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마 저 건물이?”
지난 22일 오후 강화도 ‘우리마을’ 입구에 들어서던 기자는 잠시 눈을 의심했다. 이곳은 대한성공회가 운영하는 발달장애인 시설. 김성수(90) 주교가 부모님에게 물려받은 고향 땅을 기증해 자활 시설과 생활 시설을 갖췄다. 발달장애인 50명이 콩나물을 기르고 전자제품 부품을 조립해 월급을 받으며 자활하는 곳이다. 그런데 작년 10월 콩나물 공장에 불이 나서 전소(全燒)했다. 꼭 1년 전 찾았을 때는 잔해를 철거한 빈터에 출입 금지 줄만 쳐져 있었다. 그 폐허에 번듯한 2층짜리 새 콩나물 공장이 들어선 것.
‘우리마을’의 명예 원장 격인 ‘촌장(村長)’을 맡고 있는 김성수 주교는 여러 차례 “기적”이라고 말했다. 콩나물 공장 화재는 전화위복으로 우리 사회의 따뜻함을 확인하는 계기가 됐다. 동석한 ‘우리마을’ 원장 이대성 신부는 “고마운 분이 너무도 많다”고 했다. 강화도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성금을 걷었고, 소방관들도 복구 비용을 보탰다. ‘우리마을’ 인근 전등사와, 교단이 다른 여의도순복음교회도 성금을 보냈다. 대기업의 거액 기부 없이 그렇게 20억원이 모였다. 여기에 정부와 인천시의 지원, 보험금 등 30억원을 추가했다. ‘우리마을’ 콩나물을 납품받는 풀무원에서는 새 공장을 지을 때까지 버섯을 다듬는 새 일감을 맡겨줬다. 그뿐 아니라 자신들의 최신 기자재를 설치하고 거의 매주 현장을 방문해 재건축 과정을 점검해줬다. 옛 공장이 간이 시설 같았다면 새 공장은 장애인들이 불편함 없이 일하도록 맞춤형으로 설계했다. 초가삼간이 대궐이 된 느낌이었다. 화재 전 하루 콩나물 생산량이 1.5톤 정도였는데, 새 공장에선 하루 3톤까지 생산할 수 있게 됐다. 그렇게 공사에 들어간 지 1년여 만에 발달장애인들에게 최고의 성탄절 선물이 탄생했다.
김성수 주교는 “우리 친구(장애인)들이 표현을 잘하지는 못했어요. 그렇지만 표정만 봐도 알 수 있지요. 새 공장이 지어지니 얼마나 좋아하는지”라고 말했다. 그는 이대성 신부를 가리키며 “원장이 얼마나 열심히 일하는지 하나님도 감동하신 것 같다”고 칭찬했다. 공장은 시험 가동을 거쳐 내년 2월 중에 본격 가동할 예정이다.
아직 공장을 본격 가동하기도 전이지만 김성수 주교는 벌써 다음 ‘꿈’을 향하고 있다. 발달장애인 요양원을 짓는 것. 발달장애인은 일반인에 비해 노화(老化)가 빨리 진행되는 편이다. 가족들로서는 걱정이 더 많을 수밖에 없다. 요양원이 완성되면 성공회 교단 차원에서 유치원부터 요양원까지 이른바 ‘요람에서 무덤까지’ 발달장애인의 생애 지원 주기가 완성된다. 김 주교는 “성공회 교단은 작지만 작은 모델 케이스 하나를 만들어 발달장애인에게 희망을 안겨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발달장애인들에게 작지만 소중한 미래를 보여줌으로써 우리 사회도 애정이 메마르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을 겁니다.”
‘우리마을’의 모든 과정은 김 주교가 아낌없이 유산을 내놓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김 주교는 그러나 “아마 제가 직접 돈을 벌어서 마련한 재산이었으면 아까워서 못 내놨을 것”이라며 “거저 받았으니 내놓을 수 있었지만 하나님 보시기엔 눈곱만큼도 아닐 것”이라고 말했다.
특별한 선물을 받은 올해 성탄절을 맞는 소감을 김성수 주교에게 여쭸더니 “코로나 덕분에 성탄절의 원래 의미를 찾게 됐다”고 말했다. “원래 성탄절은 가족과 함께 조용히 기쁘게 맞는 날입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우리가 잘살게 되면서 흥청망청 백화점, 호텔로 다니며 파티하는 날로 변했지요. 그런데 올해는 코로나 덕분에 정말 가족끼리 조용히 보낼 수 있게 됐잖아요? 이럴 때 어려운 사람들을 생각하며 성탄절을 잘 보내면 하나님도 기뻐하실 거예요. 내년에 코로나가 종식되더라도 다시 흥청망청으로 돌아가지 말고, 이런 마음가짐을 유지하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