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정준 서울시립대 국사학과 교수

최근 설민석의 이집트사와 재즈 관련 강의의 오류에 대한 문제점들이 지적되면서, 또다시 그의 전문성에 대한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조선일보의 관련 기획 기사 ‘지식 소매상 전성시대’<24일 자 A19면, 25일 자 A17면>를 읽었다. 대체로 언론이나 일부 전문가들은 비전문가의 역량 부족이 불러온 ‘예견된 참사’라고 지적하는 가운데, 일부 시청자들은 “그래도 설민석만큼 재미있게 강의하는 사람이 어딨는가” “그런 자잘한 실수야 노력해서 없도록 하면 되지”라는 식으로 반응한다.

하지만 과연 설민석 강의의 문제점이 팩트 오류뿐일까. 그 자체도 전문성을 지향하는 강의에서 매우 중요한 문제이긴 하지만, 사실 더 크게 주목해야할 점은 설민석의 강의가 지향해온 것, 즉 그의 강의 전반에 흐르는 ‘메시지’가 갖는 사회적 해악이다.

설민석의 강의는 예능 프로의 숙명이겠지만, 소비 위주의 강의, 즉 사람들이 익숙한 주제를 선정하여, 사람들이 듣고 싶어 하는 방향으로 스토리라인을 구성하고 결론으로 이끌어가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이 과정에서 우리 사회의 대중들에게 익숙한 민족주의와 국가주의 정서를 중심에 두는 가운데, 마지막 결론부에서 ‘올바른’ 역사관을 강조하며,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식으로 마무리한다.

나는 이런 형태의 내러티브를 대학 수시면접에서 수도 없이 목도했다. 어린 학생들은 학업계획서 내지는 자기소개서에 그 출처도 명확하지 않은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문구를 매번 인용한다. 그리고 평소 관심을 가졌던 역사 주제로 주로 일제 강점기의 종군위안부 문제, 독도 문제, 중국의 동북공정, 일본의 역사왜곡, 강탈당한 한국 문화재의 반환 문제를 든다. 대부분 이 범위를 잘 벗어나지 않는다. 지금 현재 중국과 일본이라는 강대국들 틈에서 그들의 역사왜곡에 분연히 맞서야만 하는 ‘약소국’인 한국의 상황을 강조하는 가운데, 이러한 상황을 타개하는 유일한 방법은 대한민국의 모든 국민이 ‘올바른’ 역사관을 가져야 한다는 점, 주변국이 제시하는 논리에 현혹되지 않고, 스스로 이를 논파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는 점 등을 역설한다. 결론적으로 자신이 역사를 제대로 공부하여 그 ‘올바른’ 역사관을 전달하는 ‘첨병’이 되겠다는 것이다. “그래, 자네가 존경하는 역사가는 누군가?” “설민석이요.”

이게 어찌 어린 학생들의 잘못이겠는가. 가르친 어른들 잘못이지. 일제 강점기가 끝난 뒤로 8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지만, 기성세대가 만든 국민교육 체계와 획일적인 민족주의 정서가 계속 이어지는 가운데, 위와 같은 ‘올바른’ 역사관의 강요가 지속되었다. ‘인문학’으로서의 역사학 본연의 목적은 온데간데없고, 역사란 현재의 이데올로기나 정치·사회·외교적 이해관계를 정당화하는 수단이라고 여기는 인식이 우리 사회에 팽배해있다. 역사 연구자는 당연히 ‘우리’에게 유리한 논리를 제공하는 데 복무해야 하는 존재이며, 어린 학생들이 ‘중국의 고구려사 귀속 주장’에 대한 대응논리를 달달 외워서 읊으면 훌륭한 역사관을 가진, ‘미래의 역사가’처럼 추켜세워졌다. 만약 그런 관점을 토대로 학생들에게 학습을 강요한다면 그것이 과연 ‘역사교육’인가, 아니면 ‘정신교육’인가.

인문학으로서의 역사학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단번에 대답하기 쉽지 않다. 지금 시점에서 우리가 주목해야할 역사학의 특징은 긴 시간의 흐름 속에서 인간의 본성과 더불어 인간들이 모여서 이룬 ‘사회’의 성향과 진행과정을 탐구함으로써 현재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현상과 갈등을 이해하는 학문이라는 점이다. 또한 자기 자신에게 강요되어온 각종 가치관·이데올로기를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능력을 갖는 것, 한마디로 ‘비판적 성찰의 능력’을 키우는 것이 역사교육 본연의 목적이라고도 할 수 있다. 만약 당신 주변에서 끊임없이 ‘올바른’ 역사관을 강요할 때, 그것이 반공이든, 과도한 민족주의나 국가주의 이념이든 간에 이를 객관적으로 보고, 스스로 중립적인 판단을 내릴 수 있는 능력을 키우는 학문이라고도 규정할 수 있다.

설민석의 역사 강의에는 ‘역사학’이 없다. 지금 시대에 역사학계가 지향하는 메시지가 결여돼 있으며, 그런 논의들을 제대로 소화하고 전달할 능력도, 의지도 없어 보인다. 결국 그는 사람들이 듣기 거북하지 않고, 기꺼이 고개를 끄덕일만한 ‘지식’ ‘스토리’들을 뽑아서 쏟아냄으로써 기존에 다수의 대중들을 지배해오던 구태의연한 사회적 정서와 고루한 인식체계에 편승한, 말 그대로 ‘예능’을 해온 것에 불과하다. 지금 시점에서 설민석의 자잘한 팩트 오류를 지적하는 것이 중요한가. 오히려 설민석이라는 ‘브랜드’를 앞세워 그를 ‘한국사 대가’니, ‘그랜드마스터’니 하는 호칭으로 어린 학생들 앞에 내세우고, 마치 역사에 대단한 권위가 있는 것처럼 포장하여 인문학을 가장한 예능 프로와 책들을 만들어온 ‘어른들’이 주된 비판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 것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