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성 커플도 법적 보호를 받을 필요가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한마디가 전 세계 가톨릭에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지난 21일(현지 시각) 로마에서 공개된 다큐멘터리 ‘프란치스코’에서 ‘시민결합(Civil Union)’ 지지 의사를 밝혔다. 교황은 다큐에서 “동성애자들은 가정의 일부가 될 권리가 있다” “그들은 하느님의 자녀이며 가정을 이룰 권리가 있다.” “그들이 성소수자라는 이유로 내던져지거나 비참하게 되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시민결합’이란 전통적 의미의 이성(異性) 간 결혼이 아닌 성소수자와 동성애자 등으로 구성된 가족제도. 즉 동성 결혼 합법화의 대안으로 제시된 제도로 정상적인 가정이 갖는 모든 권한과 책임을 동성 커플에도 법적으로 동등하게 부여하자는 것이다. 그동안 가톨릭은 전임 교황 베네딕토 16세를 비롯해 거의 모든 교황이 성소수자 문제에 대해 뚜렷하게 반대해왔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교황의 이번 발언은 ‘세속’을 향한 것이지, ‘교회법’을 바꾸겠다는 것은 아니다. 단적으로 동성 커플이 성당에서 혼인 미사를 올릴 수 있다는 허가는 아니라는 뜻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그동안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추기경 시절부터 성소수자 문제에 대해 전통과는 다른 태도를 보여왔다. 가톨릭에서 금기시하는 동성애자, 낙태한 여성, 사생아 등에 대해 그는 ‘모두 하느님의 자녀’라며 이들에 대한 성사(聖事)를 거부하는 사제들을 오히려 비판해왔다. 이들을 긍휼과 연민의 대상으로 보고 교회가 울타리 안에서 품어야 한다는 뜻이었다. 2013년 교황 즉위 후에도 성소수자 관련 질문에 “내가 누구이기에 그들을 판단할 수 있겠나?”고 반문했다. 따라서 이번 발언 역시 이미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동성 커플들에 대해 법적 보호·권리·의무를 사회적으로 보장하자는 뜻으로 보인다. 또한 교회에서 사용하는 ‘혼인’ 대신 ‘결합’이란 표현을 사용한 것도 교회와 사회를 구분해서 보자는 뜻으로 보인다. 진보적 입장으로 비춰졌지만 교황은 실제로 ‘여성 사제 허용’ ‘결혼한 남성에 대한 사제직 허용’ 등 가톨릭 전통과 충돌하는 문제에는 보수적 입장에 서왔다.
그럼에도 교황의 이번 발언은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킬 것으로 보인다. 특히 보수색 짙은 미국 가톨릭계의 반발이 예상된다. 워싱턴포스트, CNN 등 미국 언론들은 교황 발언이 전해지자 주요 뉴스로 보도하고 있다. 교황의 발언이 알려지자 성소수자 문제에 우호적 입장을 보여온 미국 예수회 소속 제임스 마틴 신부는 “중대한 진전”이라고 환영했지만, “교황의 발언은 월권”(뉴욕성가정성당 제럴드 머레이 신부) “교회의 오랜 가르침과 명백히 충돌”(토머스 토빈 프로비던스 교구 주교) 등 반발이 나오고 있다. /김한수 종교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