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의약품 수출이 매년 증가세를 보이는 가운데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들의 해외 진출도 활발하다. 세계 최대 의약품 시장인 미국에서 직접 판매(직판)에 도전하는가 하면 신약을 앞세워 중남미에 도전하는 기업도 늘고 있다.

◇미국서 직접 판매 확대하는 제약사들

미국의 의약품 시장 규모는 지난해 기준 약 5900억달러(약 790조원)로 단일 국가 기준 세계 최대다. 그러나 복잡한 보험 체계와 합법적 리베이트 활동 등이 국내 제약사들에는 현지 직접 판매의 장애물이었다. 보통 세계적 제약사들이 갖춘 현지 판매망을 이용하지만 파트너사에 비싼 수수료를 지급해야 한다.

그래픽=박상훈

이 때문에 국내 제약사들은 최근 미국에서 의약품 직판 확대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초기 영업망 구축에 상당한 비용이 들지만 일단 자리를 잡으면 수익성을 높일 수 있다는 계산 때문이다.

셀트리온헬스케어는 지난 4월 출시한 항암제 바이오시밀러 ‘베그젤마’와 블록버스터 약물인 자가면역칠환 치료제 휴미라의 바이오시밀러인 ‘유플라이마’를 미국에서 직판하고 있다. 유럽에서는 2019년부터 자가면역질환 치료제 ‘렘시마’ 직판을 시작해 작년에는 모든 제품을 직판으로 돌렸다.

SK바이오팜도 미국 직판에 앞장선 기업이다. 회사는 2020년부터 미국 법인 SK라이프사이언스를 통해 자체 개발 신약인 뇌전증 치료제 ‘세노바메이트’를 직판하고 있다. SK바이오팜 관계자는 “미국 시장에서 영업망 구축이 완료됐기 때문에 하반기에는 흑자전환을 목표로 판매를 늘리고 있다”고 했다.

LG화학은 지난해 미국 바이오 기업 ‘아베오 파머슈티컬스’를 인수해 현지 영업망을 확보했다. LG화학 관계자는 “앞으로 미국 시장에 항암 신약을 출시할 때 직판이 가능할 것”이라고 했다.

삼성바이오에피스는 파트너사인 바이오젠의 바이오시밀러 사업부 인수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바이오젠은 삼성바이오에피스가 2012년 합작사로 공동 지분을 투자했지만 이제는 매출 규모가 확대되면서 인수를 검토하고 있다는 것이다. 바이오젠 바이오시밀러 사업부는 유럽과 미국 내 글로벌 의약품 판매 전문 인력을 300여 명 보유하고 있고 주요 판매 제품이 모두 삼성바이오에피스가 개발한 바이오시밀러다. 바이오젠 측은 최근 2분기 실적 발표 콘퍼런스 콜에서 “바이오시밀러 산업에 관심 있는 여러 관계자와 논의 중”이라고 밝혔다.

◇중남미 등 新시장 발굴도

중남미에 진출하는 제약사도 늘고 있다. 의약품 시장조사 기관 아이큐비아에 따르면 지난해 중남미 의약품 시장 규모는 약 560억달러로 미국, 유럽만큼 규모가 크지는 않다. 그러나 지난해 중남미 의약품 시장의 매출 성장률은 전년 대비 12.9%로 전 세계에서 가장 높아 빠르게 성장하는 시장이다.

그래픽=박상훈

대웅제약은 올해 초 현지 파트너사인 목샤8을 통해 브라질과 멕시코에 당뇨병 신약 ‘엔블로’를 판매하는 계약을 맺었다. 엔블로는 SGLT-2(소금 포도당 수송체)를 억제하는 당뇨병(혈당) 신부전(혈압) 치료제다. 또 위·식도 역류 질환 치료제 ‘펙수클루’가 올 초 에콰도르와 칠레에서 품목 허가를 받았다.

GC녹십자는 지난 6월 브라질 현지 파트너사인 블라우와 면역 글로불린 혈액 제제 ‘아이비글로불린-에스엔(IVIG-SN 5%)’을 2028년 6월까지 공급하는 계약을 맺었다. IVIG-SN은 선천성 면역 결핍증, 면역성 혈소판 감소증 등을 치료할 때 쓴다.

최근에는 중남미 지역에 통합 의약품청이 설립된다는 소식이 제약 업계에서 화제가 됐다. 지난달 한국바이오협회가 낸 보고서에 따르면 멕시코, 콜롬비아, 쿠바 등 중남미 국가들이 지난 4월 ‘라틴 아메리카 및 카리브해 의약품청’ 신설에 동의한 가운데 브라질, 아르헨티나, 칠레 등도 참여 의사를 밝혔다. 기관이 신설되면 유럽연합의 의약품 평가 및 감독을 총괄하는 ‘EMA’처럼 의약품 및 의료 기기 전반에 대한 규제가 일원화된다. 국내 기업들이 중남미 각국 의약품 시장을 한 번에 공략할 수 있게 되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