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5월 제58회 백상예술대상에선 한 수상 소감에 큰 박수가 터졌다. 주인공은 넷플릭스 시리즈 ‘D.P.’의 탈영병 조석봉 역으로 남자조연상을 받은 배우 조현철(37)이었다. 그는 “죽음을 앞둔 아버지께 용기를 드리고 싶다”며 입을 열었다. “아빠, 마당 창 밖으로 빨간 꽃이 보이잖아. 그거 할머니야. 할머니가 거기 있으니까 아빠가 무서워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죽음이란 게 단순히 존재 양식의 변화인 거잖아.”

죽음도 삶의 일부이며, 슬픔과 기쁨 역시 하나라는 마음을 담은 그의 영화 ‘너와 나’(10월 25일 개봉)가 개봉 8일 만에 ‘독립영화의 100만 고지’로 불리는 관객 1만명을 넘더니 2만명을 향해 장기 흥행을 이어가고 있다(16일 현재 1만8316명). ‘너와 나’는 한국예술종합학교 영화과를 졸업한 그의 장편영화 감독 데뷔작이다. 세월호 참사 전날 두 여고생의 하루를 담았다. 영화계에서 ‘올해의 신인감독’이라는 말이 나온다. 조 감독은 최근 본지 인터뷰에서 “누구나 겪을 법한 상실의 아픔을 위로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조 감독은 2016년 광화문 세월호 추모집회에 참가했다가 작품 착상을 하게 됐다. “그 많은 죽음의 의미를 허무하게 남겨두면 안 된다는 생각으로 시나리오를 써내려 갔습니다.” 두 여고생을 주인공으로 설정한 그는 연기 입시 학원에서 학생을 가르치며 고등학생의 어투를 채집해 대사에 살렸다. 화면에는 의도적으로 풍성한 햇살을 쏟아부었다. 파스텔 엽서처럼 몽환적으로 빛나는 순간을 보여준다. 환하게 반짝이던 둘의 생(生)과 사(死)는 꿈인 듯 현실인 듯 엇갈린다.

영화에는 백상 수상 이후 2주 만에 부친을 여읜 그의 고통도 담겼다. 부친은 1세대 환경운동가인 조중래 명지대 명예교수다. 그는 부친의 조의금을 군인권센터 등에 기부했다. “사람은 혼자 너무 많이 가지면 안 된다고 배웠으니까요. 당연히 나눠야 하는 걸로 생각했습니다.” 타인을 배려해야 한다는 가르침은 1990년대 여성 인권 운동에 앞장섰던 모친 안일순(78) 작가(소설 ‘뺏벌’)의 영향도 있다. 백부는 조영래 변호사다. 조 감독은 “어릴 때 큰아버지께서 쓴 책이나 변론을 읽으며 사회에 대한 관심을 일찌감치 갖게 됐다”고 했다.

그도 한때는 남보다 유명해지고 싶다는 마음에 괴로웠다. “2015년쯤 연기 시작할 땐 욕심이 났어요. 엔터테인먼트 업계가 사람을 홀리는 면이 있거든요. 유명해지고 싶고, 좋은 차 타고 싶고. 그땐 제 자신을 어떻게 더 드러낼지를 고민했어요. 이번 영화를 7년 가까이 만들면서 저도 달라졌어요. 제 작품이 저를 키웠습니다.”

차기작은 드라마 ‘유쾌한 왕따’와 ‘애마’. 각각 교사와 영화감독으로 출연한다. “다음 연출작은 구상 중이에요. 새로운 여정에서 또 다시 성장한 모습을 관객과 나누도록 고민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