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주교 대구대교구 홈페이지에 게시된 이문희 대주교의 부고.

‘이문희 바울로 대주교 선종(善終).’

지금도 천주교 대구대교구 홈페이지에서 볼 수 있는 문구입니다. 천주교 대구대교구장을 지내고 지난 14일 선종한 이문희 대주교 추모 페이지이지요. 여기서 ‘바울로’는 세례명입니다.

천주교 신자들은 세례를 받을 때 새 이름 즉 ‘세례명’을 받습니다. 세례를 통해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 태어난다는 뜻에서 성인들 이름 가운데 고르곤 하지요. 김수환 추기경은 ‘스테파노’, 정진석 추기경은 ‘니콜라오’, 염수정 추기경은 ‘안드레아’입니다. 최근엔 우리나라 성인들의 이름도 세례명으로 많이 사용하고 있습니다. ‘김대건 안드레아’ 등이지요.

그런데 현재 천주교는 ‘바오로’로 표기하고 있는데, 왜 ‘바울로’일까요?

이에 관해 한 가지 힌트를 얻었습니다. 대한성공회 서울교구장을 지낸 김근상 주교 역시 세례명을 ‘바울로’로 씁니다. 김 주교는 통화에서 “처음 세례명은 ‘바우로’였다”고 하시더군요. 그런데 1970년대 개신교와 천주교 신학자들이 모여 함께 연구해 ‘공동번역 성경’을 냈습니다. 이 성경의 표기가 ‘바울로’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동안 ‘바우로’로 세례명을 쓰던 김 주교도 ‘바울로’로 표기를 바꿨다고 합니다. 김 주교는 “아마도 이 대주교님도 처음 세례명은 ‘바우로’가 아니었을까” 생각하시더군요.

천주교나 개신교 신자가 아닌 분들은 여기까지 읽으시면 ‘성경이 한 가지가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드실 겁니다. 맞습니다. 흔히 성경은 ‘일자 일획도 변함 없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사실은 번역의 역사가 유구합니다.

개신교 교회에서 대부분 사용하는 '개역개정 성경'.

한국 개신교의 경우, 성경 번역의 역사를 간략히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처음 성경이 우리말로 번역된 것은 스코틀랜드 출신 선교사 존 로스(1842~1915)가 19세기말 번역한 누가복음(예수셩교 누가복음젼서)를 최초의 우리말 성경으로 보고 있습니다. 당시는 ‘하나이다’ ‘하엿더라’ ‘가라사대(갈아사대)’ 등 표현이 쓰였다고 하지요. 1911년엔 신약성경 전체가 번역돼 ‘신약젼서’가 나왔지요. 이때 ‘예수 그리스도’ ‘선지자’ ‘회개’ 등의 용어가 정리됐다고 합니다.

이후 1938년에 ‘개역’ 즉 ‘다시 번역한’ 성경이 나오고 1952년엔 새로 바뀐 한글맞춤법통일안을 반영한 ‘성경전서 개역 한글판’이 나옵니다. 그리고 1998년엔 ‘성경전서 개역개정판’이 나왔습니다. 현재 많은 교회에서 사용하고 있는 성경이지요. 이 같은 성경 번역 변천사는 대한성서공회 홈페이지(www.bskorea.or.kr)에 상세히 설명돼 있습니다. 개역, 개역개정 등 용어가 좀 헷갈리시지요?

천주교에서 사용하는 성경.

한편 천주교 역시 꾸준히 성경 번역을 해왔습니다. 18세기말부터 신약성경을 부분적으로 번역해 ‘성경직해광익’으로 펴낸 천주교는 1910년 신약성경 중 4복음서를 완전히 번역해냅니다. 이후 1941년엔 라틴어와 그리스어 성서를 토대로 바오로 서간 등 서간과 묵시록까지 완역해 신약성서 번역을 완성했습니다. 천주교의 구약 번역은 신약보다 늦었습니다. 구약성서 전체가 완역된 것은 1977년이었다고 하지요. 천주교 성당에서 지금 사용하는 성경은 2005년 주교회의에서 발행한 ‘성경’입니다.(평화신문 2012년 11월 25일자 참조)

‘공동번역 성경’은 1970년대에 등장했습니다. 1960년대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영향이 컸다고 합니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는 천주교의 현대화·토착화에 큰 영향을 끼쳤지요. 또한 개신교와 정교회 등 다른 교파와의 교회일치운동에도 큰 관심을 보였지요. 그 결과 1968년 교황청 성서위원회와 개신교 세계성서공회연합회가 성서의 공동번역에 합의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1969년 1월 개신교계와 천주교가 공동으로 성경 번역에 착수했습니다. 그 결과 1971년엔 신약성경, 1977년엔 구약성경까지 포함한 성경전서가 발간됐습니다. 직역보다는 의역 위주였지요. 이 공동번역 성경에 이문희 대주교와 김근상 주교의 세례명으로 쓰인 ‘바울로’가 등장합니다. 그렇지만 공동번역 성경의 수명은 그리 길지 못했습니다. 번역은 이렇게 했지만 천주교는 ‘바오로’, 개신교는 ‘바울’로 각각 계속 부르고 있었거든요. 결국 개신교는 공동번역을 외면하고 천주교만 써오다가 2005년 천주교 역시 새 번역 성경을 사용하게 된 것이지요.

성경 번역이 이렇게 변천을 겪는 동안 중요한 변화도 있었습니다. 바로 ‘주기도문’(개신교) ‘주님의 기도’(천주교) 역시 번역이 바뀐 것이지요. 천주교가 먼저였습니다. 천주교는 1996년 주교회의 의결과 교황청 승인으로 ‘주님의 기도’ 번역을 바꿨습니다. 일단, 그 이전까지는 ‘주의 기도’였던 명칭을 ‘주님의 기도’로 바꾼 것이 가장 큽니다. 뿐아니라 개정 전 ‘그 나라가 임하시며’를 ‘아버지의 나라가 오시며’로, 본문에 등장하는 ‘우리’는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를 제외하곤 모두 ‘저희’로 바꿨지요.

개신교 역시 2004년 당시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와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가 공동으로 전문위원회와 특별연구위를 결성해 주기도문을 바꿨습니다. 그 이전까지 주기도문 중 ‘죄를 사(赦)하여’도 ‘죄를 용서하여’로, ‘하옵시고’ 역시 ‘하시고’로 바뀌었습니다. 덕분에 개신교 역시 지금은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로 바뀐 주기도문을 쓰게 됐지요. 개신교는 이때 사도신경 역시 새로 번역했습니다. 그렇지만 이 기도문이 모든 개신교 교단에서 통용되는 것도 아닙니다.

참고로 천주교의 ‘주님의 기도’와 개신교 ‘주기도문’ 전문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거의 비슷하면서도 조금씩 미묘한 차이를 느끼실 수 있을 것입니다.


천주교 ‘주님의 기도’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소서!

오늘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저희가 용서하오니

저희 죄를 용서하시고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아멘


개신교 ‘주기도문’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하게 하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잘못한 사람을 용서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용서하여 주시고,

우리를 시험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나라와 권능과 영광이

영원히 아버지의 것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