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을 앞둔 인간에게 시(詩)를 읽어주는 안드로이드 로봇이 등장하는 히라타 오리자의 연극 '사요나라'. /세이넨단

“제 연극이 한국의 젊은 연극인들에게 조금이라도 좋은 영향을 미친 부분이 있다면, 한국에서 유학하며 입은 은혜를 갚는 일인 듯 해 기쁘게 생각합니다.”

지금 한국의 젊은 연극인들에게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사람을 묻는다면 아마도 맨 앞줄에 셰익스피어나 체호프와 함께 당신의 이름이 있을 것이라고 했더니, 백발의 남자가 손사래를 치며 웃었다. 자그마한 체구에 인자한 미소. 일본 극단 ‘청년단’ 대표 히라타 오리자(62)는 세계 무대에서 일본 현대 연극을 대표하는 극작가이자 연출가다. “한일 연극인들은 유럽에서 들여온 근대 연극을 어떻게 우리의 것으로 만들 것인가라는 공통의 과제를 안고 있죠. 그런 공통점이 제 연극과 사고 방식이 한국 연극인들에게도 울림이 있었던 이유 아닐까요.” 서울예대와 안산문화재단이 함께 여는 ‘극작가 아고라’에서 강연하고 서울예대 학생들과 집중 극작 워크숍을 위해 최근 한국을 방문한 그를 안산 문화예술의전당에서 만났다. 한국의 같은 이름 극단 ‘청년단’의 대표인 민새롬(41) 연출이 질문하고, 히라타 선생의 책을 번역하고 연극을 연출해온 서울예대 극작과 성기웅(50) 교수가 함께 묻고 통역했다.

2024년 7월 7일 안산문화재단과 서울예대가 경기도 안산 문화예술의전당에서 함께 연 '2024 안산 극작가 아고라 : 탈인간 시대의 비인간 연극 쓰기'. /안산문화재단

◇”희곡과 일상 대화는 왜 다른가… 그 의문이 내 연극의 출발”

민새롬 저 같은 40대의 연출가들은 성기웅 교수가 번역하고 연출한 선생님의 연극 ‘과학하는 마음’을 통해 처음 선생님 작품을 접했습니다. 15년 전에 처음 선생님 작품을 봤을 때, 이야기를 풀어가는 시공간의 감각, 대화의 감각이 무척 인상적이었습니다. 마치 소설을 읽을 때 느낄 수 있는 것들을 무대에서 경험하는 것 같은 감각, 그런 첫 경험이었어요. 당시의 저는 레이먼드 카버 같은 영미권 작가의 단편 소설을 무대화하는 작업을 하고 있었습니다. 소설에서만 구현할 수 있는 감각들이 완전한 하나의 연극 세계로 펼쳐지는 광경은 참으로 압도적인 경험이었습니다. 연극이라는 것이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생각이나 감정을 무대 위에 구현할 수 있다는 걸 선생님의 연극을 보고 느꼈던 것 같습니다. 현대인들의 복잡한 마음의 풍경을 탁월하게 포착하시는 극작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떤 부분이 선생님의 작품이 제 또래의 한국 창작자들에게 연결되고 큰 영향을 끼칠 수 있었을 거라고 생각하시는지, 선생님의 생각이 궁금합니다.

히라타 오리자(이하 ‘히라타’) 제가 젊었을 때 연극을 이론화해나가는데 그 바탕에서 젊을 때 일본 희곡들을 읽을 때 느낀 이질감, 위화감이 있었습니다. ‘일본 사람들은 평소에 이런 식으로 말하지 않는데 왜 희곡은 이런 식으로 말하지?’ 그런 의문이 계속 들었어요. 특히 1980년대 일본은 경제적으로 풍요롭고 화려한 시기였고, 연극적 표현에서도 당시 시대 분위기를 따라 화려하고 격렬하게 표현하는 것들이 유행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저는 그런 표현에서도 위화감을 느꼈어요. 그런 와중에, 딱 40년 전에 한국에서 유학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연세대에 1년 교환학생으로 온 거지요. 한국에서 한국어를 공부하는 경험을 통해 일본과 일본어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기회를 얻었습니다. 특히 어순의 문제가 있었어요.

한국어와 일본어는 어순이 비슷합니다. 단어의 순서로 표현한다는 점이 특히 그렇지요. 일본어의 경우 중국어 같은 성조나 강약 액센트 없이 말의 표현이 이뤄집니다. 유럽 쪽 연극에서는 언어적 특징 때문에 희곡을 해석해서 어떤 단어를 강조해 표현할 것인가 하는 부분이 중요합니다. ‘어쩌면 일본어와 한국어는 그런 식의 표현이 필요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언어의 문법이 다르듯이, 유럽의 연극 이론이나 연극적 사고방식을 그대로 일본에 적용하는 것은 무리가 있지 않을까?’ 이런 질문이 제 연극 방법론의 출발점이었습니다. 그 때 제가 스물두세 살이었습니다.

그 뒤 약 20년 세월이 흘러서, 한국에서 성기웅 씨 등의 노력으로 희곡 뿐 아니라 제가 쓴 연극 이론서와 방법론 책들도 번역됐습니다. 제 책이나 연극이 한국의 젊은 연극인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됐다면, 그것은 제가 한국에서 유학하면서 얻었던 것을 은혜를 갚는(되갚아드리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 기쁘게 생각합니다. 일본과 한국의 연극인들은 공통의 과제를 안고 있습니다. ‘유럽에서 들어온 근대연극이라는 것을 어떻게 우리의 것으로 만들 것인가’ 이지요. 한국 연극인들에게 제 연극과 사고 방식이 좋은 영향을 미쳤다면 그런 공통점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일본 현대연극의 거장 히라타 오리자(왼쪽) 연출가와 민새롬 연출가. /장련성 기자

◇”한·일, 서구와 달리 ‘대화’와 ‘회화’ 구별 모호”

민새롬 선생님이 1990년대에 펴내신 ‘현대구어연극론’은 한국 연극인들이 새로운 연극을 만들어가는데 나침반 같은 역할을 했습니다. 그 책을 펴내신 이후로 연극 작업의 화두가 달라지거나 수정되거나 발전한 개념이 있을까요?

히라타 연극에 대해 설명하는 것이 더 능숙해졌습니다, 하하. 아무래도 더 잘 설명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할까요. 과학 분야의 발견과 발전과도 비슷합니다. 대략 20대 젊은 시절에 무언가를 발견해서 그것을 점점 이론화하고 설명해가는 과정을 겪게 된다고 생각하는데요. 제가 스물두세 살 때 연세대에 교환 학생으로 갔을 무렵 기숙사의 아주 작은 방에서 생각했던 것들이 저의 연극의 출발점이었습니다. 한 가지 더 계기가 있었다면 그 이후에 유럽과 미국 쪽에서 많이 일하게 됐습니다. 프랑스와 미국의 대학에서 수업을 하기도 했고요. 그런 경험을 통해 더 일본 연극을 객관적으로 보게 되는 경험을 얻었습니다.

예를 들어 아까 질문에서 ‘대화’라는 단어가 나왔습니다. 한국어도 비슷할 텐데, 일본어에서는 ‘대화(dialogue)’와 ‘회화(conversation)’의 쓰임을 그다지 구별하지 않고 써왔습니다. ‘대화’라는 건 다른 세계, 타자와의 만남에서 이뤄지는 것입니다. 운명과의 만남에서도 대화가 빚어지지요. 그런데 일본에서는 대화와 회화를 구별하지 않고 썼기 때문에, 대화가 타자와, 운명과의 만남에서 이뤄지는 것이라는 걸 제대로 인식하지 않았습니다. 특히 일본 사람들은 대화를 잘 하지 못합니다. 뭐든지 제대로 대화하는 습관이 없이 회화의 차원에서 ‘그러니까, 됐어’, ‘그래, 그렇지’ 하고 좋게 좋게 넘어가는 식의 가벼운 회화로 넘어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것도 20대에 제가 깨달은 것입니다. ‘근대 연극은 대화가 필요하다. 대화로 인해 성립한다. 근데 일본어에는 대화라는 것이 없다.’ 그렇다면 결론은? ‘일본어로는 근대 연극을 할 수 없다!’ 그게 결론이었습니다.

그래서 대화를 잘 하지 못하는, 대화에 서툰 일본 사람들이 어떻게 하면 연극을 할 수 있을까, 연극에서 대화의 순간이 어떻게 만들어질까를 고민하면서 연극을 해왔습니다. 이번에 서울예대에서 하는 집중 워크숍도 그것이 중요한 테마가 됩니다. 20대부터 그 점을, 어떻게 하면 일본의 연극에서 대화의 순간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고민해왔습니다. 그러다 40대가 되어 영미권이나 유럽 쪽 수업하면서 거기에 대한 발견을 더하게 된 것이지요.

히라타 오리자의 연극 '서울시민'의 2006년 12월 도쿄 키치조지 극장 공연 장면. /사진가 츠카사 아오키

영국이나 프랑스의 대학생들 앞에서 ‘대화’와 ‘회화’의 차이에 대해 이야기하면 ‘헤에~’ 하고 반응합니다. ‘아, 과연(なるほど) 그렇군요.’ 그들은 인식해본 적이 없었던 겁니다. 이게 예술의 재밌는 점이지요. 예술은 늘 중심에서부터가 아니라 주변에서부터 무언가 새로운 게 생겨납니다. 중심에 있는 사람들은 그걸 너무 당연하게 해왔기 때문에 인식하지 못하지요. 그러나 한국이나 일본 사람들은 서양 근대연극을 수입한 것이기 때문에, 그걸 어떻게 우리 것으로 할 것인가를 가지고 그 문제를 열심히 고민하게 됩니다. 거기에서 새로운 흐름이, 움직임이, 운동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저는 그게 예술의 재미있는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운 좋게도 한국 뿐 아니라 영미권과 유럽, 그러니까 서양과 동양 양쪽 다 경험해서 작가로서 유리한 점이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좋은 대화엔 삶을 한 순간에 응축시키는 힘”

민새롬 선생님 해주신 말씀에 많이 공감합니다. 저도 6~7년간 영국이나 프랑스 작품을 많이 의뢰받았습니다. 저는 2살 때부터 11살 까지 10년간 프랑스에서 살았던 경험이 있어서, 프로듀서들이 영어와 프랑스어에 접근한 제게 작품을 주는 경향도 있습니다. 그런 작품들을 할 때 두 가지 카테고리가 있었습니다. 클래식한 스타일의 희곡을 다룰 땐 인물들의 가장 궁극적인 삶의 순간에 꼭 해야만 하는 정보량 많은 다이얼로그(dialogue·대화) 가 나왔습니다.

선생님 말씀대로, 우리는 항상 그런 말을 하면서 살지는 않습니다. 그렇지만 그런 클래식한 좋은 다이얼로그들은 삶을 한 순간에 응축시키는 힘이 있다고 느꼈습니다. 상대방에게 전력을 다해서 말을 해야 하니까요. 하지만 아시아권에서는, 우리 문화권에서는 전력을 다해서 상대방을 이해시키는 스피치가 거의 없습니다. 말씀을 들으면서, 제가 작업하면서 느낀 간극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최근에 의뢰받은 작품들은 소설 감각으로 회귀하는 인상을 받습니다. 영미권 젊은 작가들이나 프랑스어권 작가들이 다이얼로그와 일상 ‘챗(chat·일상적 수다)’을 혼용합니다. 현대적인 상황에서 연극 언어를 관객에게 전달하기 위해서 정보량이 많은 다이얼로그와 정보량이 적은 챗을 적극적으로 혼용하는 작가들을 최근에 많이 만났습니다. 제가 말씀드린 다이얼로그와 챗이 선생님 말씀과 일치하는지 모르겠지만요.

히라타 80~90년대 프랑스에서는 ‘콜라주’라 불리는 연극 어법이 유행했습니다. 짧은 단편 조각들을 모아서 작품을 만드는 방식이었죠. 그 시대 프랑스였다면, 모놀로그가 이어지거나 대사 정보량이 많은 작품은 그 시대에 뒤처지는 작품으로 여겨질 것입니다. 제가 프랑스에서 작업한 것은 2000년대부터였는데, 아시겠지만 제 작품은 대부분 단막물입니다. ‘1막 짜리인데 콜라주같다’, 프랑스 평론가들로부터 그런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것은 제 희곡의 기술이기도 하지만 일본 사람들의 회화(conversation) 양상 자체가 그렇기도 합니다. 논리적으로 쌓아가는 게 아니라 하이쿠라는 짧은 일본시처럼, 짧고 단편적인 말을 던져서 전체적으로 이미지를 구성하도록 하는 방식입니다. 그런 점이 좋게 평가받았던 것 같습니다. 작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노르웨이 극작가 욘 포세도 마찬가지일 것 같습니다. 욘 포세는 저보다 약간 앞서서 프랑스에서 굉장히 인기가 있었습니다. 독일이나 프랑스, 영국 같은 나라에선 자기들 내부에서 나온게 아니라 외부에서 온 것들이라 그렇게 더 좋은 평가 받았을 수도 있습니다.

◇죽음 앞둔 인간 위해 시 읽는 로봇… 우린 서로 돌보게 될까

민새롬 지금까지 질문이 희곡의 형식과 스타일에 대해서였다면 희곡 내용에 대해 여쭤보고 싶습니다. 대전에서 선생님의 작품 ‘사요나라’를 공연하시고 식사하실 때 뒷자리에 앉았었습니다. 제가 선생님의 극단 청년단과 같은 이름의 극단 청년단을 한국에서 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내적 친밀감이 있었습니다. 너무 유명한 분이라 인사는 못 드렸지만요. ‘사요나라’는 1, 2부 구성과 중간 암전으로 구성된 연극이었는데, 문학적으로 진보된 지능을 가진 호스피스 로봇과, 그리고 그 고장난 로봇을, 몇백년이 지났는지는 모르겠지만 결국 다시 돌봐줘야 되는 인간, 그 거대한 대립이 굉장히 통찰력있게 인간과 로봇의 미래를 암시하는 것 같았습니다. 우리가 서로를 돌봐주게 될까요? 선생님의 생각이 궁금합니다.

일본 현대연극의 거장 히라타 오리자(왼쪽) 연출가와 민새롬 연출가. /장련성 기자

히라타 그렇군요. 처음 ‘사요나라’는 15분짜리로 만들었습니다. 2010년 오사카대 로봇공학연구실에서 실험적으로 만들었던 작품이에요. 당시 안드로이드 로봇으로 무언가 연극을 만들어달라는 의뢰를 받아서, 그 때까지 안드로이드 로봇이 하고 있던 일과는 가장 먼 일을 찾아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시를 읊어주는 로봇을 생각했던 겁니다. 지금 우리가 이야기 나누는 이 방의 절반 밖에 안되는 아주 작은 방에서 딱 한 번 공연했었죠. 그 초연을 본 게 단 6명이었습니다. 근데 저를 포함해서 그 적은 관객들이 ‘이거 정말 굉장한 걸 만들었는데’ 하고 생각했습니다, 하하.

그 때 ‘페스티벌 도쿄’라는 연극제가 있었는데, ‘긴급 공연’이라는 형식으로 공연했습니다. 연극을 본 사람들이 다들 깜짝 놀랐습니다. 하지만 15분은 너무 짧아서 상연이 힘들다고, 프로듀서들이 뭔가 좀 더 만들어주지 않겠냐고 하더군요. 그 직후에 동일본 대지진과 원전 사고가 일어났습니다. 그 원전 사고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로봇으로 어떻게 해보자는 사람이 많았어요. 근데 미국과 달리 일본의 로봇은 처음부터 군사적 목적으로 개발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원전사고에 투입되기에는 적당하지 않았지요. 그 뒤에는 많이 바뀌었지만요.

그 때 저는 극작가로서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원전사고는 인간의 과학이 어떤 한계를 지니고 있는지 극명하게 드러낸 사건이었다. 그런 한계를 보고도 사람들은 또 다시 과학을 통해서 해결하려고 하는구나.’ 극작가로서 ‘이건 말이 안된다, 이상하다’고 생각했어요. 마침 후쿠시마 쪽 고등학교에 매년 연극 워크숍을 다녔기 때문에 관계가 두터웠습니다. 특히 그 때 원전사고 관련된 게 3개 현인데, 그 중 1개 현은 행방불명자가 아직도 5000명이나 됩니다. 왜 그런가 하면 원전 주변 현들의 경우엔 시체를 거둘 수가 없었습니다. 원전사고로 인해 해변에 접근할 수 없어 시체를 거둘 수 없었던 겁니다. 그래서 장례식을 치를 수 없는 사람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로봇이 죽은 사람들에게 시를 계속 읊어줄 수 있겠다는 발상을 하게 됐습니다. 제가 오사카대 연구실에서 계속 같이 있었기 때문에 로봇을 굉장히 가까이서 봤습니다. 극작가로서 로봇이 굉장히 친숙했기 때문에 ‘일본의 인형극의 인형과 다를 바 없다, 단지 굉장히 고도로 발전된 인형이다’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특강에서도 얘기하겠지만 100년 후, 200년 후가 아니면 몰라도 아직까지 로봇은 그냥 인형 정도라고 극작가로서 저는 생각합니다.

◇60대 日거장과 40대 韓연출가, 극단은 모두 ‘청년단’

민새롬 외람되고 여쭤보기 조심스럽지만, 실은 저와 동료들의 극단 이름도 청년단(靑年團)입니다. 연극 양식 뿐 아니라 극단과 극장의 운영 방식에 있어서도 혁신적인 선생님의 극단 이름 세이넨단(靑年團)과 같습니다. 저로서는 영광스러운 우연입니다.

히라타 하하하, 극단 이름이 아주 특이한 이름이었다면 ‘이거 도용한 거 아냐’ 했을지도 모르지만요, 그러기에는 지극히 평범한 극단 이름이니 신경쓰지 마세요. 질문하셔도 좋습니다.

민새롬 감사합니다 선생님. 저는 15년 전에 처음 시청각 디자이너들과 기획자 스태프들만 모여 있는 것 같은 극단을 만들었어요. 저희가 탐구하던 텍스트가 소설 언어였기 때문에, 소설을 무대화하는 저희에게는 희곡 작가보다 디자이너들을 만나는게 무대화에 먼저 필요한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너무 독보적이고 창의적인 희곡 언어를 가진 선생님의 극단과 저희 극단의 이름이 같다는게 아이러니한 것 같습니다. 지금 선생님의 ‘청년단’ 작업 화두와 정체성에 대해 질문하고 싶은데요. 청년단이 추구하고 지향하는 바는 무엇인가요?

히라타 오라자의 세이넨단 연극 '도쿄 노트'의 2020년 도쿄 키치조지 극장 공연 모습. /사진가 츠카사 아오키

히라타 우선 일본은 한국과 달리 대학에 연극 교육이 들어와 있지 않기 때문에, 대학에서 연극을 전공으로 접할 수는 없어요. 저와 동료들도 일반 대학에서 따로 연극을 배운 것은 아니었어요. 그래서 우리는 연극 서클이 연극 활동의 출발점이 되었습니다. 그 때는 이렇게 40년이나 계속 연극을 할 줄은 정말 생각도 못했습니다. 극단 이름도 적당히 지었다고 할까요.

처음에는 ‘마을의 청년단(村の青年団)’이라는 이름이었습니다. 당시는 버블시대고 해서. 극단 이름을 멋있게 화려하게 짓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저희는 그런 게 마음에 들지 않았어요. 일본에선 마을마다 청년단이라는 조직이 있습니다. 일정 연령이 넘으면 소속되고, 또 소방단과도 연결돼 있고요. 그렇게 모두가 화려한 것만 추구하는 시대에 오히려 촌스럽고 친근하게, 조금은 그런 아이러니의 감각으로 붙인 이름입니다. 실은 그래서 중간에 바꾸고 싶었는데 타이밍을 놓쳤습니다. 너무 세계적으로 유명해져버렸습니다, 하하.

민새롬 저는 젊고 신선한 이미지로, 멋있게 보이려고 지었는데 부끄럽습니다.

히라타 다들 이제 청년이 아니어서 괜찮습니다, 하하하.

실은 그 부분이 어려운 문제입니다. 특히 우리가, 일본인이나 한국인이 생각하는 극단이라는 것은 일본이나 한국 연극계에 특수한, 세계적으로 보면 좀 별난 것이잖아요. 프랑스나 독일에도 극단이 있지만, 어느 쪽이냐면 그 극장이 작품을 만드는 경우가 더 많아요. 특히 지방의 공공 극장, 독일은 주립 극장이고, 프랑스의 경우에는 국립 연극 센터라고 할까, 국립 극장이 전국에 있는 거죠. 거기에는 예술감독이 있고 조연출이 있습니다. 예술감독이 젊은 연출가들을 불러서 작품을 계속 만들어요. 물론 프랑스에도 극단이 있죠. 유명한 파리의 ‘태양극단’도 있고요. 아마 극단 밖에 할 수 없는 연극도 있기 때문에 극단으로서 하고 있을 겁니다.

우리도 극단으로만 할 수 있는 일, 새로운 양식과 스타일을 만드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새 작품을 만드는 것은 극장에서도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연극의 새로운 양식을 만들기 위해서는, 한 집단이 일정 기간 이상 비슷한, 뭐랄까, 집단적으로 어떤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탐색을 해나가지 않으면 안 되는 것 아닐까요.

하지만 한국도 일본도 이제 성숙한 사회가 되어가고 있기 있기 때문에, 앞으로는 연극계에서는 역시 극장이 제대로 작품을 만드는 시대로 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저도 생각합니다. 연출가의 역할도 역시 바뀌어가고 있지요. 결국 예술감독으로서 프로듀싱 능력도, 일본이나 한국의 연출가에게 앞으로는 더 많이 필요하게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정부의 예술 지원, 지방·극단으로 분권화가 바람직”

-현 시대에 ‘극단’은 예술생태계 또는 사회에서 위상과 영향력 등의 측면에서 어떤 의미와 비전을 가져야 할까요? 자생력 면에서 한국의 극단은 변형된 형태로 명맥만 유지하는 것처럼 보일 때도 있습니다.

히라타 나라가 사회가 성숙할수록 예술의 공공성이 중요해지고 필요해집니다. 아까 얘기와도 이어지지만, 예컨대 지방의 공공극장 같은 곳들이 만들어지고 거기서 연극을 제작하고, 거기에 예술가 출신이 예술감독으로서 역할을 하고, 이렇게 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세금을 써서 하는 일이니까, 그러면 사회적 역할을 어떻게 할 것이냐의 문제가 있습니다.

예술이 사회에 보탬이 된다는 것은 당장의 어떤 경제적 효과를 창출하는 게 아닙니다. 어떤 에술작품은 100년, 200년 이후에 사회에 도움이 되기도 하거든요. 당장 돈이 되는 일은 민간에서 역할을 해주면 되는 거고요. 마치 대학과도 비슷한 점이 있는 것 같습니다. 대학에서 학술 연구라는 것은 첨단 연구나 기초 연구 같은 것들이 중요하죠. 그걸 대학에서 해줘야 합니다. 예술도 비슷한 면이 있습니다.

그래서 예술감독제도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예술가가 어떤 예술 프로그램을 생각하고 판단하고 그것에 대해 책임을 지는 제도가 필요합니다. 정치가나 행정가들에게 그 일을 맡겨버리면 당장에 뭔가 돈이 되는 일만 골라서 재원을 투자해버리는 일이 일어나니까요.

죽음을 앞둔 인간에게 시(詩)를 읽어주는 안드로이드 로봇이 등장하는 히라타 오리자의 연극 '사요나라'. /세이넨단

-조심스러운 얘기지만, 사실 한국의 극단이 창작 지원 제도를 통해 받는 지원금 없이 생존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 그런 자괴감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히라타 돈이 되지 않는 예술을 하는 사람들에겐 그런 자괴감이 어떤 식으로든 늘 있지요. 하지만 지금 한국의 문화예술 예산을 보면 세계 1위입니다. GDP 대비 문화예술 예산 비율로 보자면 일본의 10배에 달합니다. 저는 부러울 따름입니다. 뭐랄까요, 그렇게 생각하는 게 맞을까, 너무 럭셔리한, 사치스러운 고민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다만 한국도 상당히 큰 나라입니다. 일본이 인구 1억2000만이라면 한국도 5000만 정도 되는 큰 나라이니까요. 하지만 그런 큰 나라의 정부가 작은 극단과 예술가들에게 돈을 나눠주는 그런 방식으로 문화예술을 지원하는 것은 건전한 방식은 아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조심스럽게 해봅니다. 일단 지방으로 분권해야 하고요. 그 다음에 지방의 극장들로 분권해야 합니다. 지방의 책임있고 실력있는 공공 극장들이 몇몇 극단과 협력 극단을 선정해서 그들에게 분배해주는 형태라면 어떨까요. 한국이라면 도 단위가 되겠죠. 지방자치단체 단위에서 제대로 지원금을 분배할 수 있다면, 그렇게 된다면 한국의 문화예술이 서울에 일원화 집중화된 현상도 조금은 완화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선생님의 ‘현대 구어 연극’이 일본에서 일본의 전통극 양식과 서양에서 전래된 근대극 양식을 극복하기 위한 시도라면, 이제 극단이라는 시스템 역시 어떤 식으로든 극복하고 재구성해야 할 때가 된 것은 아닐까요?

히라타 앞에서 얘기했듯이, 극단은 공통의 고민을 공유하고 오랫동안 실험을 통해 새로운 양식을 만들어내기 위해 필요한 존재입니다. 그런데 제가 해 온 ‘세이넨단(靑年團)’의 경우엔 도쿄의 고마바 아고라극장과 일체화됐던 극단이기 때문에 거기에 다른 점이 있습니다. 지난 20여 년 동안 고마바 아고라라는 작은 극장이 전국의 어느 극장보다 더 많은 젊은 재능을 발굴해 소개하는 그런 역할을 해왔습니다. 극장과 거기에 소속된 극단이라면 어떤 교육적인 기능을 해야 하는 사명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세이넨단은 지난 20년 동안 그런 사명도 다해온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지방 도시에 첫 공립 예술교육 대학, 지역 재생 시도로도 큰 의미”

-지난 5월 선생의 아버지가 세운 도쿄의 고마바 아고라 극장을 폐관하고 세이넨단의 근거지를 효고현 도요오카(豊岡)로 옮기셨지요. 아무래도 관객은 도시에 더 많이 있는데, 그런 도시를 떠나 시골 마을에 새 터전을 마련하는 것은 어렵고 큰 결심이 필요한 일이었을 것 같아요.

히라타 네네, 그런 얘기를 많이 해주십니다, 하하. 그런데 사실 그렇게 대단한 결심을 한 건 아니었습니다. 예술을 교육하는 일본 최초의 공립 대학인 예술문화관광전문직대학 학장, 한국식으로는 총장이 되는 것이 정해져 있었기 때문에 거기에 따른 일이기도 했습니다. 대학 총장 일을 맡기 위해서는 이사를 해야만 했고, 제가 이사를 한다면 극단도 따라서 이주를 해야 했습니다. 그런 순서로 일이 진행됐다고 할 수 있어요.

일본에서 연극과 무용의 실기를 배울 수 있는 공립대학이 처음 만들어졌기 때문에, 아까 말씀드렸던 ‘로봇 연극’을 처음 시도할 때와 마찬가지로 예술가로서 처음 시도하는 보람이 있는 일이었습니다. 지금은 관광과 결합시킨 국제적 연극제를 만드는 일도 하고 있습니다.

도요오카는 인구가 7만5000명 정도 되는 작은 도시입니다. 이 도시에 대학이 생기면서 새로운 젊은이들이 많이 이주해오고 있습니다. 지난 1년간 이 도시에서 아기가 390명이 태어났습니다. 그 중에 7할 정도는 성장한 뒤에는 다른 지역으로 갑니다. 왜냐하면 지금까지는 4년제 대학이라는 게 그 지역에 없었거든요. 390명이 한 해에 태어나서 그 중에 일단 70%가 젊었을 때 다른 지역으로 간다면 이 아이들이 19살이 넘었을 때는 150명 정도가 남아 있다는 얘기입니다. 그런 곳에 매년 80~90명 정도 새로운 대학 신입생들이 전국에서 모여든다는 것은 인구 측면에서도 굉장히 큰 임팩트라고들 말씀해 주십니다. 특히 저희 대학은 신입생 중 85%가 여학생입니다. 그래서 지역에서는 고마운 존재가 되고 있습니다. 이런 측면은 미래 한국의 지방도시에도 좋은 참고가 되리라 기대합니다. 그러니까 예술과 관광과 교육이 결합돼서 지역 도시를 재생시키는 새로운시도를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학년 정원은 약 80명이고, 지금 전 학년 320명이 공부하고 있습니다. 경쟁률이 굉장히 높아서 5대 1 정도인데 일본 국공립대학중에 가장 높습니다. 지역에서 정원을 더 늘려달라는 요구를 하고 있고, 앞으로는 해외 유학생도 받으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극단 세이넨단 대표이자 극작·연출가인 히라타 오리자가 총장으로 있는 일본 최초의 공립 예술 교육 대학인 예술문화관광전문직대학 홈페이지. /홈페이지 화면

-41년 전에 세이넨단을 만들고 쭉 연극 작업을 해 오셨는데, 스스로 예술가로서 걸어온 길을 어떻게 진단하고 평가 하시나요? 새로운 연극의 방식과 스타일을 만들어낸 현대 연극의 거장이라는 세간의 평가와 별개로, 선생님이 현재 극작과 연극 작업에서 갖고 있는 자신만의 구체적인 ‘갈증’이 있다면요?

히라타 과거에 관해서는 별로 생각을 하지 않는 편입니다, 하하. 지나간 일은 지나간 거니까요. 연극을 안 했더라면 부자가 됐을 텐데, 하는 생각은 가끔 합니다, 하하하. 작가로 번 돈을 극단과 극장에 다 써버렸네요. 미래에 관해서는 역시 극작가로서의 의식이 가장 많습니다. 좋은 작품을 한 두 작품이라도 써서 전 세계에서 공연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그 다음이라면 방금 말씀드린 것처럼 대학 중심으로 지역을 재생시키는 실험을 성공시키고 싶다는 욕구입니다. 대학도 연극제도 희곡이나 연극과 마찬가지로 저의 작품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마이크 쓰는 연극… 쓸 수 있는 기술은 써도 좋다”

-요즘 한국에선 영화나 TV 등 매체 연기를 하던 배우들이 연극으로 넘어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무래도 대중적 흥행에 유리한 면도 있고요. 그러다 보니 계속해서 연극 무대에서의 연기와 매체에서의 연기는 구별돼야 하는지 아니면 하나로 통합돼야 하는지 고민이 생깁니다. 연극은 영화나 TV 등 매체와 구분되는 표현 방식을 가져야 하는가에 대한 논란과 논쟁도 있고요. 최근에는 연극 무대에서 배우의 발성이 아니라 마이크를 통해 대사를 전달하는 문제에 대한 논란도 있었습니다. 선생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히라타 저는 배우가 아니라 잘 모르겠습니다. 양쪽 다 가능한 배우들도 있고요. TV드라마는 좀 특수한 세계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식으로든 흥을 내서 뭔가를 촬영하고, 그걸 편집에 의해서 완성을 시켜가지고 그 결과물을 내보이는 그런 세계인 것 같습니다. 영화 쪽은 또 조금 사정이 달라서, 연기에 대해서도 조금 더 진지하게 검토하는 분위기가 일본 영화계에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저에게도 영화계에서 와 달라고 해서 연기 워크숍을 하기도 합니다. 한국에서 유명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도 그렇고, 같은 문제의식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마이크 사용에 대해서 저는 극장 크기에 따른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연극 무대에서 마이크를 쓰는 것에 특별한 저항감은 안 갖고 있습니다. 다만 저는 마이크를 적극적으로 써서 연극을 한 적은 없습니다. 그건 제가 큰 극장에서 연극을 하는 일이 그렇게 많지 않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마이크를 얼굴에 붙이지 않더라도 머리 위쪽에 마이크를 심는 건 할 때도 있습니다. 쓸 수 있는 기술은 써도 좋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일본 현대연극의 거장 히라타 오리자(왼쪽) 연출가와 민새롬 연출가. /장련성 기자

-현대사회의 주된 의사 소통 방식은 비대면 접촉과 짧은 메시지인 것 같습니다. 선생님은 연극이 사람 사이의 소통을 향상시키는 역할을 하며, 극장은 사유하고 성숙해지는 선방(禪房)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여전히 연극이 그런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히라타 현실적으로는 참 어렵죠. 특히 코로나 팬데믹을 겪으면서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장소가 더욱 적어졌습니다. 코로나 이후에는 만나는 일에 비용이 들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스마트폰이 오히려 비용이 싸게 먹히고, 라이브로 하는 것들이 비용이 많이 드는 현상이 나타났습니다. 어쩌면 표를 사서 극장으로 모여들어서 무엇인가를 본다는 것 자체가 근대적인 시스템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이 없어져도 도리 없는 일이라는 생각도 해봅니다. 그런데 또 다른 쪽으로 눈을 돌려 보면, 아이돌이 너무 보고 싶어서 극장으로 가서 라이브를 보는 데 20만~30만원씩 높은 가격을 지불하기도 합니다. 경제적으로는 그게 좋은 일일 수 있지만 사회적으로도 그게 바람직한가는 또 다른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일본의 경우에도 지역 축제인 ‘마츠리’나 전통 예술이 해왔던 사회적 기능이 있습니다. 유럽에서도 현대엔 극장이 교회의 대리, 대신이라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지금까지의 세계에서는 그런 역할을 해왔다고 할 수 있겠지요. 그렇다면 그런 기능을 하는 장소가 없어져도 괜찮을까? 그런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물론 지금은 인터넷으로 교회 예배를 보는 일도 있죠. 하지만 그게 종교가 사회에 해왔던 역할을 보완할 수 있을 것인가는 여전히 문제로 남습니다. 저는 교육을 통해서 이것을 우리가 어떤 하나의 ‘리터러시(literacy·문화적 이해 능력)’로서 가져가는 수 밖에 없지 않나 일단 생각합니다.

사실 이렇게 정보가 흘러 넘치는 세상에, 극장에 한시간 두시간 가만히 앉아서 무언가를 본다는 것은 대단히 이상한 일이라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면 명상이나 요가도 마찬가지입니다. 1시간씩 가만히 앉아 있잖아요. 엔터테인먼트 만이라면 스마트폰 만으로 충분하겠지만, 내면적인 성찰이라는 것은 필요하는 거니까요. 자신의 내면을 돌아보고 바꿔 보는 자기 성찰의 작업으로서의 연극은 남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선방(禪房)이라는 말을 했었고요. 그런 곳으로서 연극과 연극이 공연되는 극장은 앞으로도 필요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어쩌면 연극은 앞으로 더욱 마이너리티, 소수의 장르가 될 수도 있을까? 우리가 경제적 측면으로만 생각한다면 그렇게 될 수도 있겠습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살아가는데 필요한 교양이라는 관점, 또 살아가기 위한 기술의 하나로 생각하는 관점에서 보자면, 학교나 공공기관 같은 데서 연극을 저렴한 가격에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그런 일은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메시지 전달 아닌 관객 스스로 생각하는 연극”

-이번 안산문화재단과 서울예대의 극작가 아고라처럼 동시대 연극인들이 모여 강연을 듣고 함께 대화하는 작업엔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히라타 자신이 생각하는 것을 언어화하는 것이 작가의 일입니다. 따라서 그것을 늘 여러 계층과 서로 다른 배경의 사람을 대상으로 해서 시험해보는 것이죠. 예를 들면 저는 초등학생들과도 워크숍 수업을 많이 합니다. 초등학생이나 중학생들은 제가 누군지 모릅니다. 조금만 얘기가 재미없어지면 그냥 금방 잠이 들어요. 그런 것을 통해서도 여러가지 훈련이 되고 단련이 됩니다. 장애인과 함께 하는 워크숍을 통해서도 많은 것을 배웁니다. 뭔가 도덕적인 일로써 말씀드리는 게 아니라, 기술적으로도 제가 배운다는 의미입니다.

또 하나는 제가 프랑스 리용의 그랑 제콜 등 유럽에서 연극을 하고 가르치면서 느낀 것은, 다른 나라들에 비해 일본 사회에서 연극의 사회적 지위가 아주 극단적으로 낮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그건 역시 정말 아쉬워요. 그래서 교육이 가장 이해하기 쉽기 때문에, 교육에 힘을 쏟아왔던 측면도 있습니다.

물론 어린 아이들과 워크숍을 하려면 이렇게나 에너지가 필요합니다. 귀엽지만 피곤하기도 하고요, 하하. 젊은 연극인들과의 워크숍을 할 때면 뭐랄까, 눈을 반짝이면서 지켜본다는 걸 느낍니다. 하지만 제가 그 친구들을 좋은 배우로 만들어 줄 수 있는 건 아니니까, 미안하다는 마음도 듭니다.

일본 현대연극의 거장 히라타 오리자 연출가가 민새롬 연출가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장련성 기자

-선생님의 ‘현대 구어 연극’을 많은 이들이 ‘조용한 연극’이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여전히 기후위기, 빈부격차, 노동문제 등 시급해 보이는 문제들에 관한 ‘시끄러운 연극’도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그에 비하면 ‘조용한 연극’은 긴급한 사회 문제에 관해 상대적으로 힘을 쓰지 못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보게 됩니다.

히라타 그런 면이 있습니다. 저희가 만드는 연극이 오해를 사기도 쉽고, 또 무언가를 전달하는 힘도 약할 수 있습니다. 그건 원래 제가 말하고 싶은 무언가가 있고 그걸 관객에게 납득시키기 위해 연극을 만드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저는 어떤 도덕 관념이나 메시지 같은 것들을 관객에게 납득시키는 그런 연극을 만들고 있지 않으니까요.

그래도 관객들이 생각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제 작품 중에 ‘서울시민’은 일제강점기(식민지 시대)에 서울에 살던 일본인 가족의 일상을 그린 연극이었습니다. 너무나 일상적인, 평이한 일상을 그리기 때문에 관객 몇백 분 중에 한 분 정도는 ‘그 시대에도 이렇게 평화로운 날이 있었구나’하는 오해를 하는 관객도 나옵니다. 나쁜 군인도 나쁜 정치인도 나오지 않으니까요. 물론 식민 지배는 나쁜 것이지만 저는 애초에 식민 지배가 나쁘다는 메시지를 단순히 전달하기 위해 그 연극을 만든 게 아닙니다. 식민 지배가 사람에게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 사람이 사람을 지배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지에 대해 쓰는 것이 작가가 하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그것이 무엇인지를 관객들이 생각해 볼 수 있는 작품을 항상 만들고 싶어요.

-프랑스 철학자 질 들뢰즈가 영화에 대해 ‘새로운 사유를 생성하는 역할’을 이야기한 것처럼, 새로운 사유를 생성하는 연극을 말씀하시는군요.

히라타 네, 그렇습니다. 실제로 프랑스의 극장 같은 경우는 연극이 단순히 연극을 상연해 오락을 제공하는 것 뿐만 아니라, 지방 극장에서도 파리에서 유명한 철학자를 초청해서 철학적 대담을 지켜볼 기회를 시민들에게 제공합니다. 그런 것이 예술의 역할, 극장의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 전반부에서 이야기한 ‘대화(dialogue)’를 일으키는 것이 중요하고, 그것이 연극과 극장의 역할일 수 있습니다.

서울예대가 2024년 7월8일~12일 일본 현대연극의 거장 히라타 오리자 선생을 초청해 진행한 워크숍 '협업에 의한 현대구어연극 창작실습'. /서울예대

키워드☞ 히라타 오리자(平田オリザ·62)

일본 현대연극을 대표하는 극작·연출가. 대학 시절인 1983년 극단 ‘청년단’을 결성해 활동 중이다. 과장 없는 현대 구어 그대로의 일상 대화와 인간 내면을 강조하는 ‘조용한 연극’, 리얼리즘의 규칙과 금기를 가볍게 깨뜨리는 개성적 스타일로 한국 연극인들에게도 폭넓은 영향을 끼쳤다. 15개 언어로 번역·공연된 대표작 ‘도쿄 노트’ 등으로 뉴욕타임스·르몽드에 특집기사가 실리는 등 세계적 주목을 받았다. 일본 최초의 공립 예술대인 예술문화관광전문직대학 학장을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