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도 사진 양쪽에 선 유미림(왼쪽) 한아문화연구소장과 이기봉 국립중앙도서관 학예연구사가 “조선시대 기록의 우산도는 환상의 섬이 아니라 독도”라고 설명하고 있다. /김연정 객원기자

“울릉도에서 ‘날씨가 좋으면 볼 수 있다’는 ‘세종실록 지리지’의 우산도(于山島) 기록은 독도의 실제 상황과 정확하게 부합합니다.”(이기봉)

“무릉도와 우산도가 같은 섬이었다고요? 무릉도(울릉도)를 우산도로 잘못 적은 ‘태종실록’의 기록은 안무사로 파견된 김인우의 현지 조사를 거쳐 ‘세종실록’에서 올바로 수정됐습니다.”(유미림)

‘필드의 독도 연구자’라 불리는 유미림(58) 한아문화연구소장과 이기봉(53) 국립중앙도서관 학예연구사가 새 연구서 ‘독도는 환상의 섬인가?’(지식산업사)를 함께 냈다.

책은 최근 이영훈 전 서울대 교수가 ‘반일 종족주의’ ‘반일 종족주의와의 투쟁’에서 조선시대 자료에 등장하는 독도를 ‘환상의 섬’으로 간주한 것에 대해 조목조목 반론을 펼치는 형식을 취했다. 그러나 특정 학자에 대한 반박을 넘어서, 그 바탕에 깔린 일본 측의 독도 영유권 주장에 대한 정교한 쟁점별 논박이기도 하다.

세종 때 확정된 독도의 명칭 ‘우산도’는 이후 공식 지리서에 계속 기록되어 19세기 말까지 바뀌지 않았다는 것이 이들의 분석이다. 반면 ‘삼봉도’나 ‘요도’ 같은 가상의 섬들은 중앙정부가 끝내 확인하지 못해 기록하지 않았다.

조선시대 여러 지도에서 우산도가 울릉도 서쪽에 그려진 걸 보고 ‘독도가 아니다’고 한 것에 대해, 역사지리학 전공인 이 연구사는 “고지도의 제작 시스템을 이해하지 못한 결과”라고 했다. “실측에 의한 지도가 아니라 텍스트인 지리서를 보고 제작한 것이기 때문에, 17세기 이전 지도는 아직 책에 기록되지 않았던 방향 정보를 반영하지 못했을 뿐입니다. 하지만 존재가 입증되지 않은 섬은 지도에 그리지 않았죠.”

유 소장은 “1900년 대한제국의 ‘칙령 제41호’에서 울도군의 관할 구역으로 명기한 석도(石島)는 당시 주민들이 독도를 부르던 ‘독섬(돌섬)’에서 뜻을 취해 한자로 표기한 것”이라고 했다. ‘독’의 음을 취한 ‘독도’의 다른 표기일 뿐인데, 이를 입증하기 위해 전국 지명에서 ‘독’이 ‘돌’이란 뜻으로 사용된 사례를 319개 찾아 제시했다. 그는 “1904년 독도에서 강치를 잡던 일본인이 울도군에 납세했다는 것은 대한제국이 독도를 실효 지배했다는 증거”라고 했다.

두 사람 모두 대학 강단 밖에서 연구하다 보니 고충이 적지 않다고 털어놨다. 유 소장은 “각 기관의 협조를 받기 어려워 자료 수집에도 고초를 겪는다” 했고, 이 연구사는 “학자들조차 고지도와 근대 지도의 차이를 잘 이해하지 못할 때가 많다”고 했다. 이들은 “국내 학계는 기존 사료만이라도 충분히 해석해서 연구를 심화해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