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로 집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지저분한 곳이 자꾸만 눈에 띈다. 어질러진 집은 재택근무의 효율을 떨어뜨리기도 한다. 큰맘 먹고 정리에 나선다 해도 계획을 잘 세우지 않으면 서랍이나 수납장에 물건을 욱여넣는 데 그치기 십상이다. 지난달 나온 ‘설계 전문가들의 정리법’(안테나)은 이럴 때 참고할 만한 책이다. 가족 수, 자녀 유무, 주택 형태(아파트와 단독주택)와 소유 여부(자가와 임차) 등이 서로 다른 일본 여성 건축가 3명이 집 안을 정돈된 상태로 가꾸고 유지하는 노하우를 망라했다.

조리대나 식탁을 차지하지 않도록 주방 가전제품을 한데 모은 모습. 선반은 폭 600㎜에 깊이 500㎜ 정도가 적당하다. /안테나

정리·수납 기술과 관련된 정보는 많지만 건축가가 집이라는 공간을 염두에 두고 설명한 책은 흔치 않다. 건축가의 정리법은 우선 집 안 모든 물건을 밀리미터 단위의 치수로 인식한다는 점에서 다르다. 그중에서도 물건의 ‘깊이’가 핵심이라고 설명한다. 예컨대 CD 수납용 선반의 적정 깊이는 150㎜, 찻잔 세트·접시는 300㎜, 옷장은 600㎜, 이불장은 800㎜이다. “깊이에 맞는 수납 도구를 고르지 않으면 다른 공간에 물건을 쌓게 된다.”

집의 평면도를 그리듯 동선을 중시하는 점도 특징. 현관에서 거실로 진입하기 전에 가방과 겉옷을 두는 임시 보관 장소를 마련하라는 조언은 이런 관점에서 나온 것이다. 가방과 옷을 아무렇게나 던져버려서 거실이 어질러지는 일을 막기 위한 방책이다. 물론 나중엔 제자리로 옮겨야 한다.

장난감 따위를 넣는 선반에 물건의 그림이나 사진을 문패처럼 붙인 모습. 아이가 스스로 제자리를 찾아 정리하는 습관을 길러줄 수 있다.

부엌의 동선은 냉장고→재료 세척→다듬기→조리→상차림으로 구성된다. 여기에 맞춰서 재료를 씻고 다듬는 곳에는 도마·칼·소쿠리 등을, 조리하고 상 차리는 곳에는 국자·수저와 냄비 등을 둔다. 조리대나 선반을 점령하지 않도록 부엌 가전을 한데 모으는 것이 팁. 깊이 500㎜ 정도의 선반이면 전자레인지처럼 비교적 부피가 큰 것까지 넣을 수 있다.

아이가 있는 집에 유용한 내용도 다양하다. 장난감이 온 거실에 어질러지지 않도록 놀이 공간을 구분하는 것이 기본. 낮은 선반을 벽처럼 거실 가운데 두는 방법도 있고, 야트막한 평상을 거실 구석에 두고 바닥 높이의 차이로 구분하는 방법도 있다. 서랍과 선반에 물건의 사진이나 그림을 붙여 두면 제자리를 알려 주는 ‘주소’가 돼서 아이가 스스로 정리하는 습관을 들이는 데 도움이 된다.

생필품이 아닌 수집품이나 취미용품은 애물단지가 되기 쉽다. 부담스러운 유리 장식장 대신 DIY용으로 시판되는 깊이 4㎝짜리 목재를 벽에 붙여 피겨(인형) 진열용 벽선반을 만드는 것도 아이디어다. 정리의 기본은 비움이라고도 하지만 무작정 버릴 수도 없는 일이다. 채민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