았으나, 현대인들의 교감신경계가 매우 항진돼 심장에 부담을 주는 것은 사실이고 실제 환자들을 접해보면 많은 사례를 찾을 수 있다.”
정상적인 사람이 배우자의 죽음, 실직 등 극심한 스트레스로 갑자기 심장 발작을 일으켜 병원에 실려 오는 경우도 있고, 심혈관 이상이 없는 데도 급성심근경색 증상을 보이는 스트레스성 심근증(타코츠보 심근증) 환자들도 많다고 한다.
또 심혈관 질환이 없는데도 계속 심장이 빨리 뛴다고 고통을 호소하는 이들을 정신과로 넘기는 경우가 있는가하면, 반대로 정신과에서 넘어오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가장 우려되는 것은 자칫 목숨을 잃을 수 있는, 죽상경화증으로 인한 급성심근경색. 주목할 점은 환자 절반 정도는 평소 심혈관에 큰 문제가 없던 사람들이란 점이다. 갑자기 심한 스트레스를 받고 죽상경화증→심근경색→돌연사 위험으로 치달은 것이다.
# 평소 심장・혈관에 도움 되는 것들로 흡연・당뇨・비만을 억제하는 생활습관과 나쁜 콜레스테롤을 피하는 식습관 등이 알려져 있다. 박원장은 이와 함께 “좋은 공기 속 걷고 땀 흘리는 유산소 운동”을 적극 권한다.
정상인의 맥박은 1분간 60~100(보통 60~80). 맥박수가 느릴수록 심장이 튼튼하다. 한번에 동맥으로 내보내는 혈액량이 많다는 것을 뜻한다. 농구나 마라톤 선수들 중에는 분당 맥박이 40대인 경우도 있다.
맥박수가 느리면 심장은 그만큼 덜 일하는 셈이다. 맥박수를 느리게 하고 심장근육을 튼튼하게 만드는 데는 어떤 약이나 식품보다 유산소 운동이 최고라고 한다.
박 원장은 마음은 비울수록 좋다는 ‘비움’의 철학을 가지고 있다. 주말이면 부인과 둘이서 등산을 가서 땀 흘리고, 좋은 경치를 감상하다보면 시름이 사라진다. 호흡을 조절하며 험한 산길을 조심조심, 일체의 잡념 없이 걸어가다 보면 그것이 곧 ‘명상’이 아니겠느냐고 반문한다. 그는 틈만 나면 전국의 산과 국립공원, 남해안 한려수도 작은 섬들을 찾아간다.
그가 마음을 비우는 두 번째는 베푸는 것. 기부를 한다거나 자신의 의술로 봉사활동을 할 때 마음이 편안해진다.
박 원장은 은퇴 후 생활에 대해서는 “사후세계는 특별히 신경 쓰지 않지만 평소 순리대로 살다가 가려고 하며, 많지 않은 유산은 자식에게 물려주지 않고, 쓸만큼 쓰고 나머지는 기부하겠다”고 말했다.
1989년 서울아산병원 개원할 때부터 심장내과 교수로 들어와 지금도 일선에서 진료를 보고 있는 박 원장은 서울아산병원장(2011~2016)을 거쳐 아산의료원장(2021~)으로 병원 행정도 총괄하고 있다. 그 비결은 무엇일까.
“내가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되, 일하다 보면 생기는 나쁜 생각들을 되도록 안하고 잊어버리려고 애쓴다. 그런 것들을 억지로 내쫓으려거나 억압하기 보다는, 운동이나 다른 좋은 일에 몰두하면서 자연스럽게 관심 밖에 놔두거나 사라지게 만들려고 노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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