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새 자주 거론되는 ‘선택적 정의’는 정의의 한 사례이긴커녕 불의 그 자체입니다. 법이 선택적으로 적용된다면 보편타당한 공정성을 배반한 것이죠.”(윤평중 교수)

“세상에 전체주의·공산주의 국가가 아니면 시도하지 않는 위성 정당을 창당하면서 어떻게 대표성이나 민주주의를 말할 수 있습니까? 우리는 민주파니까 독재적 방법으로 민주 가치를 실현하면 된다? 절차가 불법인데 결과가 합법일 수는 없는 것입니다.”(박명림 교수)

사회적 화두로 떠오르고 있는 ‘공정(公正)’의 문제에 대해 중견 학자 4명이 토론하며 “이것은 결국 ‘정치적 불공정’의 문제”라는 의견을 밝혔다. 최근 출간된 계간지 ‘철학과현실’ 봄호의 특별 좌담 ‘공정의 문제와 능력주의’에서다. 참여 학자는 윤평중 한신대 철학과 교수, 박명림 연세대 대학원 지역학협동과정 교수, 신광영 중앙대 사회학과 명예교수, 이진우 포스텍 인문사회학과 교수다.

4인의 학자가 말하는 우리 사회의 공정 관계
4인의 학자가 말하는 우리 사회의 공정 관계

왜 ‘공정’이 화두가 됐나?

윤평중 교수는 “‘촛불혁명' 이후에도 여전히 불공정하고 정의롭지 못한 현실에 대한 반응”이라며 “문재인 정부 4년 동안 각종 정책 실패, 인사 정책의 난맥상, 법치주의의 균열, 민주주의의 해체가 국민적 불안을 확산시킨 결과”라고 말했다.

각자가 ‘공정’이란 개념을 자신의 관점에서 보고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신광영 교수는 “기회의 평등, 결과의 공정을 고려하지 않은 채 자기의 이해관계에 기초해서 공정을 판단하는 상황이 나타나고 있다”며 “이것은 공정에 대한 교육의 부재 때문”이라고 했다.

사람들의 불만이 증폭된 이유는?

정부에 대한 실망과 사회경제적 양극화 현상이 불만을 키워 ‘공정’을 갈구하는 현상을 부채질했다고 이들은 짚었다. 박명림 교수는 “속으로는 강한 당파성·진영성을 지니고 있는데도 겉으로는 계속 정의·공정·평등을 주장하는 데서 오는 자기모순·자기배반·위선에 대한 저항·균형감 같은 것이 시민 사회에 형성됐다”고 했다. 그는 “최소한의 상황 설명이나 사과도 없이 어떤 논리의 폭정 또는 우격다짐을 통해서 이것도 공정이고 정의라 주장하는 위선의 문제가 정말 심각하다”고 했다.

또 한 가지 큰 이유는 양극화의 심화다. 여기에는 소득 주도 성장과 부동산 정책의 실패가 큰 역할을 했다. 청년들의 좌절이 커진 상황에서 민주화 세대의 이중성과 위선에 더욱 분노했다는 것이다.

공정한 능력사회조차 불가능해져

이진우 교수는 “개인의 능력에 따라 보상을 주는 체제인 능력주의 자체에도 문제가 있다는 것이 현재 서구에서 진행되고 있는 논의지만, 우리나라에선 ‘출발선이 균등하지 않아 능력을 발휘할 기회조차 제대로 주어지지 않는다’는 불공정이 더 큰 문제가 되고 있다”고 말했다. 박명림 교수도 능력주의보다 중요한 문제가 있다고 했다. “능력조차 발휘할 기회를 박탈한 사회구조를 만들어 놓고는 자기 자녀에게 (특권을) 세습시키려는 민주화 세대, 86세대의 집합적인 부도덕과 윤리 파탄의 문제로 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박 교수는 “그러면서도 이들은 겉으로는 여전히 개혁과 정의를 주장한다”며 “이런 집단적인 이중 행태가 공정한 능력사회조차 불가능하게 만든 것”이라고 했다.

이들은 공정한 ‘법의 지배’가 희미해져 법 앞의 평등이 무너지고, 법의 해석을 독점하는 자들이 자의적 인치(人治)를 하는 ‘법에 의한 지배’가 떠오르고 있다고 지적했다. 법치의 붕괴가 불공정과 불평등을 키우고 있다는 것이다.